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문화대통령’ 서태지(49)의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음저협) 탈퇴는 한국 대중음악계에 일대 사건이었다.
1992년 5월 음저협과 신탁관리계약을 체결한 서태지는 계약 기간 만료를 4개월 앞둔 2002년 1월 협회 탈퇴를 감행했다. 자신의 저작물 ‘컴백홈’을 패러디한 가수 이재수의 음반, 뮤직비디오를 협회가 협의 없이 승인하면서다. 하지만 당시 음악계 분위기는 누구 손을 들어주는 게 옳은 결정인지 모를 정도로, 저작권 인식이 빈약했다.
“그때 음저협 회원이었던 저도 그게 그렇게 큰 문제인지 몰랐습니다. 이제 와서 깨닫고 있지만 당시 서태지씨의 행보는 국내 음악 저작권 산업에 큰 자극제가 된 게 분명합니다.”
음악인 서태지. 사진/서태지컴퍼니
지난 9일 서울시 강서구 염창동 ‘함께하는음악저작인협회(함저협)’ 사옥에서 백순진 이사장이 말했다. 국내 싱어송라이터 1세대 남성 듀오 4월과5월 멤버이기도 한 그는 “서태지씨 사건 이후 저를 포함한 많은 음악가들이 자신의 창작 권리를 다시 돌아보게 됐다”며 “함저협이 저작권 ‘신탁범위선택제’를 최초로 도입하게 된 데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백 이사장에 따르면 당시 패러디 사건은 국내 음악 산업계가 저작인격권 개념이 부족해 발생한 결과다. 원작자의 동의 없는 창작물 변형으로 원곡에 대한 이미지가 훼손, 손상될 수 있음에도 당시 서태지의 저작인격권(공표권, 성명표시권, 동일성유지권)은 간과됐다. 그는 “당시 해외에서도 저작권 개념이 덜 발전된 상황이었으니 국내라고 별 다를 건 없었다”며 “분명한 건 그때 이후 저작권과 저작인격권 간 개념이 서서히 구분되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백 이사장이 음저협을 탈퇴한 건 2014년 무렵. 그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음악저작권 신탁관리 복수화 정책으로 함저협을 선택하면서다. 음악저작권 시장은 그때부터 음저협의 50년 독점구조가 서서히 붕괴됐다. 함저협 초대 이사장으로 오른 그는 시작부터 음악저작권의 ‘신탁범위선택제’ 도입을 함저협 만의 차별점으로 내세웠다.
함께하는음악저작인협회(함저협) 백순진 이사장.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함저협이 추진하고 있는 신탁범위선택제는 음악에 관한 주요 저작재산권(방송권, 전송권, 공연권, 복제권)을 저작자가 일부 권리만 신탁할 수 있는 제도다. 즉, 창작자 자신이 맡기고 싶은 권리를 선택해 신탁을 맡기는 것이다. 음저협의 경우 함저협과 달리 인별포괄신탁제를 적용하고 있다. 신탁을 맡기려면 저작자가 가진 권리 전부를 신탁해야한다.
이를 테면, 지난달 서태지는 그간 직접 징수가 어려웠던 공연권을 함저협 측에 맡겼다. 전국에 흩어진 노래방 업체와 일일이 계약하기 어려운 탓에 내린 결정이다. 덕분에 8, 9집이 뒤늦게 노래방에 등록될 수 있게 됐고, 1~7집 노래에 대한 공연권 징수가 가능해졌다. 또 나머지 권리, 즉 음원사이트(전송권)나 방송국(방송권) 등과의 계약에 대해선 여전히 서태지가 직접 저작권을 관리할 수 있다. 기존 인별포괄신탁제에 비해 저작권에 대한 창작자 자신의 자율성, 통제력이 높아진 셈이다.
서태지의 공연권 신탁은 함저협과 5년 전부터 협의해 이뤄진 결과다. 백 이사장은 ‘음악 저작권 선택의 새 시대’가 열린 것이라고 의미를 짚었다. 그는 “지난달 서태지씨를 계기로 함저협의 ‘신탁범위선택제’가 실제로 많이 알려졌다”며 “음저협에 비하면 아직 걸음마 단계 수준일테지만 그만큼 함저협이 신뢰가 있는 기관임을 대중 음악계에 알린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일본 출신 세계적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 사진/뉴시스
최근 서태지의 공연권 신탁이 화제가 된 후 대한해협 건너에서 연락이 왔다. 일본 출신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가 함저협에 방송권을 신청해온 것이다. 국내 광고, 드라마 삽입곡 비중이 많은 이 피아니스트는 노래방에 필요한 공연권 등을 신청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음저협의 인별포괄신탁제 대신 함저협의 신탁범위선택제를 택했다.
지금까지 계약한 뮤지션들의 면면을 봐도 주체성이 강한 아티스트들이 눈에 띈다. 양방언, 김민기 등 한국 대중음악계를 이끌어가는 인물들이 모두 함저협과 계약돼 있다. 백 이사장은 “유키 구라모토씨 역시 서태지씨의 소식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며 “함저협도 2002년 서태지씨처럼 한국 음악 저작권 개념에 큰 획을 긋는 미래를 그리고 있다”고 했다.
회원 규모로만 따지면 4000명인 함저협은 3만명인 음저협에 비해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하지만 백 이사장은 “회원 수보다는 정확한 징수와 분배에 성패가 달려있다”고 했다.
“설립 목적 자체가 음악적 동료의식이었기 때문이에요. 협회의 발전보다는 창작자들을 위한 협회가 되고자 합니다. 저작권료가 한 푼이라도 음악가들에게 더 돌아갈 수 있게끔 노력할 겁니다.”
함께하는음악저작인협회 백순진 이사장.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아직도 국내 음악 저작권 생태계에선 개선이 돼야 할 부분들이 많다. 정확한 징수, 분배를 위해선 정확한 DB 구축이 기술적, 비용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게 현실이다. 가령 전국의 노래방 같은 경우 사용자가 이용한 리스트 전체가 파악되지 못하고 있다. 업체별 온라인, 오프라인 기계를 쓰는 곳이 달라 제대로 추적이 안돼서다. 방송국에서는 별도의 큐시트를 제출하지 않아 민간업체에 일일이 모니터링을 요청해야 한다.
최근에는 케이팝이 해외로 진출하면서 점차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각국 저작권 협회와 상호조약을 맺은 국내외의 퍼블리셔가 직접 논의해 저작권료를 대신 받아주는 사례가 많다.
“케이팝의 성공을 저는 곡이 좋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앞으로는 해외 작곡가들보다 우리 작곡가들이 세계적인 곡을 더 많이 쓰길 바라봅니다. 그게 진정한 케이팝 분출 아니겠어요?”
내년이면 백 이사장이 몸 담은 사월과오월도 50주년이다. 번안곡이 주를 이루던 당시 듀오는 ‘화’, ‘옛사랑’, ‘바다의 여인’, ‘님의 노래’ 같은 곡을 써내려 가며 국내 음악 창작 역사에 불을 지폈다. 이수만 현 SM엔터테인먼트 대표도 잠시지만 함께였다. 한국대중음악계의 산 역사를 보내온 그는 함저협의 일이 결국 4월과5월에 닿아있다고 했다.
“비틀스처럼 내 음악의 정체성을 찾으려 했어요. 미련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것들을 젖혀 두더라도 지금의 목표는 뚜렷합니다. 함저협이 국내 음악저작권에 이정표를 세우는 일, 그것만이 제 음악생활의 유종의 미라 보고 있어요. 그렇지 않다면 4월과5월의 의미마저 희석될 거예요.”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