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응태 기자] 가습기 살균제 피해 범위를 확대하는 법안 발의로 가습기 살균제 유통·제조 업체가 촉각을 세운다. 구제급여 및 구제계정 등 기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이원화된 구분이 통합될 경우 개별 민사소송을 통해 배상 받을 수 있는 사례가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습기살균제참사집회기획단 회원 등 피해자 가족들이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집회를 개최한 모습. 사진/뉴시스
18일 업계에 따르면 국회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구분 폐지 등의 내용이 담긴 법안 통과 시 가해 기업의 배·보상 범위 및 사례가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 2011년 산모 7명의 폐질환 입원 후 가습기 살균제의 위해성이 밝혀진 지 8년이 지났지만, 현재 환경부로부터 인정 받은 피해자는 877명에 불과하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따르면 15일 기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신청 및 접수 건수인 6640건과 비교할 경우 약 13%의 피해자만 인정을 받은 셈이다.
이같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인정 범위가 지나치게 좁다는 비판이 나오자, 최근 20대 국회에선 건강피해 인정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의 법안 발의가 이어지고 있다. 현재 국회에선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에 대한 개정안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의 신창현 의원과 전현희 의원, 정태옥 자유한국당 의원, 이정미 정의당 의원, 조배숙 민주평화당 의원 등이 5개의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들은 모두 기존 구제급여와 특별구제계정을 통합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간 가습기 살균제 특별법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를 '구제급여(1·2단계)' 및 '특별구제계정(3·4단계)' 등으로 이원화해 지원을 해왔는데, 상대적으로 '구제계정' 피해자는 개별 민사 소송에서 불리했다. 구제급여는 가해 기업의 손해배상청구권 구상을 전제로 환경부 출연금으로 지원받는 반면, 구제계정은 가해 기업의 분담금으로 제공받아 정부로부터 피해 인정을 받았다는 의미로 해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혜정 환경노출피해자연합 대표는 "구제계정은 피해자로 인정됐지만 법적으로는 보호받을 수 없는 장치로 인식돼왔다"라며 "구제계정에 포함된 3, 4단계 피해자들에게 가해기업이 배보상을 한 사례는 거의 없다"라고 말했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가습기 살균제 조사1과 관계자들이 지난 7월 애경산업 본사에서 실시한 가습기 살균제 참사 관련 실지조사에서 취득한 자료를 들고 애경 본사를 나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에 따라 가습기 살균제 유통 및 제조업체들은 법안의 통과 여부에 관심을 쏟는다. 향후 피해자 구분 단계 폐지 등으로 정부 인정 범위가 확장되면 배·보상 범위가 증가할 것이란 관측에서다. 현재는 옥시레킷벤키저가 PHMG 성분이 담김 '옥시싹싹 뉴가습기 단번' 제품을 사용한 폐질환 관련 1, 2단계 구제급여 대상 피해자에게만 개별적인 '배상'과 '합의'를 진행한 상태다. CMIT와 MIT 성분으로 논란이 된 '애경'과 'SK케미칼'은 올해 검찰의 재수사로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으로, 공식적인 배·보상 정책을 내놓지 않았다. 특히 지난 9월 옥시로부터 3단계 피해자가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한 첫 판례가 나온 추세를 봤을 때 피해자 지원 단계가 통합되면 개별 소송 사례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피해자 구분 단계 폐지 외에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 입증 책임을 기업으로 전환하고, 집단소송제를 도입하는 등의 특별법 개정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김응태 기자 eung102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