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전사자인 아버지는 DNA도 남아있지 않았다"

18년간 무적자·50년간 큰아버지 딸로 살아온 이모씨 67년만에 국가유공자 인정

입력 : 2020-06-03 오전 10:44:01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전북 전주시에 사는 이영순(68·가명)씨는 한국전쟁 때인 1953년 6월27일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의 나이 한살되던 해다. 하지만 부모님이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 출생신고도 못하고 살다가 만 18세가 되어서야 겨우 큰아버지 딸로 호적을 올렸다. 
 
신산한 삶을 살던 이씨는 어머니와 함께 국가유공자 유족으로 인정받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그러나 별 소득이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2013년 전주시청에서 아버지의 묘적대장 기록을 찾아 이를 단서로 전사자 화장보고서까지 확인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이씨가 아버지의 친자임을 확인할 증거가 없다며 이씨와 어머니를 국가유공자 유족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생활은 더욱 빈한해져 이씨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모시고 있는 87세 어머니마저 고령으로 요양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어머니는 이씨 아버지가 사망한 후 평생 수절했다. 만만찮은 병원비까지 부담하게 된 이씨는 하루하루가 버거웠다. 결국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법률구조를 요청했다. 박왕규 변호사가 사건을 맡았다.
 
박 변호사는 이씨와 아버지의 친자관계 확인을 위해 전주 국립묘지에 안장된 이씨 아버지의 분묘를 개장하기로 결정했다. 마지막으로 DNA 검사를 해보기 위해서다. 화장된 경우에는 통상 DNA가 검출되지 않지만 전쟁통에 화장된 유골 중에는 고온에 노출되지 않아 DNA가 남아 있는 유골이 더러 있을 수 있었다. 여기에 실낱 같은 희망을 건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 유골에는 DNA가 남아 있지 않았다.
 
박 변호사는 마지막으로 이씨의 어머니를 대리해 이씨를 상대로 친생자관계존재확인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제출할 수 있는 증거란 증거는 모두 모았다. △육군본부가 부녀관계를 인정해 이씨에게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한 사실 △어머니와 이씨 사이에 친생관계가 있다는 확정 판결 △어머니가 아버지의 전사 후 미혼으로 살아온 사실 등을 재판부에 적극 소명했다.
 
전주지법 가사1단독 이유진 판사는 지난 4월 21일 이씨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이씨가 아버지를 여읜 뒤 67년만이었다. 재판부는 "가족관계등록부상 큰아버지가 이씨의 아버지로 기재돼 있지만, 이씨는 한국전쟁 중 사망한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포태돼 출산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며 "피고의 친모인 원고로서는 그 확인을 구할 이익이 있다"고 판시했다. 
 
박 변호사는 "한국전쟁 당시 불완전한 행정시스템으로 인해 국가를 위해 희생된 전사자의 가족들이 유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다"며 "하지만 친생관계를 증명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는 만큼 언제든 공단을 찾아 도움을 요청해달라"고 말했다.
 
현충일을 5일 앞둔 지난 1일 전북 전주시 전주 군경묘지를 찾은 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회 전북지부 관계자들이 장내를 정돈한 뒤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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