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급휴직·월급삭감은 항공업계에서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지난해 일본 불매운동, 홍콩 시위로 몸살을 앓았던 항공업계는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까지 터지며 '최악의 보릿고개'를 넘고 있다. 고질적인 '공급과잉'으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 외부 악재까지 터지며 항공산업이 와르르 무너진 것이다. 코로나19가 지나가면 사정은 좀 나아지겠지만 공급과잉에서 비롯된 출혈 경쟁을 해결하지 않는 한 큰 폭의 수익 개선도 기대하기 어렵다. 한때 '꿈의 직장'으로 불리며 대학생 선호도 1순위였던 항공사들이 어쩌다 직원 월급마저 못 주는 상황에 놓이게 됐는지, 앞으로 돌파구는 없는지 진단해본다. (편집자주)
[뉴스토마토 김지영 기자] "일본 불매운동 때가 최악일 줄 알았는데, 죽으라는 법이 있습니다"
항공업계가 코로나19 여파로 신음하고 있다. 수요가 급감하면서 노선을 감축함에 따라 온갖 방법을 동원해 비용 감축에 나선 형국이다. 탑승률이 절반 이하로 줄어 항공유값을 제때 치르지 못하는 항공사도 발생하면서 생존 자체가 우려된다.
26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저비용항공사(LCC)는 물론 대형항공사(FSC)도 일제히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상황이 가장 심각한 건 매각을 준비 중인 이스타항공이다. 전날 최종구 이스타항공 대표는 임직원에 보낸 글을 통해 이달 급여를 40%만 지급한다고 알렸다. 코로나19로 실적이 뚝 떨어지자 연말정산금마저 지급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 사장은 미지급 급여를 이른 시일 내 주겠다고 강조했지만 구체적인 날짜는 밝히지 않았다.
에어서울 경영진도 내달 급여의 100%를 반납하기로 했다. 그동안 대표와 임원이 급여의 일부를 반납하는 사례는 있었지만 전액 삭감한 곳은 처음이다. 현재 대한항공과 진에어를 제외한 모든 항공사는 경영진 임금 삭감에 나선 상황이다.
이밖에도 항공사들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각종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전 직원 대상 10일 무급휴직에 나섰으며, 대한항공은 다음달 승무원 300명을 대상으로 연차 휴가를 집중적으로 소진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이스타항공, 에어부산, 에어서울은 전 직원을 대상으로 무급휴직이나 근무시간을 단축하며, 제주항공과 티웨이항공도 3월 희망휴직자를 받고 있다.
이는 코로나19로 발원지인 중국은 물론 동남아, 일본까지 여객 수요가 줄어든 데 따른 조치다. 항공권이 무더기 취소되며 전체 환불액도 3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급증하며 오는 3월부터 사실상 거의 모든 노선 운항을 중단하는 항공사도 생기고 있다. 현재까지는 단거리 타격이 더 컸다면 한국인이나 한국을 거친 외국인의 입국을 거부하거나 절차를 강화하는 국가가 늘면서 장거리 노선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항공기 운항이 멈추자 이를 세워두는 대가로 공항에 지불하는 주기료도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까지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입이 줄면서 기름값을 내지 못해 운항에 차질이 생긴 항공사도 나왔다.
업계에서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일본 불매운동, 홍콩 시위 등의 악재가 코로나19로 이어지며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는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한 LCC 업계 관계자는 "악재도 악재지만 공급과잉으로 앞으로도 큰 폭의 수익 개선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게 더 문제"라며 "마른걸레를 쥐어짜는 심정으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wldud91422@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