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서윤 기자] “세계 풍력시장은 기술력에 기반한 덴마크 베스타스(Vestas), 독일 지멘스(Siemens),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이 주도하고, 가격경쟁력을 기반으로 중국 기업들도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습니다. 내일 대만에서는 120메가와트(MW) 규모 해상풍력단지가 완공됩니다. 6MW 터빈 20기를 설치합니다. 그에 비해 국내 풍력산업은 10년 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악화됐습니다. 산업이 크려면 시장이 있어야 하는데 국내 풍력시장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상훈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센터장은 11일 한국태양광·풍력산업협회와 민주평화당 조배숙 의원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재생에너지 경쟁력 확보 전략 모색 토론회’에서 태양광과 함께 세계 재생에너지의 약 90%를 차지하는 풍력발전의 국내 현실을 이같이 지적했다.
국내 풍력시장은 세계수준에 비해 뒤처져 있다. 이미 선진업체들은 8MW 발전기를 상용화한 반면, 한국은 아직 4MW 규모뿐이고 이제 5MW가 나오는 수준이다. 3면이 바다인 이점을 활용한 해상풍력에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효성 등 많은 업체가 뛰어들었지만 대부분 철수하고 두산중공업만 남았다. 그렇지만 포기할 수 없는 건 세계 시장이 연간 100조원대, 매년 약 50기가와트(GW) 이상 규모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상풍력이 성장하게 되면 연간 투자 규모는 증가할 전망이라는 의견이다.
태양광의 사정은 상대적으로 낫다. 세계시장 규모는 178조원 정도로 올해 신규 설치량은 120GW에 이를 전망이다. 특히 태양광 발전에 저돌적인 중국은 내년 말 250GW를 설치 예정이다. 보급 강국일 뿐 아니라 국내 거대시장을 바탕으로 산업분야도 주도, 미국과 인도 및 중동은 물론 동남아 등으로도 확대 중이다. 국내 태양광 시장은 세계 10위권 규모로, 지난해 연간 2GW 보급 시장이 열렸다. 국토여건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규모라는 평가다. 다만 폴리실리콘이나 잉곳, 웨이퍼 등 소재 부문은 중국의 저가공세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셀, 모듈 부문만 선진국 고효율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태양광산업협회, 한국풍력산업협회, 민주평화당 조배숙 의원 공동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재생에너지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전략 모색' 토론회가 1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진/최서윤 기자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모두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방안으로 내수시장 확대와 그 안정적인 유지를 꼽았다. 제조사들이 기본적으론 해외시장을 보고 기업경영을 하지만 국내에 일정 규모 시장을 유지해야 기술을 개발하고 그 실적을 바탕으로 해외시장에도 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가로막는 요인으로는 △주민 수용성 문제와 △환경규제 △지방자치단체 인·허가와 함께 △정부 정책의 일관성 부족 등이 언급됐다.
정우식 태양광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2019년 3월 기준 122개 지자체에서 이격거리 제한 조례를 제정하고 규제하고 있다”며 “서울을 비롯한 도심권에 있는 지자체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적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규제에 개별 지자체가 모두 재량권을 갖고 있는 점도 문제지만, 발전시설이 들어설 때마다 맞닥뜨리는 주민 반발은 더 큰 산이다. 정 부회장은 “가짜·왜곡뉴스에 전세계전문가들도 치를 떨 정도”라며 “정부에서도 관련 업계나 시민단체와 더불어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소영 기후솔루션 변호사는 환경 등 입지규제와 관련해 “지금처럼 국토교통부와 농림축산식품부, 환경부가 줄다리기를 할 게 아니라, 도로와 빛 반사, 전자파 등 중앙정부가 과학적인 기준을 면밀하게 세우고 그에 따라 규제기준을 수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그 기준 안에 들어오는 시설이라면 지자체가 민원만을 이유로 반려하는 건 못하도록 환경부의 폐기물처리시설규정처럼 명문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진종욱 두산중공업 상무는 “세계시장을 주도하는 3개 업체의 공통된 특징은 안정적인 자국 물량 위에 성장한 것”이라며 “정부의 서남해상풍력 2~3단계가 계획대로 진행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 서남해상풍력단지에 600MW 규모의 실증단지를 건설한 후 2단계로 400MW 시범단지 조성, 3단계 2GW 규모 확산단지 조성을 계획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국내 최초로 서남과 해남 해상풍력단지 건설에 참여하고 이 실적을 바탕으로 세계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다.
심진수 산업통상자원부 재생에너지산업과장은 “2011년부터 하기로 했는데 주민 수용성 문제로 늦어졌다”며 “지난 7월부터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관련기관 및 찬성·반대 주민 등이 모여 민관협의회를 7~8차례 가졌다. 가능한 한 12월 말까지 진전된 안을 도출하려고 한다”고 소개했다. 도출 안은 이익공유에 초점을 맞출 전망이다. 어민 등 수산업 피해를 최소화하고 발전사업자 뿐 아니라 주민들이 함께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 합의를 도출할 계획이다. 지자체 규제는 기본적으로 지금처럼 지자체에 맡기되, 이격거리를 줄이거나 없애는 경우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송철호 울산시장이 지난6월 28일(현지시각) 덴마크 에스비아르시 항만 배후시설과 인근에 조성된 해상풍력 발전단지를 방문해 시설과 운영상황을 청취하고 설치선에 탑승 관련 시설을 시찰하는 모습. 사진/울산시청
아울러 정부는 관련 기술 확대도 구상하고 있다. 태양광의 경우 가격경쟁력이 중국에 비해 떨어지는 상황에서 기술 격차도 줄어들고 있다. 이에 각막전지 등 차세대 태양전지와 함께 투명전지 등 미래형 기술도 개발 중이다. 실리콘 전지에서 다른 전지로 중심이 바뀌었을 때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풍력 역시 뒤처진 기술수준을 따라가는 동시에 울산시가 추진 중인 부유식 해상풍력 등 차세대 기술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조배숙 의원은 토론회 시작에 앞선 인사말에서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산업은 대내외적으로 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태양광은 중국기업의 역습에, 풍력은 기술력으로 무장산 선진국 기업들의 공격에 노출돼 있고, 발전사업 허가를 얻고도 주민 갈등을 비롯한 지역수용성 문제에 부딪히는 경우도 부지기수”라며 “재생에너지 산업이 발전 연료의 대체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정부와 유관기업, 국민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최서윤 기자 sabiduri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