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의원이 노원구청장 당시 자신에 대해 '종북 성향'이란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면서 KBS 아나운서 출신 고 정미홍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김성환 의원이 정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한 상고심에서 정씨가 김 의원에게 800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고 22일 밝혔다.
재판부는 "원심은 피고가 트위터에 '종북 성향의 지자체장들'이란 표현 행위를 게재함으로써 원고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인격권을 침해했고, 그와 같은 각 행위의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관련 법리와 기록에 비춰 살펴보면 원심 판단에 상고이유와 같이 명예훼손과 인격권 침해, 위법성 조각 사유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대법원 판례를 위반하거나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 사실을 잘못 인정하는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다만 상고심 과정에서 정씨의 사망으로 김 의원이 낸 소송수계신청은 기각했다. 재판부는 "피고는 2015년 7월28일 상고이유서를 제출한 이후인 2018년 7월25일 사망한 사실을 알 수 있고, 상고심의 소송 절차가 이와 같은 단계에 진입한 이상 상속인들이 소송을 수계할 필요성은 없다"며 "피고의 상속인들은 변론을 종결한 뒤의 승계인으로 원고가 승계집행문을 부여받아 판결을 집행하는 데에도 아무런 지장이 없으므로 원고의 소송수계신청은 이유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 10월11일 전남 나주시 한국전력공사 본사에서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 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김성환 의원이 김종갑 한전 사장에게 질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 의원이 구청장을 역임했던 지난 2013년 1월 노원구청은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노원구 주민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사진으로 보는 한국근현대사'란 제목의 인문학 특강의 수강생을 모집했다. 당시 일부 주민과 보수 성향의 단체들이 한홍구 교수를 김일성 찬양론자라고 주장하면서 같은 달 17일부터 노원구청 앞에서 강의 취소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정씨는 그달 19일 자신의 트위터에 "서울시장, 성남시장, 노원구청장 외 종북 성향의 지자체장들 모두 기억해서 내년에 있을 지방 선거에서 반드시 퇴출해야 합니다. 기억합시다"란 글을 게시했다. 이후 21일 노원구청의 홈페이지에는 '종북 음해세력에 강력한 법적 대응'이란 제목으로 "정씨의 '종북 성향' 발언은 우리 사회를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대립의 장으로 만들어 갈등과 반목을 조장하고, 이로 인한 사회적 분열을 초래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가 게시됐고, 다음 달 다수의 매체에서 보도됐다.
김 의원은 정씨가 트위터에서 자신을 '종북'이라고 매도한 것은 인격권과 명예 등을 훼손하는 불법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정씨를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정씨는 노원구청이 보도자료를 낸 것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면서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1억원을 지급하란 내용의 맞소송을 냈다.
지난 2017년 3월8일 전북 전주시 오거리광장에서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가 주최한 태극기 집회가 열린 가운데 정미홍 전 아나운서가 무대에 올라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심은 정씨가 김 의원에게 8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나 '종북 성향'이 발현되는 행위, 즉 북한을 추종하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보안법에 따라 처벌될 수 있는 실정을 고려하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종북 성향'의 인사로 지목되는 경우 그에 대한 사회적 평판이 크게 손상될 것임이 명백하므로 그 사람의 명예가 훼손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따라서 이 사건 표현 행위는 원고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또 "피고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원고를 '종북 성향'의 인사로 볼 수 있는 근거라고 피고가 주장하는 여러 가지 사정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거나 그것만으로 원고의 성향이 '종북'이라고 단정하기에는 그 근거가 매우 박약한데도 원고를 '종북 성향의 지자체장'이라고 단정해 지칭한 행위는 진실하거나 진실하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공적인 존재인 원고의 정치적 이념이란 공적 관심사에 관한 것으로서 표현의 자유가 넓게 인정돼야 할 문제에 관한 것이란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는 표현의 자유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으로서 위법한 행위라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고는 이 사건 표현 행위로 원고의 명예가 훼손됨으로써 원고가 겪었을 정신적 고통을 금전으로나마 위자할 의무가 있다"며 "이 사건 표현 행위의 경위와 내용, 원고와 피고의 사회적 지위, 이 사건 표현 행위가 일회적, 우발적 행위에 불과한 점, 그에 대한 논란이 일자 피고가 이를 곧바로 삭제한 점 등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제반 사정을 종합해 볼 때 피고가 지급할 위자료의 액수는 800만원으로 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덧붙였다.
반대로 정씨의 주장에 대해서는 "보도자료의 내용 중 피고가 피고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하는 부분은 피고의 이 사건 표현 행위를 반박하는 원고의 주장이나 견해를 표명하고, 그에 대한 법적 대응 계획을 밝힌 것이므로 피고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침해하는 구체적 사실을 적시하는 표현 행위로서 피고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정씨는 1심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2심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종북 성향'이란 표현은 경우에 따라서 단순한 의견 또는 논평에 불과할 수도 있으나, 피고처럼 아무런 전후 설명 없이 원고를 '종북 성향의 지자체장'으로 지칭하는 글을 게시했다면 이는 원고에게 '종북 성향'이 있다는 사실, 즉 원고가 북한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지방자치단체장이란 사실을 묵시적으로 포함한 표현이라고 할 것"이라며 "따라서 이 사건 표현 행위는 원고의 사회적 평가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표현으로 원고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사진/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