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 후 참고인 진술' 증거 불인정…정경심 재판 영향은?

대법, 파이시티 브로커 사건 무죄 취지 파기 환송

입력 : 2019-12-23 오후 3:04:58
[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공소 제기 후 재판에서 증언할 참고인을 미리 불러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받아낸 것은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판결이 나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도 이 판결 내용을 언급한 적이 있어 앞으로의 재판에서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대법원 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특정범죄가중법 위반(알선수재) 혐의로 기소된 양재동 화물터미널 복합개발 사업(파이시티 사업) 브로커 이모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1년6개월에 추징금 4억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3일 밝혔다.
 
재판부는 1심에서의 무죄를 뒤집고 2심에서 이씨가 유죄를 선고받은 것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파이시티 시행사 이정배 전 대표의 검찰 진술 조서가 증거 능력이 없고, 이 진술 조서에 대한 법정 진술도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에 대한 영장심사를 마친 후 지난 10월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와 관련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송인권)는 지난 10일 사문서위조 혐의로 기소된 정경심 교수의 3차 공판준비기일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문을 제시하면서 정 교수의 변호인에게 "(판결문을) 참고해 증거 인부를 해달라"고 말했다. 검찰이 제시한 진술 조서와 압수물 등이 증거 능력을 갖췄는지 가려달라는 취지다. 재판부는 이날 기일 말미에 "공판준비기일이 지나서도 증거를 기습으로 제출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형사소송법에 따라 증거능력이 없다"며 "증거가 있다면 미리 제출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앞서 재판부는 지난달 26일 2차 공판준비기일에서는 "이 사건은 특이하게 다른 사건과 달리 공소 제기 이후에도 압수수색, 구속영장 발부, 피의자 신문 등 수사가 계속 이뤄졌다"며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공소가 제기된 이후 압수수색으로 드러난 증거는 이미 기소된 사건의 증거로 사용되면 적절하지 않으니 증거목록에 강제 수사로 취득한 내용이 있다면 모두 빼야 한다"고도 언급했다. 
 
정 교수의 변호인은 지난 19일 4차 공판준비기일 직후 참고인 3명에 대한 진술 조서가 같은 일시와 장소로 작성된 것, 압수수색영장이 언제 집행됐는지 확인할 수 없는 것 등 2가지를 문제 삼았다. 형사소송법에 따라 피의자 조사 과정을 기록하도록 하고 있는데, 진술 조서가 제대로 작성되지 않았다는 등 증거 능력이 없다는 주장이다. 또 증거목록에서 압수수색영장 집행 시점이 언제인지 확인할 수 없어 기소 이후의 강제 수사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정 교수 조사와 관련한 검찰의 조서가 증거 능력이 없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며 "송인권 부장판사의 발언을 보면 형사소송법과 증거 능력과 관련된 판례를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재판부가 소환도 없이 기소하는 등 정 교수에 대한 수사가 과하다고 보고, 기본권 침해의 문제의식을 느낀 것 같다"고 덧붙였다.
 
복합유통단지 파이시티의 인허가 과정에서 수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2012년 4월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구속영장이 발부돼 구치소로 이감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씨는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의 친분을 내세워 파이시티 사업 인허가와 관련한 청탁 비용 명목으로 지난 2007년 8월부터 2008년 5월까지 이 전 대표에게 총 5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이씨는 당시 한국갤럽 회장이던 최시중 전 위원장과 같은 경북 포항시 출신이자 중·고교 후배이며, 이 사업을 소관하는 서울시의 시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었다. 
 
1심은 최 전 위원장이 받은 돈의 단순한 전달자로 판단해 이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단순한 전달자로서 이 사건 금액을 수수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고, 이렇듯 피고인이 단순 전달자로서 금액을 수수한 것이라면 알선수재죄로 처벌하기는 어렵다"고 판결했다. 
 
2심은 이씨가 받은 5억5000만원 중 4억원을 최 전 위원장과 무관하게 독자적인 로비 명목으로 받았다고 일부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6개월에 추징금 4억원을 선고했다. 검찰은 이씨에 대한 항소심 1차 공판기일 하루 전인 2012년 11월15일 이 전 대표를 참고인으로 조사해 5차 진술 조서를 작성했다. 이 과정에서 이 전 대표에게 증인 신문을 신청할 예정이란 내용은 알려주지 않았다.
 
검찰은 이 전 대표를 증인으로 신청했고, 그해 12월14일 증인으로 나온 이 전 대표는 5차 진술 조서와 같은 취지로 "피고인이 같은 고향 출신인 MB가 대통령에 당선돼 자기도 이제 힘이 생겼으니 돈을 받아야 할 위치가 됐다고 하면서 이제 독자적으로 사람도 만나고, 사업 성공을 위해 자기가 알아서 한다면서 돈을 달라고 하기에 돈을 주게 됐다"고 진술했다. 2심 재판부는 5차 진술 조서는 증거 능력을 인정하기 어렵지만, 법정 증언은 증거법상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4억원의 유죄를 인정했다.
 
지난 2012년 4월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파이시티 사무실에 양재 파이시티 신축공사 조감도가 걸려 있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대법원은 2심을 뒤집고, 사건을 다시 판단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공소를 제기한 후 참고인을 소환해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기재한 진술 조서를 작성하고, 이를 공판 절차에 증거로 제출할 수 있도록 하면 피고인과 대등한 당사자의 지위에 있는 검사가 수사기관의 권한을 이용해 일방적으로 법정 밖에서 유리한 증거를 만들 수 있게 하는 것이 된다"며 "당사자주의, 공판중심주의, 직접심리주의에 반하고,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판시했다.
 
또 "이 전 대표의 원심 법정 진술은 자신의 검찰 4차 진술 조서, 피고인의 검찰 자백 진술과 내용이 일치하지 않고 모순된다"며 "증인신문 전 수사기관에서 조사하고, 이 전 대표에 대한 5차 진술 조서를 작성한 경위와 법정 진술의 과정과 내용에 비춰 보면 이 전 대표가 원심 법정에서 진술하기 전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고 진술 조서가 작성되는 과정에서 수사기관의 영향을 받아 이 사건 공소사실에 맞추기 위해 진술을 변경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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