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중 삼성전자 등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를 후원하도록 강요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씨의 조카 장시호씨와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에 대해 대법원이 사건을 다시 재판하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들의 강요 혐의가 협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6일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된 장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김 전 차관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한 원심판결 중 강요 혐의에 대한 유죄 부분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원심은 피고인들의 요구가 해악의 고지라고 전제해 이 부분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제1심판결을 유지했다"며 "원심의 판단에는 강요죄의 협박에 관한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다"고 판결했다.
강요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는 범죄다. 협박은 객관적으로 사람의 의사결정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의사실행의 자유를 방해할 정도로 겁을 먹게 할 만한 해악을 고지하는 것으로, 협박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발생 가능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정도의 구체적인 해악의 고지가 있어야 한다.
장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 최씨, 김 전 차관과 공모해 지난 2015년10월부터 2016년 3월까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압력을 행사해 삼성전자가 영재센터에 총 16억2800만원을 후원하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 전 차관과 함께 2016년 4월부터 6월까지 문체부 산하 공기업인 그랜드코리아레저(GKL) 관계자가 영재센터에 총 2억원을 후원하게 한 것으로도 조사됐다.
또 2015년 9월부터 12월까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기원 제1회 동계스포츠(빙상) 영재캠프' 사업비 일부를 자신이 부담할 것처럼 속인 후 차명으로 운영 중인 누림기획의 운영비로 사용한 것을 포함해 국가보조금 2억3970만원을 편취하는 등 보조금관리법 위반·사기 혐의, 2015년 11월부터 2016년 5월까지 영재센터를 운영하면서 허위 용역 대금 지급 등의 방법으로 법인 자금 3억182만원을 유용하는 등 업무상횡령 혐의도 받았다.
김 전 차관은 최씨,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함께 2016년 5월 그랜드코리아레저 관계자에게 압력을 행사해 장애인 펜싱팀을 창단하게 하고, 최씨가 운영하는 더블루케이를 에이전트로 해 선수와 전속계약을 체결하도록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삼성그룹에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을 강요한 혐의 등으로 1·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현재 대법원에서 재판 중인 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지난 2018년 11월15일 새벽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구치소에서 석방된 후 차량에 탑승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심은 장씨에게 징역 2년개월을, 김 전 차관에서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들의 혐의 중 그랜드코리아레저 후원금 일부를 무죄로 판단했다. 또 김 전 차관에 대해서는 삼성전자가 영재센터에 후원하도록 한 혐의의 공동정범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김 전 차관에 대해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최서원, 장시호, 대통령과 이 부분 범행을 공모했다거나 역할 분담에 의한 기능적 행위 지배를 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2심은 장씨의 보조금관리법 위반·사기 혐의를 무죄로 판단해 징역 1년6개월로 감형했다. 김 전 차관에 대해서는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장시호가 사후적으로 1·2차 보조금 정산결과보고서에 일부 자부담금 집행내역을 허위로 기재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는 피고인이 각 보조금 지원 신청 당시부터 사업계획서 기재대로 자부담금을 집행할 의사가 없는데도 마치 그 기재대로 정상 집행할 것처럼 가장해 각 보조금을 편취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달리 피고인이 문체부를 기망해 각 보조금을 편취했다거나 거짓 신청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국가보조금을 교부받았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대통령과 경제수석비서관이 직무상 또는 사실상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기업 등에 대해 그 지위에 기초해 어떠한 이익 등의 제공을 요구했다고 해서 곧바로 그 요구를 해악의 고지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며 이들의 행위가 강요죄의 협박으로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문체부 2차관이 그랜드코리아레저에 대한 감독 업무를 총괄하고, 그랜드코리아레저 사회공헌재단 역시 문체부 2차관 산하 관광정책실의 감독을 받으며, 사회공헌재단 이사장이나 그랜드코리아레저 대표이사가 수사기관과 1심 법정에서 피고인 김종의 요구에 부담감을 가졌다거나 거절하기 힘든 상황이었다는 등의 주관적인 내용을 진술했다는 등의 사정만으로는 이 요구를 해악의 고지'로 평가하기에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장씨는 지난 2018년 11월 형 만기를 앞두고 대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으로 석방됐다. 김 전 차관도 그해 12월 구속 기간 만료로 출소했다.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지난 2018년 6월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