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도의 밴드유랑)문화코드는 ‘록’…해외로 향하는 해리빅버튼

한·러 수교 30주년, 한국계 러시아 뮤지션 고 빅토르 최 추모 무대에
코로나19 저항 영상 공개 “추이 지켜보며 유럽, 미국 진출 예정”

입력 : 2020-07-03 오전 12: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밴드신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 차트를 가득 메우는 음악 포화에 그들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해리빅버튼. 사진/해리빅버튼
 
밴드 해리빅버튼이 정규 3집의 시즌1 ‘더티 해리(Dirty Harry·1978)’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은 ‘소리’적 접근이다. 영화다운 스케일에 마땅한 ‘터보부스터’를 장착해야 했다. 3대의 깁슨 레스폴(일렉기타)과 1대의 깁슨 어쿠스틱, 펜더 프리시전(프리 앰프 없이 코일과 자석만으로 현 울림을 내는 패시브 픽업) 베이스 1대. 여기에 이번 앨범을 위해 새롭게 액티브 픽업(프리앰브가 내재돼 전기를 통해 소리를 증폭시키는) 베이스를 추가했다. [6월24일자 기사 참조, (권익도의 밴드유랑)해리빅버튼 “세기말 ‘매드맥스’처럼 달립시다”]
 
10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악기숍에서 만난 밴드[이성수(보컬, 기타)·김인영(베이스기타)]는 “액티브 픽업 베이스는 묵직하고 울림이 깊은 저음역대를 내준다”며 “신보에선 음역대를 다양하게 해,  강하고 세지만 듣기엔 부담 없도록 음악적 밸런스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 설명했다.
 
흔히 하드록이라면 거칠고 마초적인 이미지가 연상되지만 이성수는 “개별 미세한 사운드 표현에 집중할 땐 한땀 한땀 뜨개질하는 아낙네가 된다”며 “실제 성격도 섬세하고 꼼꼼해 상남자와는 거리가 멀다”며 웃었다. 평소 해리빅버튼의 음악 팬이었던 베이시스트 김인영은 지난해부터 밴드에 합류, 이번 신작의 다양한 음역폭에 기여했다. “스무살 무렵부터 뮤즈, 그린데이, 퀸의 음악을 즐겼습니다. 하지만 더 즐기기 위해선 앞으로 연주적으로나 음악적으로 더 단련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김인영)
 
10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악기숍에서 만난 밴드 해리빅버튼(왼쪽 김인영, 오른쪽 이성수).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공을 들여 다듬은 소리에 저 멀리 영국의 사운드 전문가가 호평을 보내왔다. 레드 제플린, 프로디지, 더 킬러스와 작업해 온 영국 메트로폴리스 존 데이비스는 밴드의 마스터링을 담당한 후 이들 신보를 “야수 같은 록 음악!(Rock Like a Beast!)!”이라고 극찬했다. “록 음악이 담고 있는 ‘스피릿 덩어리‘를 그대로 구현하는 엔지니어였습니다. 일반적인 록 사운드처럼 잡지 않고, 해리빅버튼 만의 개성 있는 현대적 소리로 다듬어줬습니다.”(이성수)
 
해리빅버튼은 지난 4년 간 러시아로 활동반경을 넓혀왔다. 2017년부터 하바롭스크, 블라디보스토크, 모스크바와 샹트페테르부르크 등 러시아 동, 서부를 현지 록 밴드들과 돌며 투어했다. 지난해에는 러시아 첫 단독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러시아 현지 밴드와 한국계 러시아 록 뮤지션 빅토르 최(Viktor Tsoi·1962~1990)를 추모하는 협업곡도 발표했다. 록을 고리 삼아 한러 문화사절단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러시아 단독 공연 때 처음부터 떼창을 하는 팬들 모습이 경이로웠어요. 온 몸으로 순수하게 우리 음악을 즐겨주는 느낌이었습니다.”(김인영) “수십명이 무대에 올라와 포옹한 사건은 러시아 현지 뉴스에 나와 깜짝 놀랐습니다. 러시아와 이렇게 인연이 이어질 줄은 예상 못했습니다.”(이성수)
 
지난해 서울에서 개최된 한·러 록밴드 합동 공연 ‘Rock in Seoul’. 사진/해리빅버튼
 
밴드는 러시아 현지 밴드들과 빅토르 최를 추모하는 공연도 준비 중이다. 한러 수교 30주년을 맞아 정부의 지원을 받는 ‘한러 상호교류의 해’ 일환. 당초 7월로 예정돼 있었지만 최근 코로나19 장기화로 행사가 내년까지 연장되며 공연 역시 미뤄졌다. “코로나가 종식되면 유럽, 미국으로도 진출할 계획입니다. 록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나라에서 ‘해리빅버튼 만의 록’을 연주, 제창하고 싶습니다.”(이성수)
 
밴드는 국내 대중음악계의 록 음악 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신을 유지시키려는 지역사회와 뮤지션, 관객들의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했다. 지난 4년 간 러시아의 활기찬 신을 드나들며 느낀 바다. “단순히 개별적인 지원도 중요하지만, 문화예술 토양의 하나로 인식할 수 있도록 여러 주체들의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이성수) 최근 밴드는 코로나19 이후 연쇄적으로 문을 닫는 국내 공연장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됐다.
 
한·러 록밴드 합동 공연 개최된 ‘Rock in Seoul’. 사진/해리빅버튼
 
밴드는 당초 오는 7월5일 홍대 롤링홀에서 앨범 발매 기념 단독 공연을 열 예정이었다. 황량한 사막을 가로지르는 ‘매드맥스2’의 멜 깁슨처럼 코로나19 여파로 침체된 공연시장을 탈주하려 했으나, 관객과 아티스트의 안전을 우선해 취소를 결정했다. 대신 지난달 29일 앨범과 동명의 곡 뮤직비디오를 발표했다. 영상 속 멤버들은 실 악기 연주 없이 립싱크와 핸드싱크를 강렬하게 교차한다. “코로나 시대에도 음악은 울려 퍼진다는 메시지입니다. 무대가 없어 악기를 들지 못해도!”(이성수)
 
립싱크, 핸드싱크로 코로나19 시대에 저항을 표현한 해리빅버튼의 'Dirty Harry' 집콕 뮤직비디오. 사진/해리빅버튼
 
마지막으로 밴드에게 이번 신보를 여행지에 비유해 달라고 요청했다.
 
“과거부터 세기 말까지 느껴볼 수 있는 판타지 여행 세계.”(이성수)
 
“5개 트랙을 순서대로 돌리면 상상력이 자극되는 부분들이 분명 있으실 거예요.”(김인영)
 
“곡들이 담고 있는 그 영화 속 배경들로 가보시죠. 핵전쟁으로 황폐한 호주 웨이스트랜드(‘MAD MAX 2’)를 지나 커피 한 잔 나눌 수 있는 90년대 미국의 아기자기한 카페(‘Reality Bites’)까지. 아 참, 좀비떼들(‘Dawn of the dead’)도 꼭 조심하세요.”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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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