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어디 비교할 데가 없어서 이명박근혜정부에…

입력 : 2019-12-20 오전 6:00:00
이강윤 언론인
3권분립과 의전 논란이 있지만 국무총리후보자로 정세균 전 국회의장이 결정됐다. 총리때문은 결코 아니지만 정국은 꼬일대로 꼬인데다 총선도 임박해 그 어느 때보다 고심이 컸을텐데, 난제가 풀리는 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인사의 요체는 메시지와 타이밍이다. 용인과 진퇴가 으뜸이거늘, 사람 쓰고 물리는 게 시(時)를 맞추지 못하면 효과는 반감되기 십상이다.
 
이 정부에는 시민 말고는 이른바 ‘창업공신’이란 게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다. 굳이 들자면, 상상도 못할 국정농단으로 촛불혁명을 촉발시킨 박근혜 최순실 김기춘씨 등이 공신이랄까. 물론 억장 무너지는 역설이다. 시민들은 삿된 것 청산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자며 엄동설한 6개월간 촛불 들어 현 정부를 출범시켰다. 그런 정부임에도 공신 노릇하려 드는 측근이 있다면 이만저만 엉뚱한 일이 아니다. 굳이 옛날 방식의 선거캠프와 운동을 하지 않아도 야당 승리는 당연한 대선이었다. 그런데 선거는 또다시 옛날 문법으로 치러졌다. 투표일까지 약 두 달 간 캠프에서 누가 무슨 일을 어떻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득표운동보다는 (인수위가 불가했기에) 집권 후 할 일과 버릴 일 등 정부출범 후 구체적 국정계획 수립에 역점을 뒀어야 한다. 그런데 선거때만 되면 활개치는 지역 토호들과 권력 부스러기를 탐하는 부나방들이 달려들어 지역책이니 직능책이니 특보단이니…왼갖 이름 갖다부치며 ‘지분’ 차지하려 구태선거로 방향을 잡아갔다.
 
시민이 유일 개국공신인 정부임에도 임기가 시작되자 음식에 파리 꼬이듯 이른바 실세들이 호명되기 시작했다. 문고리권력 몇몇이 인사에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가 끊이질 않았다. 촛불정부에서 조차 박근혜식 문고리권력과 비슷한 얘기가 운위된다면, 시민에 대한 배반이다.
 
촛불정권이 임기 반환점을 돌았다. 유감스럽지만, 전반기 채점은 흡족하지 못하다. 기대만큼 균등하거나 공정하지 못했다. 수뢰혐의가 포착됐음에도 무려 75일이나 버티다 영전해간 유재수 전 금융위 국장 사례가 대표적이다. 여늬 공무원같으면 상상이나 될 일인가. 그는 실력자로 통했다. 실무면에서 무능하다는 지적도 가볍지 않다. 노동권후퇴와 아직도 법외노조 상태인 전교조 문제도 그렇고, 김용균씨 사망 이후로도 매일 세 명의 김용균들이 비슷한 사유로 비명횡사하는데 근본적으로 별 진척이 없다. 청장년 일자리문제는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고, 부동산폭등도 이전과 판박이 양상이다. 촛불정국 당시 새누리당 지지율은 5%대로 정치적 파산선고가 내려졌다. 그런데 불과 2년 새 촛불 이전 지지율 근처까지 왔다. 무엇보다 뼈아픈 것은 “대통령만 바뀌었을 뿐 달라진 게 뭐냐”는 시민들의 한탄성 질문이다.
 
이 정권은 공정치 않은 조짐만 있어도 불공정한 그 무엇이 있는 것처럼 보일 수 밖에 없다.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아름답기 그지 없는 슬로건을 철석같이 약속했기에 불가피한 숙명이다.
 
‘리셋’이 필요하다. 컴퓨터를 껐다 켜듯 재출발해야 한다. 캠프인지 캠핑장인지 하는 인사 풀(pool)부터 바꿔야 한다. 창업공신이 있을 수 없는 정부에 웬 캠프공신들이 그리 많은지…. 이들은 관행이라는 이름의 악습을 그대로 답습해 공기관 감투는 물론, 심지어 정부직도 공모 형식을 빙자해 나눠먹기 일쑤다. 정부 이름을 내건 공모제를 내정자 들여앉히는 통과의례로 전락시킨 건, 간단히 말해 사기다. 이러니 무슨 권위가 서고 령이 잡히겠는가. 대통령과의 인연이나 대선 기여도를 내세우는 호가호위자들의 막후 전횡은 이전과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이 정부 최대주주이자 유일한 채권자는 시민이다. 기색을 살필 대상은 무오류주의와 개인숭배의 늪에 빠져 ‘묻지마 신도’가 돼버린 ‘홍위병 빠’가 아니라, 애정과 근심으로 이 정부의 하루하루를 내 일처럼 지켜보고 있는 시민이다. 그들이 “아니다”라고 하면 아닌 것이다. 캠프와 ‘빠’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게 두번 째 단추다.
 
물론 야당의 망국적 횡포 탓이지만, 정치-재벌개혁의 적임 정권이었는데 현재까지는 후한 점수를 주기 힘들다. 3년 전 촛불의 감동과 벅찼던 희망을 떠올리면 어처구니가 없다. 어떻게 그 사이에 희망이 물음표로 바뀐단 말인가. 어디 비교할 데가 없어서 “이명박근혜 정부에 비해 나아졌다”는 말이 나오는가. 고작 그러려고 든 촛불인가.
 
이강윤 언론인(pen33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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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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