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국내 대중음악 시장, 공연계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25일 KOPIS 공연예술 통합전산망(공연종합통계, 연극·뮤지컬·클래식·오페라·무용·국악·복합 등 7개 분야)에 따르면 지난 주말(22~23일) 공연 예매건수는 5만425건을 기록했다. 6만8850건을 기록한 1달 전 마지막 주말(1월25~26일)과 비교해 약 1만8000건 이상이 줄어든 규모다. 코로나 19의 소강 기대가 높았던 직전 주말(15~16일·6만4605건)과 비교해봐도 현저히 낮은 수치다.
이달 1일부터 24일까지 공연 매출액은 184억249만원으로, 전월 동기(322억4228만원)에 견줘 42.9% 감소했다. 절반 가까이 줄어든 셈이다. 지난달 마지막째주 22만건이었던 주간 예매건수는 2월 첫째주부터 12만7000여건으로 급격히 하락, 13만건 초중반을 오가고 있다.
23일 정부가 코로나19 경계 경보를 심각 단계로 격상하면서 악재는 당분간 장기화될 조짐이다. 뮤지컬, 연극이 조기 폐막하는 가운데 유명 클래식 오케스트라단, 해외 팝스타의 내한 공연, 대중음악 시상식도 줄줄이 취소, 잠정 연기되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입었던 피해가 재현될까 하는 우려도 나온다.
뮤지컬·연극 조기 폐막 수순…클래식 공연도 잇따라 취소
이미 ‘위윌락유’, ‘영웅본색’ 등 대형 뮤지컬이 공연회차를 채우지 못하고 폐막했다.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은밀하게 위대하게: 더 라스트’를 오는 29일까지만 공연하고 남은 회차를 취소한다. 오는 28일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막이 오를 예정이던 ‘마마, 돈 크라이’는 개막을 아예 잠정 연기했다.
대학로도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3월22일까지 공연 예정이던 뮤지컬 ‘줄리앤폴’은 티켓을 오픈한 3월2일까지만 공연하기로 했다. 음악극 ‘레오의 비행노트’는 5일간 진행하기로 했던 스케줄을 4일로 변경해 서둘러 막을 내렸다. 안영도 대학로발전소 팀장은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공연업계 불안감이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다”며 “공연이 취소되고 스케줄이 변동되는 일이 비일비재한 상황에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고민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했다.
예술의전당은 오는 3월3일까지 자체 기획 공연, 전시행사, 교육 강좌 등을 한시적으로 전면 취소, 운영하기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정동극장은 지난 14일 개막한 공연 ‘적벽’을 내달 8일까지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서울문화재단 역시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와 삼일로창고극장 공연장·스튜디오를 임시 휴관했다.
코로나19 확산과 관련해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방역 관계자들이 공연장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세종문화회관
클래식업계 역시 비상에 걸렸다. 최근 보스턴 심포니의 첫 내한공연이 무산된 데 이어 3월 예정됐던 루체른 스트링 페스티벌, 홍콩필하모닉 공연이 잇따라 취소됐다. 홍콩필하모닉의 대표를 맡고 있는 베네딕트 포어는 19일 이메일을 통해 “홍콩필의 예술감독이자 홍콩의 문화홍보대사인 얍 판 츠베덴은 이번 투어에 대해 매우 기대가 컸다. 하지만 단원과 스텝, 관객들의 건강이 그 무엇보다 우선이기에 이번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며 “본 투어의 일정을 최대한 빨리 새로 잡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예술감독을 맡아온 ‘2020 대관령겨울음악제’는 폐막일을 못다 채우고 막을 내렸다. 강원지역 코로나 확산세가 빨라지면서 23일 강릉아트센터에서 예정됐던 ‘피스풀 뉴스’, 24~25일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예정됐던 ‘겨울나그네’ 공연을 모두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평창대관령음악제 공연사업팀 관계자는 “도내 확진 환자가 삼척, 속초, 춘천에 발생함에 따라 부득이 남은 공연을 취소하게 됐다”며 “여름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 좋은 공연으로 관객들을 찾아뵐 것”이라 전했다.
