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도의 밴드유랑)튀면 안 되는 동네…‘진짜 나’ 찾은 카코포니

화성학 모르는 고시 준비생…어머니 사별 뒤 뮤지션 길로
“깨달았어요, 나 자신을” 이촌서 카코포니와 ‘인생 여행’①

입력 : 2019-12-24 오전 8: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밴드신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 차트를 가득 메우는 음악의 포화에 그들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지난해 오랜 암 투병을 하던 어머니를 떠나보냈다. 형언할 수 없는 마음의 폐허, 상실….
 
종이 한 장 차이 같던 생과 사의 갈림은 역설적으로 그를 움직였다. 어머니를 간호하던 그는 사별 후 단 6개월 여만에 곡들을 써냈다. 삶과 죽음, 선과 악, 그와 세계를 둘러싼 모든 ‘카코포니(불협화음)’들은 새로운 ‘和(화)’를 찾아갔다. 아이슬란드 뮤지션 비외르크(비요크) 같은 처절한 목소리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만나보기로 했다. 지난해 혜성처럼 데뷔한 싱어송라이터 카코포니(25·본명 김민경).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아픔 같은 사람일까. 쓰라린 상실의 상처를 이겨가는 사람일까. 4일 밝은 그의 미소를 마주하자, 뒤엉켜 있던 선입견이 눈 녹듯 사라졌다.
 
“저를 만나는 사람마다 깜짝 깜짝 놀라요. 음악만 듣고는 무서운 사람인 줄 알았대요.”
 
지난 4일 서울 동부이촌동 인근 한강에서 만난 싱어송라이터 카코포니. 그는 "무서운 사람인 줄 알았다"는 사람들의 반응에 놀라 "최근 밝은 색의 옷을 입고 있기 시작했다"며 활짝 웃어보였다.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이날 카코포니와 만난 곳은 서울 동부이촌동. 4살 무렵부터 이 동네에서 살아왔다는 그와 ‘인생 여행’을 해보기로 했다. 이촌역 4번 출구 앞에서 만난 우린 그의 발자취가 묻은 동네 구석구석을 누볐다. “수학여행 때 소녀시대 춤을 췄다”는 초등학교를 지나, 종종 머리를 식히러 간다는 카페와 한강 공원을 오갔다. 시종 밝고 쾌활한 설명을 들으며 마음이 맑아졌다.
 
시간이 흐르자 점차 깊은 이야기가 나왔다. 동네는 그에게 애증, 아픔의 공간이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교육열 높은 이 곳 분위기에 자신을 맞춰 살았다. 동네에선 요구되는 최소한의 것들이 있었다. 튀면 안 되는 사람, 적당히 슬프고 적당히 기쁜 사람, 적당히 성공한 올곧은 사람…. 타인보다 감정 폭이 몇 배 큰 자신을 지운 채 살아야 했다. 허한 기분을 잊으려 잠시 ‘스펙 끝판왕’ 고시도 준비했다.
 
“돌아보면 잘못된 몰두였던 것 같아요. 하루 나 자신에게만 충실할 뿐 근본적 질문을 안던졌죠. 일종의 도피처였던 것 같아요.”
 
한강 인근으로 산책 가던 중 찍은 싱어송라이터 카코포니.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지난해 어머니 곁을 지키던 그는 생을 돌아보게 됐다. 간호사였던 그 분이 예술가란 오랜 ‘꿈’을 품고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왜 근데 그렇게 힘들게 집착하며 살았어?’ 죽음을 앞둔 어머니가 답했다. ‘나도 왜 그렇게 살았는지 모르겠어….’ “깨달았어요. 나 자신을. 남들 눈에 맞춰 살아왔던 것을. 저는 ‘겨울왕국’, ‘토이스토리’만 봐도 눈물 펑펑 쏟는 사람인 걸요.”
 
어머니의 임종을 지킨 뒤 무의식에 스치던 꿈, 음악을 시작했다. 악보 볼 줄도, 화성학도 모르지만 기분을 나타내는 음을하나 하나 컴퓨터에 찍었다. 어머니가 사라진 집과 동네, 물밀 듯 밀려 오는 부재감과 압박감, 죄책감….
 
모친 생일(10월4일)에 맞춰 앨범을 내기로 했다. C 메이저 세븐 같은 화음처럼 멋진 이름조차 없는 단어(카코포니)를 예명으로 택했다. 이름을 붙인 뒤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이름. 6개월여 동안 꼬박 집에서 만든 데뷔작 ‘和(화)’가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왔다.
 
“삶과 닿아 있는 감정들이 밀어 닥치니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곡만 썼어요. 어머니를 위해, 안 만들면 안 되겠다는 심정으로, 자각조차 못하고 음악만 했어요.”
 
한강변을 거닐며 종종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는다는 카코포니. 이소라, 라디오헤드를 "진짜 아파본 사람들의 음악 같다"던 그의 최근 플레이리스트는 에프케이에이 트위그스, 본 이베어 등이다.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앨범 첫 곡 ‘숨’은 그가 어머니 방에 앉아 쓴 곡이다. 집 곳곳 어머니의 흔적이 숨결처럼 그에게 와 닿았다. “제게 어머니는 여전히 살아 있어요.” 반짝이는 눈망울에 본연의 감정, 자아를 택한 인간 김민경이 비춰졌다. 
 
“기쁠 때든, 슬플 때든 김민경이란 사람은 감정 폭이 타인의 몇 배쯤은 되는 것 같아요. 집 근처 한강이 있어 좋아요. 마음무거울 때 가서 음악 듣고 맥주 한 잔 하면 다시 좋아져요.”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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