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밴드신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 차트를 가득 메우는 음악 포화에 그들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9인조 얼터너티브 케이팝 크루 바밍타이거(‘호랑이 연고’를 뒤집은 영문명)는 올해 초 새 싱글 ‘Kolo Kolo’를 냈다. 지난해 해외를 휘젓어 놓은 ‘Armadillo’ 이후 약 1년 만에 발매한 팀 단위 음원이다.
트라이벌한 악기로 만든 실험적 비트,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을 캐치한 후렴구가 특징이다. 아시아 여러 국가의 문화 요소를 덧댄 기괴한 영상 역시 전작만큼 실험성 짙다. 중국의 무도술, 일본의 스모 등이 혼재하는 이상한 세계에 “하쿠나마타타”라는 랩 융단폭격이 시작된다. 중간 느닷없이 일본 감성 멜로 스타일로 전환되는 부분은 코믹하기까지 하다.
아시아 여러 문화 요소를 덧댄 기괴한 바밍타이거의 영상은 실험성이 짙다. 사진/바밍타이거 공식 뮤직비디오 'Kolo Kolo' 스틸컷
20일 서울 마포구 상수역 인근의 이들 사무실에서 만나 이 정체불명의 황당과 파격에 대해 물었다.
“그냥 무의식적으로 ‘하쿠나마타타’가 나왔어요. ‘과거를 잊고, 현재를 살아라’ 그 뜻 맞아요. 남미 쪽의 발리펑크에서 차용한 아이디어죠.”(오메가 사피엔, 래퍼) “음악이든, 영상이든, 어떤 것이든 저희는 일률적으로 뭔가를 정해놓고 움직이지 않아요. 여러 친구들의 아이디어를 섞다보면 그게 우리이고, 우리 음악이 돼요.”(산얀)
여느 뮤지션들과 달리 이들은 음악을 창작하는 공간과 사무실을 아예 분리해서 쓴다. 이유를 묻자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최근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시상식 말을 인용하며 웃었다. “창작하는 장소 역시 개인적이어야 하고 그래야 좋은 게 나오니까요. 창작하는 공간은 이태원 쪽에 있어요. 침실 같은 느낌이죠.”(오메가 사피엔) 멤버 소금이 “인터뷰를 아예 산얀의 자취방에서 할 걸 그랬다” 하자 멤버들 모두 폭소한다.
9인조 얼터너티브 케이팝 크루를 표방하는 바밍타이거가 재그재그 모양의 살바도르 달리 실제 작품(맨우측)을 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일 서울 마포구 상수역 인근 사무실에서 만난 산얀, 원진, 언싱커블(테이블 왼쪽)과 소금, 오메가 사피엔(테이블 오른쪽). 다른 멤버로는 머드더스튜던트, 어비스, 헨슨황, 잔퀴가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몽환적인 음색과 맑은 가사로 기록한 12곡은 소금의 이야기이자, 다양한 바밍타이거 개성 중 하나다. 실제로 앨범 프로듀싱에는 크루의 다른 멤버 원진이 참여했다. “바밍타이거는 어떻게 보면 미래지향적인 일종의 ‘플랫폼’이죠. 멤버 개인과 바밍타이거로서의 음악 색깔은 다를 수 있겠지만 결국 바밍타이거 안에서 이뤄지는 것들이에요.”(산얀) “우리 크루 자체가 애초 장르적 한계가 있는 팀은 아니에요. 곡 작업을 하다보면 이제 제 개성보다 크루와 함께 했을 때 빛날 곡들이 보여요.”(소금)
바밍타이거 소금 첫 솔로앨범 '소 브라이트'. 사진/소니뮤직코리아
음반 유통, 홍보만 소니뮤직이 맡고 크루는 음반 기획부터 제작, 영상까지 모두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바밍타이거라는 플랫폼이 하나의 크루이자 일종의 레이블이기도 한 셈이다. DIY(Do It Yourself) 식으로 만든 앨범, 영상은 저 멀리 해외에서 먼저 호기심을 보였다. 지난해 데뷔 1년 만에 크루는 유럽 순회 투어를 가졌고, ‘케이콘(KCON) 뉴욕’에도 참가했다. 서구권 현지 매체들은 “케이팝의 대안이 나타났다”며 앞다퉈 보도했다.
아직 정식 앨범이 나오지 않았음에도 파괴력이 상당하다. 올해도 해외 유명 페스티벌이 이들의 소매를 거침없이 잡아끌고 있다. 오는 3월14~22일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열리는 ‘사우스 바이 사우스 웨스트(SXSW)’를 시작으로 영국 ‘The Great Escape(TGE)’, 프랑스 ‘MIDEM’등 유럽 일정과 러시아 모스크바 공연 등이 예정됐다. 오는 11월에는 ‘세계의 끝’ 아이슬란드로 간다. 전 세계에서 손에 꼽을 만큼 힙한 음악 축제 ‘에어웨이브스’가 이들에게 초청 메일을 보내왔다.
올해 5월 영국에서 열리는 'The Great Escape(TGE)'에 소개된 바밍타이거. 사진/바밍타이거
“외국에서 볼 때 저희는 아주 특이할 거예요. 괴상한 비주얼과 사운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매력을 느끼는 게 아닌가 싶어요.”(산얀) “우리 음악은 다른 레이블처럼 거대 자본이 도와주지 않아요. 대신 그 수뇌부들의 동의를 얻지 않아도 우리가 하고 싶은 것들을 자주적으로 할 수 있죠.”(오메가 사피엔) “세계 제패 하고 싶어요.”(원진)
이들 크루가 꾸는 꿈도 각양각색, 천차만별이다. 소금은 “좋은 노래를 만들어 집을 사고 싶다”고 했다. 언싱커블은 효도를 하며 강아지와 고양이를 한 마리씩 키우고 싶단다. 사피엔은 자신들의 음악으로 “아시아 문화 허브를 도쿄에서 서울로 옮겨 오고 싶다”며 눈을 반짝였다.
마지막으로 이들에게 음악을 자신 만의 여행지에 빗대달라고 요청했다. 사무실에 들어섰던 처음처럼 상상력 넘치는, 기발한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한다.
“인종의 용광로(Melting Pot) LA 같은 곳이죠.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것들이 섞였으니까요. 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음악을 할 거에요.”(사피엔)
“놀이공원. 제 솔로 앨범이 회전목마라면 바밍타이거는 청룡열차 같은 매력이 있죠. 재미있고 신나는 매력이 다 모여 있으니까.”(소금)
“저는 제주도요.”(원진)
“원진씨가 가고 싶은 곳을 얘기하지 마시구요. 하기야 제주도도 다양한 면이 있죠. 다금바리도 있고, 흑돼지도 있고, 돌도 많고.”(산얀)
“제가 좋았던 여행지였기에, 사람들에게 그런 경험을 줄 수 있는 음악이 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요. 하하”(원진)
“저거 너무 초등학생 일기장 같지 않아요? 안돼.”(소금)
“더 넓게 가볼까요. 마다가스카 어때요. 거기서 사는 동물들 같은 거 있잖아요.”(언싱커블)
아웅다웅하던 멤버들이 산얀이 낸 마지막 답에 박장대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핵으로 가시죠. 아무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아주 깊은 공간으로.”
9인조 얼터너티브 힙합크루 바밍타이거. 사진/바밍타이거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