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서윤 기자] 국방기술 소유권을 개발자가 갖도록 보장해 기업 등 민간의 능동적인 투자와 개발을 유인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현행 방위사업법상 한국은 선진국과 달리, 국방연구개발의 무형적 성과인 기술데이터와 지식재산권 등은 정부나 국방과학연구소 소유를 원칙으로 한다. 국방기술 유출을 방지한다는 취지인데, 국가경쟁력은 물론 방위산업의 신성장 동력화에도 큰 제약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법무법인(유) 화우 방위산업팀과 국민대 국방연구소는 12일 서울 아셈타워에서 ‘방위산업 지식재산권·기술보호 법제도 발전 세미나’를 열고 국방연구개발(R&D) 혁신방안을 논의했다.
법무법인 화우와 국민대 국방연구소가 12일 공동주최한 '방위산업 지식재산권 발전 세미나' 시작에 앞서 주최측 및 발표자들이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사진/법무법인 화우
군 법무관 출신으로 방위사업청 근무 경험이 있는 정진기 변호사는 “개발자가 무형적 성과를 소유하게 되면 적극적으로 개발 사업에 참여해 보다 우수한 기술을 개발하려고 최대한 노력할 텐데 개발을 하더라도 국가가 소유하고 독점권을 얻지 못한다면 수익성이 없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개발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 국가가 아무리 많은 재원을 투입해 연구개발사업을 추진한다 하더라도 효과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국가 또는 국방과학연구소 소유 지식재산권은 전문연구기관, 방산업체 및 일반업체에 ‘실시권’을 허락할 수 있다. 문제는 당초 연구개발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업체라도 일정기간 기술에 대한 실시권만 ‘허용’받을 수 있을 뿐이라는 점이다. 이에 고유 기술 보유 업체가 국방R&D 참여를 기피하거나, 개발 이후 업체가 지식재산권을 무단으로 출원하거나 등록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 지난해 3월 기준 30여건의 국방특허가 환수조치 된 바 있다.
법무법인 화우와 국민대 국방연구소가 12일 공동주최한 '방위산업 지식재산권 발전 세미나'가 진행되는 모습. 사진/법무법인 화우
해외 사정은 다르다. 국방과학기술 1위인 미국은 연방정부가 지원하는 연구개발사업의 지식재산권을 국공립연구소나 대학이 자체 보유하고 민간에 이전토록 의무화하고 있다. 단, 대기업을 제외한 중소기업, 비영리기관 및 대학에 한정한다. 2위 프랑스도 정부가 연구결과에 대한 지식재산권을 소유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아예 국방연구개발 전 과정에 국가가 직접 관여하지 않고 대학연구소들이 주요 역할을 담당, 신기술을 대학과 직접 연계된 방산업체를 통해 시제품 및 양산품을 생산한다.
결국 국방력과 국가경쟁력은 물론 방위산업의 신성장 동력화에도 큰 제약 요소로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정 변호사는 특히 “계약특수조건 표준 조항에서 국가 예산의 일부를 부담한 경우에도 일체의 소유권 및 사용권을 국가가 가지고, 협력업체 소유 지식재산권에 대해서도 사용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는 부분은 ‘불공정 조항’이라는 비판의 여지가 크다”고 꼬집었다.
자료/법무법인 화우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현재 국방R&D의 주관형태별 참여비중은 국방과학연구소가 47.8%, 산·학·연이 52.2%를 차지하며 이중 34.8%를 방산업체가 담당하고 있다. 방산수출이 2011년부터 20억달러 이상으로 급격히 확대하면서 수출품목과 수출대상국도 다변화하고 있다. 이에 정부도 2017년 11월부터 방위사업법상 국방R&D의 지식재산권을 도입했지만, 지식재산 민간소유 여부는 엄격히 제한한다. 비영리기관에 한해서만 공동소유가 가능할 뿐이다.
조현기 방사청 기술정책과장은 현행 국방R&D 지재권 도입 취지에 대해 “보호돼야 할 기술을 국가소유로 하고 그 외 기술은 이전과 활용을 허용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민군 겸용 다목적 견마형 로봇의 경우 △원격제어 무장 △군 정보통신 체계 △지뢰탐지 기술 등은 보호하고 △자율주행센서와 △전방합성 카메라 등을 기술이전해 민간이 활용토록 했다.
또 국가와 연구개발 주관기관이 기술을 ‘공동 소유’하고 기술 발전에 필요한 경우 당해 연구개발 수행자나 공동 투자자에게 지식재산권 ‘무상 양도’를 가능토록 한 ‘국방과학기술혁신촉진법안’을 지난해 10월 정부안으로 발의, 국회 국방위에 계류 중이다.
국방과학기술혁신촉진법안은 현재 국회 국방위원회에 계류중이다. 사진은 국방위 전체회의 모습. 사진/뉴시스
다만 정 변호사는 “여전히 국가가 국가안보상 필요한 경우 다른 공동 소유자의 동의를 얻지 않고 제3자에게 실시권을 허락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한계가 있다”며 “참여기관 또는 기업이 기술소유권을 보장받게 되면 더 많이 투자해서라도 어떻게든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기술개발에 사활을 걸고 매진할 것인데, 개발자가 무형적 성과를 소유함을 원칙으로 하되 국가는 실시권을 가지는 것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방사청 획득정책과장으로서 법안 준비를 맡기도 했던 조 과장은 “공동소유도 큰 발걸음으로 생각했는데 이제 아예 개발자 단독소유로 가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시는 것 같다”며 “현재로선 앞으로 최대한 나아간 게 공동소유”라고 설명했다.
다만 정 변호사의 주장에 대해 청중에 있던 국방과학연구소 한 관계자는 “연구개발 형태에 따라 정부투자, 공동투자, 업체투자가 있듯 무조건 참여업체가 개발자란 생각보다는 케이스별로 소유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다른 관계자는 “국방과학연구소가 소유권 뿐 아니라 사업이나 핵심기술개발 차질 시 문제를 모두 책임지고 있기도 하다”며 “정부의 일정한 관여가 수출에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최서윤 기자 sabiduri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