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유라 기자] 일본 조선업계가 한국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몸집 불리기에 한창이다. 대형 조선사는 업무·자본 제휴로 협력하는 한편 중형 조선사는 합병을 통해 선박 설계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에 밀려 수주량이 감소하자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4일 조선·해운 매체 헬레닉쉬핑뉴스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일본 쯔네이시(Tsuneishi)가 미쯔이(Mitsui)E&S조선 지분을 일부 인수해 합병한다.
양측은 올 연말 전에 합병을 위한 계약을 체결하기로 했으며 오는 2021년 10월 합병 절차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양사는 중형 벌크선과 탱커를 주력으로 건조하는 일본 중견조선소다. 쯔네이시는 일본에서 4번째로 큰 조선소이며 중국과 필리핀에 현지 법인을 두고 있다. 작년 조선 사업 매출은 1646억엔(1조8600억원)이다.
미쓰이E&S조선은 일본에서 8번째로 큰 조선소로 오랫동안 적자를 내고 있다. 미쓰이E&S조선은 조선 사업에서 수익을 내지 못하면서 지난 5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도 연간 적자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JMU 조선소 전경. 사진/JMU 홈페이지 갈무리
양사는 이번 합병을 통해 선박 설계, R&D(연구개발), 생산 능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두 회사의 수주 영업력이 합쳐질 경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이미 지난 2018년부터 선박 설계 및 부품 조달 관련 제휴를 맺으며 협력해왔다.
합병 후에는 단숨에 3위 조선그룹으로 도약하게 된다. 현재 1·2위인 이마바리조선과 재팬마린유나이티드(JMU)에 이어 3번재로 큰 조선사가 탄생할 전망이다.
일본 조선업, 일감부족에 침몰중
국내에선 이번 합병에 대해 일본 조선업계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평가다. 일감 부족에 '각자도생'의 한계를 느꼈을 것이란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 중형·중소 조선소의 신조 수주량이 줄고 있다. 조선소들이 더이상 못 버틸 것이라고 판단한 듯 하다"며 "생존을 위해 합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일본은 글로벌 발주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고 있다.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에 따르면 올 상반기 일본의 수주량은 57만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로, 발주 시장에서 10%를 점유하는데 그쳤다.
수주잔량도 줄고 있다. 6월 말 기준 수주잔량은 954만CGT로 전월 대비 8%(80만CGT) 감소했다. 전년 동기와 비교했을 땐 38%(574만CGT) 하락하며 일감이 급감하는 추세를 보였다. 이에 일본의 글로벌 수주잔량 점유율도 18%에서 14%로 줄었다.
반면 한국과 중국의 수주잔량 점유율은 확대됐다. 한국은 26%에서 28%로 늘었고, 중국도 36%에서 37% 소폭 상승했다.
쯔네이시 필리핀 조선소가 건조한 컨테이너선. 사진/쯔네이시 홈페이지 갈무리
일본도 조선사 대형화 추세에 합류
특히 이번 합병은 글로벌 조선업계의 대형화 추세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우선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합병을 위해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를 시작으로 6개국에서 기업결합심사를 받고 있다. 양사 합병이 완료되면 메가 조선소 탄생이 현실화된다.
중국은 이미 지난해 말 양대 조선사인 중국선박공엉집단공사(CSSC)와 중국선박중공집단공사(CSIC)의 합병을 마친 상황이다.
그러자 일본도 뒤늦게 조선업 재편에 속도를 냈다. 지난해 말 이마바리조선과 JMU가 전격적으로 업무·자본 제휴를 체결했다. 엄밀히 말하면 합병은 아니지만 합작조선소를 세우고 컨테이너선, LNG선, 벌크선 등에 대한 공동영업 및 설계에 나선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 몇년간 시황이 안좋다 보니 실적이 좋을 수 없을 것"이라며 "합병으로 한국, 중국 조선사와의 격차를 줄이려 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일본 조선사들의 위기는 이미 몇년 전부터 업계에서 흘러나왔다. 일본은 기술력을 앞세운 한국에 밀려났고 가격경쟁력 면에선 중국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에 업계에선 일본 조선업계가 벼랑 끝에 몰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결국 일본 정부가 자국 조선업을 보호하기 위해 금융지원에 나선다. 일본은 자국 조선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거액의 금융지원을 실시하는 새로운 틀(기금·단체)을 창설할 방침이다.
지원 1건당 수백억엔(약 수천억원) 규모가 될 전망이며 연내 지원 실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제도의 핵심은 컨테이너선, 유조선 등을 운영하는 해운사가 해외에 설립하는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해 일본 조선소에 선박을 발주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SPC의 자금 융통이 수월해질 경우 일본 해운사의 자국발주도 보다 활성화될 것이란 관측이다.
미쯔이(Mitsui)E&S조선이 건조한 VLCC. 사진/미쓰이E&S 홈페이지 갈무리
일본 '내로남불' 조선업 지원
일본은 자국 조선소 수주량을 높이는 동시에 해운사의 운송능력도 키우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지원 계획은 한국 정부의 조선업 지원에 반발하며 WTO(세계무여기구)에 제소한 행보와 배치된다. 일본은 2018년 한국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해 자국 조선업을 불공정 지원했다며 WTO에 제소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서울에서 양자협의가 열렸으나 한국 정부가 조선업 구조조정은 정당한 정책 집행으로 WTO 규정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해 결렬됐다. 그후 일본은 공식 재판 절차인 패널 설치를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1년 넘게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다가 올 초에 또 다시 양자협의 카드를 꺼내 제소 절차를 되살려 놓았다.
지난달 말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는 요미우리신문에 "이대로 가면 일본 조선업이 소멸할 수도 있어 WTO 협정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정부가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한국 정부와 조선업을 비난하다가 이제 와서 자국 조선소를 지원하는 것을 두고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행태라는 비판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이 자국 조선소를 지원하겠다는 건 모순"이라며 "그동안 한국에는 불공정 지원이라고 해놓고 자국 조선소가 어려우니 이제는 지원하겠다는 것이 우습다"고 지적했다.
최유라 기자 cyoora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