올해 평창대관령음악제는 폐막식을 진행하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사진은 평창대관령음악제에 선 오케스트라 무대. 사진/평창대관령음악제
한국대중음악상 취소 결정…미카, 루엘 등 팝스타 내한 잠정 연기
대중음악 시장도 코로나 사태를 주시하며 행사나 공연을 일제히 취소, 연기하는 분위기다. 매년 일반 관람객을 초대해 축제 형식으로 꾸리던 ‘제 17회 한국대중음악상’은 취소를 결정했다. 코로나 소강 국면이던 이달 초만 해도 뮤지션, 취재진만이라도 초청할 계획이었으나 그 마저 여의치 않게 됐다. 주최 측은 “상황에 따른 대응 방안을 모색하며 가능한 시상식을 진행하고자 노력했다”며 “정부, 지자체, 시민들이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시점에, 모두의 안전과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이 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국을 찾기로 했던 해외 팝스타들의 일정도 줄줄이 연기되거나 취소되고 있다. 호주 출신 싱어송라이터 루엘은 오는 27일 서울 마포구 홍대 무브홀에서 두번째 내한공연을 열 예정이었으나 연기했다. 대신 공연 날짜와 일정을 9월18일 서울 광진구 예스24 라이브홀로 변경했다. 공연기획사 라이브네이션 측은 “세계적으로 코로나19 확진 사례가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고 일부 아시아 국가들을 대상으로 입출국 제한이나 격리 조치가 시행되고 있다”며 투어가 어려운 상황임을 고지시켰다.
영국 세계적인 팝스타 미카 역시 내달 4~5일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예정됐던 4년 만의 내한 공연을 잠정 연기했다. 미국 재즈계 거장인 색소포니스트 케니지 역시 이달 21일과 23일 서울과 부산에서 한국 팬들을 만날 예정이었으나 10월로 일정을 미뤘다. 칼리드, 브루노 메이저, 스톰지도 공연을 취소 또는 연기했다. 공연계, 대중음악계에서는 오는 3월22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릴 그린데이의 10년 만의 내한 공연을 못 볼까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지난 2010년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렸던 팝스타 미카의 두 번째 내한공연. 사진/뉴시스
“정부 지원금 투명성 확립 논의 필요” 목소리도
공연계는 대관 업무와 개런티 등의 사용료를 미리 지급하는 형태라 취소될 경우 타격이 크다. 그간 사스, 메르스 등의 사태가 있었음에도 정부, 민간 차원 천재지변 대응 매뉴얼이 체계적으로 갖춰지지 못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최근 일각에서는 기존의 스태프, 배우 임금 체불 문제를 코로나 사태와 엮는 기획사 횡포 등도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청한 한 공연 관계자는 “코로나 사태로 공연을 취소하며 기존 임금체불 등 꼼수를 덮으려는 몇 기획사들이 있다”며 “올초에는 어떻게든 코로나 정부 지원금을 타보려고 고의로 공연을 접는 기획사들도 몇몇 있었다. 천재지변 사태 발생 시 지원금의 투명성에 관한 공연계 대응 논의가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지난 20일 정부는 공연 관계자들과 만나 공연계 긴급 지원 방안을 발표했으나, 더 근본적인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체감 상’의 문제로 이번 코로나 사태를 더 심각한 상황으로 보는 분위기도 있다. 또 다른 공연 관계자는 “해외 메르스 발생국가였던 중동 지역보다 (중국이) 거리상 가까운 점에 대한 불안감이 큰 것 같다”고 했다. 또 이 관계자는 “통상 해외 뮤지션들이나 투어 팀의 경우 아시아권을 하나로 묶어 진행한다”며 “과거 한반도 정세가 불안할 때 연달아 아시아 공연이 취소된 전례가 있다. 특정 한 국가만 문제가 있어도 해외에서는 심각한 공연 취소요인으로 고려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0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소극장을 방문, 코로나19 대응 현황을 점검하고 공연계 관계자들과 만나 긴급 지원 방안 발표했다. 하지만 공연계 현장에서는 지원금의 투명성 공개, 기존 임금체불을 덮으려는 꼼수 등의 문제를 지적하며 "체계적 대응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사진/뉴시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