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중 포스코 계열의 광고대행업체 지분 강탈을 시도한 혐의로 기소된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에 대해 대법원이 사건을 다시 재판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차은택 전 단장이 KT에 강요한 혐의를 협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6일 강요미수 등 혐의로 기소된 차은택 전 단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차 전 단장의 나머지 혐의에 대한 판단과 기소된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에게 징역 4년에 벌금 50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차 전 단장과 송 전 원장은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씨,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과 함께 지난 2015년 3월부터 6월까지 포스코 계열의 광고대행업체 포레카를 인수한 중소업체 컴투게더 대표 A씨를 상대로 포레카 지분 80%~90%를 넘기라고 협박하는 데 가담한 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A씨가 요구에 응하지 않아 미수에 그쳤다.
또 차 전 단장은 최씨 등과 공모해 2015년 1월부터 2016년 3월까지 황창규 전 KT 회장을 압박해 지인을 KT에 채용하게 한 후 다시 광고 업무를 총괄하는 직책으로 전보하게 하고, 자신이 설립한 플레이그라운드를 광고대행사로 선정하도록 강요한 혐의도 받았다.
지난 2006년 1월부터 10월까지 자신이 설립한 광고제작업체 아프리카픽쳐스에 부인을 직원으로 허위 등재하는 수법으로 급여를 지급한 후 이를 생활비, 개인 채무이자 납부 등으로 사용한 것을 포함해 총 20억원 상당을 유용하는 등 특정경제범죄법 위반(횡령) 혐의와 횡령액 중 4억5500만원 상당을 자신의 계좌로 입금하는 등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도 추가됐다.
송 전 원장은 2014년 12월 취임 전인 그해 11월 광고제작업체 B사로부터 540만원 상당의 뇌물을 받고, 취임 후 2015년 5월 진흥원이 공모한 연구과제에 B사가 최종 선정되도록 해주는 대가로 3200만원 상당의 뇌물을 받는 등 특정범죄가중법 위반(뇌물), 사전뇌물수수 혐의를 받았다.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이 지난 2018년 4월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 항소심 2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심과 2심은 차 전 단장에게 징역 3년, 송 전 원장에게 징역 4년에 벌금 50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차 전 단장에 대해 "최서원, 안종범 등과 순차적으로 공모하여, 포레카를 단독으로 인수하려는 피해자를 장기간에 걸쳐 다양한 방법으로 협박하면서 포레카의 지분을 요구해 피해자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심각하게 방해했다"며 "대통령이나 경제수석비서관의 요구를 받은 기업이 느낄 부담감과 압박감을 이용해 KT의 황창규 등이 자신의 지인을 KT에 채용하게 하는 등 기업경영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송 전 원장에 대해서도 "피고인은 피해자와 약 30년 동안 상당한 친분을 유지해 온 사이임에도 차은택과 포레카에 관한 대화를 하던 중 스스로 피해자를 설득해보겠다고 하면서 적극적으로 이 사건 강요미수 범행에 가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법원은 "대통령이나 경제수석비서관의 지위에 기초해 KT 회장 등에게 특정인의 채용·보직 변경과 특정 업체의 광고대행사 선정을 요구한 행위가 강요죄에서의 협박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차 전 단장에 대한 강요죄의 성립을 인정한 원심판결을 파기했다.
강요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는 범죄다. 협박은 객관적으로 사람의 의사결정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의사실행의 자유를 방해할 정도로 겁을 먹게 할 만한 해악을 고지하는 것으로, 협박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발생 가능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정도의 구체적인 해악의 고지가 있어야 한다.
재판부는 "피고인 차은택이 최서원과 전 대통령의 관계, 최서원의 영향력에 대해 인식했고, 지인에 대한 인사가 이례적이며, 안종범이 황창규를 재촉했고 안종범이 황창규에게 대통령의 관심사항, 지시사항이라고 이야기해 황창규가 부담감을 느꼈다거나 대통령이나 경제수석비서관이 각종 인허가, 세무조사 등 기업경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는 등의 사정만으로는 이 요구를 해악의 고지로 평가하기에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이 지난 2018년 4월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 항소심 2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