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현정 기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4·15 총선을 코 앞에 둔 정치권은 '비상'이 걸렸다. 일각에서는 총선 연기론이 거론되고 있다. 대구 등 일부 도시가 마비되는 상황에서 총선은 무관심 속 '깜깜이 선거'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판세 분석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야는 각각 '야당 심판론', '정권 심판론'을 내세우고 있지만 총선 이슈가 모두 코로나19에 묻히면서 민심의 향배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태다.
이에 모든 정당들은 코로나19 관련 위원회·TF 가동에 나서며 정부 대응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여야 지도부는 "총선 연기에 대해 검토한 바 없다"는 입장으로, 총선 연기론에 대해 신중론을 펴고 있지만 각 당은 사태 추이를 지켜보며 총선 전략을 조정하는 등 대응에 부심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면 선거 운동을 전면 금지하고 SNS 위주의 선거 운동을 주문했다. 미래통합당은 지난 24일 경기·충청 지역의 공천 면접을 조기에 마쳤으며 25일에는 면접 자체를 중단했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대구·경북 지역은 다음주 화상 면접을 실시한다. 대면 선거 운동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로 인해 24일 정치·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을 위해 열릴 예정이었던 국회 본회의가 연기됐다. 사진은 24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 모습. 사진/ 뉴시스
앞서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와 신설된 민생당 유성엽 공동 대표 등은 총선 연기 주장을 제기했다. 정부·여당은 공식적으론 부인하며 부정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민주당 설훈 최고위원 등 여권 인사들도 연기 가능성을 거론하며 범여권에서도 공감대가 넓어지는 분위기다.
손 전 대표는 21일 "중국인 입국을 전면 제한해야 하고, 총선 연기도 검토해야 한다"고 했으며 유 공동 대표도 24일 "이번주 사태 진행 상황을 지켜보면서 총선 연기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설 최고위원도 최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총선 연기론과 관련해 "현재 검토하지 않지만 어떤 상황이 올지 모르니 그 때는 다시 검토해야 할 문제"라고 연기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코로나19 여파가 신당과 군소 정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규모 지역 행사가 잇따라 취소되는 등 신당을 알릴 기회가 줄어들고 있어 총선 분위기도 좀처럼 달아오르지 않고 있다. 정치 신인들 역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정부가 위기 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 단계로 격상하면서 유권자들이 투표장 방문 자체를 꺼릴 경우 투표율 하락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20대 국회 임기가 끝나는 5월29일까지는 선거를 얼마든지 미룰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과거 중요 선거가 미뤄진 전례가 없는 데다, 법적으로도 '천재·지변 기타 부득이한 사유'에 한해 선거 연기가 가능하기 때문에 실제 총선이 연기될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공직 선거법 제 196조 1항은 천재지변 기타 부득이한 사유가 있을 때에는 대통령이 선거 연기를 결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총선 연기는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대형 재난·재해 때 선거 연기론이 나왔지만, 실제 연기된 사례는 없었다. 2000년 4월 총선은 사상 최악의 강원도 산불 와중에 치러졌고, 2014년 세월호 참사에도 6월 지방선거를 강행했다. 감염병 유행 사례로는 2009년 신종 플루 사태를 꼽을 수 있는데, 당시 국내 감염자 70만명과 사망자 263명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10월 재보선 역시 예정대로 진행됐다.
민주당도 아직 총선 연기까지 검토할 단계는 아니라며 선을 긋고 있다. 이낙연 공동 상임 선대위원장은 24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총선 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최대한 빨리 안정기로 진입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인영 원내대표도 기자 간담회에서 총선 연기 주장에 대해 "그 문제는 대답할 문제가 전혀 아닌 것 같다"며 "기본적으로 검토를 하지 않았다"고 일축했다.
통합당 역시 코로나19 사태 대응에 주력하고 있지만, 총선 연기는 일단 부정적이다. 국민 불안을 조장하며 국가적 재난 상황을 부채질하는 것처럼 비쳐져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정권이 있는 청와대는 이 같은 검토 자체가 시기 상조라며 현재까지 총선 연기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법적으로는 대통령 결정 사항이지만, 국민적 합의가 전제돼야 이뤄질 수 있는 문제다. 여야 모두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는 점과 만약 총선을 연기할 경우 후폭풍이 거셀 것이란 우려로 '총선 연기 불가'에 무게가 실린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지금까지 총선을 연기한 적이 없는 것 같다"며 "입법부 부재 상태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코로나19 확산 추이를 단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번 총선이 20대 국회의원들의 임기 종료 이후로 연기되면 입법부 부재 상황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정 총리는 "총선을 연기한다고 해서 20대 국회의원들의 임기를 연장하는 방법은 없을 것"이라며 "총선은 그대로 치를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현정 기자 jhj@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