[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시쳇말로 '독고다이(혼자 행동한다는 뜻의 일본말)' 해왔습니다."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은 가수 이승환(55)이 지난 세월을 이렇게 소회했다. 음원차트, 음악방송 등 가요계 시스템에 휘둘리지 않고도 잘 버텨왔다는 뜻이다.
14일 서울 마포구 구름아래소극장에서 만난 그는 "아무도 하지 않았던 것을 한 30년이라 하고 싶다"며 "매니저, 제작자, 기자, PD를 모르고도 공연 위주로 '이방인'처럼 살아온 것 같다"고 스스로의 음악 생활을 돌아봤다.
14일 서울 마포구 구름아래소극장에서 만난 가수 이승환(55). 사진/드림팩토리
'아무도 하지 않았던 것'이란 이런 것들이다. 국내 최초로 시도한 앨범 전반의 매니지먼트, 1995년 가요 앨범 역사상 최초의 미국 현지 녹음, 총 1000회가 넘는 라이브 공연과 9시간 30분 동안 93곡을 소화한 국내 최장 공연 기록, 19년째 이어온 자선 콘서트 '차카게 살자', 인디밴드 지원 프로그램 '이승환과 아우들'…. 특정 장르 편중의 음악만 매대에 올려지는 현 음악 환경에서 그는 다양한 한국 대중음악과 공연 문화 생태계를 위해 발벗고 나서 왔다.
특히 주류 음악 시장에 가려진 후배 뮤지션들을 돕는 이유가 뭐냐는 본지 기자의 질문에 그는 "스스로 메인스트림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제 스스로 마이너한 감성을 좋아하고 제 음악 역시 인디씬에 가깝지 않나 생각합니다. 예술가들은 자본으로부터 독립돼야 한다는 말들도 있지만 그걸 제가 희석시키고 싶습니다."
가수 이승환. 사진/드림팩토리
최근 방영된 '슈퍼밴드'를 두고 그는 "밴드씬이 부흥할 것 같더니…"라고 말을 흐리더니 "결국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 우승자들처럼 되고 만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아직 이 (밴드씬이 침체된) 생태계를 어떻게 헤쳐가야 할지 방법은 잘 모르겠다"며 "개런티를 챙겨주거나 같이 밥을 먹는 '품앗이' 정도로 도움을 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30년 간 음악생활 역시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국내 가수 최초로 자신의 앨범을 제작하던 그의 나이는 20대 중후반. 열혈 청년 그의 눈에 비친 건 어른 세계에 대한 온갖 불신과 부조리함이었다.
가장 아팠던 때로는 1997년 5집 수록곡 '애원' 뮤직비디오 사건을 떠올렸다. 귀신의 모습을 조작해 넣었다고 의심 받은 그는 2년 뒤 '당부'란 노래로 은퇴를 암시하기도 했었다.
"당시는 저도 굉장히 어렸습니다. 세상 풍파를 견디는 법에 마모되지 않아 뾰족했었죠. 어른 세계의 불신, 부조리에 반항, 저항 했고 정직하게 음악하고 싶어했던 것 같습니다."
가수 이승환. 사진/드림팩토리
동안(童顔) 외모 덕에 '어린 왕자'라 불리는 그도 어느덧 50대 중반. 30년 전 까만 정장 차림에 둥근 안경을 쓰고 발라드를 부르던 청년은 시간이 흘러도 젊은 감각을 놓지 않는다. "28년 전 이미 어린 왕자에서 찬탈 당했다"며 너스레 떠는 그가 말을 이었다.
"록은 늘 패션과 함께 갑니다. 일흔살이 넘은 롤링스톤스의 믹 재거가 스키니진을 입고 나오듯 그렇게 활동하길 바라요. 세상의 고정된 시선을 음악인으로서 타파하고 싶습니다."
'어린 왕자' 대신 그는 몇년 전부터 '공연의 신'이라 불린다. 20개 도시를 도는 투어를 '무적 공연'을 시작으로 한국 근대공연의 전환점을 열었다고 평가 받는다. 올해 초 국내 최장 공연 기록을 세웠고 차후 10시간에도 도전할 계획. 올해 연말 열릴 공연에는 U2 공연에 활용되는 구조물들을 동원해 기상천외한 풍경들을 연출할 예정이다.
음악에 관한 그의 소신은 "세상의 아픔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 음악은 어떤 달변가나 유명 정치가의 말 보다도 강력한 무기다. 가장 짧은 시간 안에 상대의 마음을 휘어잡을 수 있는 마술 같은 힘. 고로 그는 "후배뮤지션들이 돈과 권력의 편에 서지 않고 사람 편에 서는 음악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승환 정규 12집 'FALL TO FLY 後'. 사진/드림팩토리
5년 만에 발매되는 정규 12집 ‘FALL TO FLY 後’. 이날 앨범을 여는 첫 곡 ‘30’년이 흐른 후. 과거의 이승환이 지금의 이승환에게 말을 건다는 노랫말처럼 그가 말했다.
“처음엔 음악을 위한 음악을 하자, 했었어요. 동화적 감성일지 모르지만…. 그때 그때 시기의 고비들을 잘 넘긴 제게 잘했구나, 잘해왔구나 말해주고 싶어요.”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