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수의 음악캠프’ 30주년 “대중들이 협소했던 내 음악관 바꿔줬다”

1년 버티기 목표였던 송골매 출신 청년, 백발성성한 레전드 DJ로
“세상에는 좋은 음악과 그렇지 못한 음악, 딱 두 가지 뿐”

입력 : 2020-03-19 오후 5:18:4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비엔나 심포니 오케스트라 프로젝트가 1987년 발표한 ‘Satisfaction’. 언뜻 첫 구절의 ‘핫! 둘! 셋!’처럼 들리는 이 힘찬 응원가 같은 소리는 30년이 지난 오늘도 잔잔한 물결처럼 전국 청취자들에게 가 닿는다. 롤링스톤스 동명의 원곡 ‘(I Can't Get No) Satisfaction(1965)’을 클래식 록 버전으로 비틀어 재해석한 곡. “1년 버티기가 목표였다”던 그는 어느덧 백발성성한 30년차 디스크쟈키(DJ)가 돼 오늘도 이 음악에 오프닝 멘트를 실어 보낸다. 
 
팝 음악 전문 방송의 레전드이자 산 역사,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30주년을 맞았다. 1990년 3월19일 첫 방송을 시작한 이 라디오 프로그램은 국내 현존 가장 오래된 음악 방송이다. 단일 DJ로 30년간 마이크를 지켜온 최장수 팝음악 전문 DJ 배철수를 필두로 24년째 코너지기이자 최장수 게스트 대중음악 평론가 임진모, 단일 프로그램 최장수 김경옥 작가가 역사를 써왔다. 
 
배철수. 사진/MBC
 
코로나19 여파로 이날 온라인으로 대체된 3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배철수는 “엊그제 시작한 것 같은데 벌써 30주년이 됐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는다”며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매일 매일 행복하게 지냈을 뿐인데, 30년이 됐다고 이렇게 축하를 해주니 감사하다”고 지난 세월을 소회했다.
 
그는 여전히 검은 머리의 ‘청년 배철수’를 기억한다. 30년 전 이날 첫 방송을 했다. 당시는 그가 밴드 송골매 멤버로 좌충우돌 살던 시기다. “처음에는 내가 잘 하니까 캐스팅 된 거지, 음악도 많이 알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 2, 3년이 지나고 그게 아니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들어주는 청취자가 없으면 존재가치가 없는거구나’. 의례적인 말 아니고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청취자들은 그의 음악관에도 영향을 미쳐왔다. 결국에는 “대중들 판단이 옳았구나” 느낀 적도 적지 않다. 이날 배철수는 “70년대부터 록 음악을 좋아했고 밴드생활을 하면서도 록이 최고고, 나머지는 음악적으로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었다”며 “하지만 청취자들의 신청곡을 받아보면서 억지로라도 듣기 시작했다. 계속 듣다보니 음악에서 장르라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돌아봤다. 
 
“최근에는 릴 나스 엑스의 ‘Old Town Road’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컨츄리와 힙합을 접목시켰잖아요. 록과 트롯도 약간의 차이지, 결국 12음계로 만들어지는 똑같은 음악이죠. 지금은 편견 없어요.”
 
배철수. 사진/MBC
 
그는 장르로 음악을 구분하기보다 이제는 “세상에는 좋은 음악과 그렇지 못한 음악, 딱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는 소견을 말했다.
 
30여년의 세월동안 방송에는 280여팀의 해외 아티스트들이 출연해왔다. 국내 라디오 역사상 최다 기록이다.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 브리트니 스피어스, 데프 레퍼드, 딥 퍼플, 시카고,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오아시스, 라디오헤드, 린킨 파크, 메탈리카, 리키마틴, 제임스 블런트, 두아리파, 미카…. 딱 한 명만 다시 출연시킬 수 있다면 누구에게 출연 제의를 할까. 배철수는 딥 퍼플의 창단 멤버이자 피아노 연주자 고 존 로드(1941~2012)를 떠올렸다. 또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오마라 포르 투 온도 출연도 회상하며 “제게 귀엽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딱 한 소절 노래를 불렀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며 겸연쩍어 했다.
 
30주년을 맞은 올해 여러 행사를 기획했다. 앞서 지난달에는 영국 런던의 BBC 라디오 스튜디오 '마이다 베일'에서 ‘Live at the BBC’라는 5일간의 특집 생방송을 진행했다. BBC 본사를 거치는 생방송 송출은 아시아 프로그램 사상 최초였다. 당시 앤 마리, 제임스 월시, 톰 워커 등의 해외 뮤지션들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배철수는 “일상적인 스튜디오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서 하는 방송이 색다른 느낌이었다”며 “BBC까지 갈 만큼 이 프로그램이 사람들에게 인정받는다는 사실이 기뻤다”고 당시 소감을 전했다.
 
오는 26일과 4월2일에는 ‘The DJ’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도 공개된다. 데뷔 40년 만에 처음 찍는 다큐멘터리로 가수 윤도현이 프리젠터를 맡는다. 30년간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꾸려온 원칙, 비결 등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이날 생방송 역시 비틀스의 네이키드 앨범 콘셉트를 차용, ‘꾸미는 것 없는 리얼’로 진행된다. 음악이 나가는 동안의 스튜디오 모습부터 배철수가 직접 바이닐(LP)을 닦는 장면이 여과 없이 송출된다.
 
19일 '배철수의 음악캠프' 온라인 기자간담회 참석자들 모습. 사진/MBC
 
방송은 지난 30년 간 해외의 팝 음악을 소개하는 역할을 맡으며 국내 가요의 질적 성장도 견인했다는 평가도 따른다. 이날 간담회에 함께 참석한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는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매력적인 DJ, 배철수의 ‘인물 승리’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며 “80년대에 비해 팝 음악 시장이 위축된 건 사실이지만 팝은 늘 가요와 한 배에 있다고 생각한다. 가요가 질적으로 성장, 발전하는 데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역할 측면에서 비례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지난 30년간 하루에 매일 방송 원고를 써온 김경옥 작가는 배철수를 “사계절을 잘 보낼 수 있는 느티나무”에 비유하며 “그 밑에서 30년이 즐겁게, 순식간에 지나온 것 같다”고 소회했다.
 
김경옥 작가 역시 아찔한 아날로그 파(派)다.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는다. 빈종이에 여전히 압을 가하는 정성이 글이 되게 한다. 아직도 손수 닦은 LP를 턴테이블에 올리는 배철수와 그는 무척이나 닮은 듯 보였다. 
 
30주년이 되는 해, 어쩌면 방송은 마지막이 될 뻔했다. 지금은 “내 의지보다 청취자들이 결정할 문제”라고 배철수는 생각 중이다. 5년, 10년 후에도 힘찬 ‘Satisfaction’의 오프닝을 라디오로 들을 수 있을까. 그는 방송 개편주기인 6개월을 단위로 끊고, 그 계획에만 충실하겠다고 했다.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대단한 프로그램은 아닙니다. 하루 일과 마치고 집 가는 길, 마음에 드는 음악 한 곡 듣고, 제가 던지는 실없는 농담에 피식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됩니다. 큰 욕심 내지 않고 피식 웃을 수 있는 방송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배철수는 이날 “마지막은 록 밴드로 끝내고 싶었다”는 생각도 밝혔다. ‘세상만사’를 부르던 열혈 청년의 마음가짐으로 곧 돌아간다. "이달 말부터 구창모와 EP, 싱글에 관한 논의할 것"이라는 그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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