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집권 여당이 압승한 21대 국회가 경제민주화 입법을 강행할지 주목된다. 현재까지 입법 성과가 부진하지만 코로나 19 사태로 인한 경기 침체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다수 개정 입법은 기업집단 지배구조 변화를 야기해 실제 지분출자비용 등 경영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 그 속에 법안 단독처리가 가능해진 의석수는 여당으로선 입법 성과를 재촉하는 압박으로 작용한다.
총선 결과 여당은 범 여권까지 190석을 확보해 개헌만 빼고 국회 입법 단독 처리가 가능해졌다. 이에 경제민주화 법안 처리도 전보다 수월해졌다. 민주당 스스로도 대통령 선거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총선 공약을 통해 경제민주화를 약속했다. 그동안 야당 반대에 막혀 입법성과가 부진했던 만큼 안팎의 요구 목소리도 커졌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과거 몸담았던 경제개혁연대는 총선 직후 “압도적인 국민의 뜻 받들어 경제민주화 개혁입법과제에 충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사익편취 규제 적용대상 확대, 지주회사 보유주식 한도 확대, 상법 개정, 비리기업인 처벌 강화, 공익법인 및 자사주 통한 편법적 지배력 강화 차단,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 금융그룹 통합감독법안 제정 등 민주당이 약속한 공약을 상기시켰다. 경제개혁연대는 “20대 국회에서는 야당의 국정 발목잡기 때문이라는 항변이 가능했지만 21대 국회는 핑계가 유효하지 않다”고 압박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은연히 거들었다. 그 역시 총선 결과에 대해 “촛불혁명을 반드시 완수하라는 명령이자 경고”라면서 “중앙과 지방정부, 국회의 손발이 안 맞는다는 핑계도 댈 수 없게”라고 SNS에 썼다. 이재명 지사는 경기도 내 경제민주화위원회를 확대하고 5년마다 경제민주화 기본계획 수립을 의무화하는 등 재벌개혁에 남다른 의지를 보여 왔다.
전국 소상공인, 자영업자들도 그동안 유통산업발전법이 번번이 막힌데 따른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들 소속 단체는 “재계 경제단체들이 코로나19 핑계로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며 “갑을 불공정 관계 개선을 위한 경제민주화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내달라”고 청원했다.
정부는 그러나 당분간 경기 부양에 집중해야 할 형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오전 제5차 비상경제회의를 주재하고 40조원 기간산업안정기금 조성과 100조원 금융 조치 등 ‘한국판 뉴딜’ 정책을 제시했다. 코로나19 여파가 더 번지기 전에 이들 경기 부양 성과를 입증하는 게 급하다.
기업들도 규제 변화를 감당할 체력이 약해졌다. 일례로 경영권 지분 확보에 열을 올리는 한진그룹이나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는 두산그룹 등이 지주회사 보유주식 확대 규제에 걸릴 경우 감당하기 어렵다. 해당 지주회사 행위제한 규제가 현실화되면 대다수 그룹들이 추가 출자 부담에 시달린다. 이사회 개편이 골자인 상법 개정은 국민연금 의결권 강화 및 해외 사모펀드 활동이 활발해진 데 더해 기업들의 피로도를 높일 전망이다.
그간 입법이 막히자 문재인 정부는 법 시행령 개정이나 기존 법 조항에 대한 확대 해석을 통해 우회적으로 경제민주화 실행력을 높여 왔다. 최근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23조를 적용해 아모레퍼시픽그룹 소속 계열회사간 부당 지원 행위를 적발했다. 예금 담보를 제공해 계열회사인 코스비전이 대규모 시설 자금을 차입하도록 지원했다는 내용이다. 이로써 아모레퍼시픽그룹과 코스비전은 시정명령 및 각 4800만원씩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공정위는 이 사건 지원 행위로 코스비전이 국내 화장품 위탁생산업 시장에서 3위 지위를 유지했다며 기업집단 경제력 집중을 제재했다는 점에 의의를 뒀다. 그간 특수관계인 사익편취 규제 적용 사례는 많았으나, 단순 계열사간 거래를 부당 지원 행위로 제재한 사례는 드물었다. 현재 법 규정을 최대한 활용해 경제력 집중 완화 과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이다.
재계 관계자는 “21대 국회에서는 입법에 유리한 환경이지만 법안소위의 만장일치 원칙 등 야당을 아예 무시하기도 어렵고 당분간 코로나 사태 파장을 고려할 듯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13일 경기도청 상황실에서 플랫폼 배달 노동자들과 간담회를 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