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묻지마 폭행' 중형 선고 추세

심신미약 배척·재범 가능성 높게 봐…검찰도 살인미수죄까지 적용 기소

입력 : 2020-09-06 오전 12:00:00
[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이유도 없이 불특정 다수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묻지마 폭행'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법조계는 피해자의 피해 정도에 따라 중상해죄, 살인미수 혐의까지 적용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법원도 아무잘못이 없는 피해자의 고통을 감안, 중형을 선고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추세다.
 
6일 경찰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5월 서울역 앞에서 30대 여성을 광대뼈가 함몰되도록 폭행한 후 달아난 30대 남성이 지난달 기소됐다. 강남 한복판에서 여성 7명을 연쇄 폭행한 남성과 가로수 길에서 여성이 정신을 잃을 때까지 폭행한 남성은 구속 상태에서 검찰에 송치된 상황이다. 
 
서울역 묻지마 폭행 사건 관련 상해 혐의를 받고 있는 이모씨가 지난 6월4일 오전 추가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용산구 용산경찰서에서 철도특별사법경찰대로 이송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들에게는 폭행죄는 물론 중상해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미수 혐의까지 적용될 수 있다는 게 법조계 의견이다. 가로수 길 사건에서는 경찰이 확보한 CCTV 등을 보면 남성은 주먹과 발로 피해자의 신체를 가격하고 쓰러진 피해자의 머리를 짓밟기도 했다. 피해자는 뇌진탕과 단기기억상실, 대인기피증을 호소하고 있다.
 
묻지마 폭행은 일반 폭행 이상의 혐의가 붙는다. 폭행치상죄(폭행상해)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내려지지만, 피해자의 상해 정도에 따라 중상해죄로 1년 이상 10년 이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도 있다. 만약 피해자가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한 채 폭력을 휘둘렀다면 살인미수 혐의가 적용돼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서 일부 감형한 형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김지진 리버티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묻지마 폭행은 상해나 중상해죄가 적용돼 법적 처벌 수준이 높아질 수 있다"면서 "'폭행으로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정도의 고의가 있었다면 살인미수도 성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초범이라도 가중처벌 대상이 된다. 대검찰청은 지난 2017년 발표한 묻지마 범죄 근절을 위한 '폭력범죄 엄정 대처를 위한 사건처리기준 강화 방안'에 따라서다. 묻지마 폭력범죄는 동종 전과나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를 불문하고 특별 가중요소로 취급돼 형량이 가중된다.
 
법원도 묻지마 폭행에 대해 엄벌하는 추세다. 수원지법 형사7부(재판장 김형식)는 여자친구와 다툰 후 화가 난다며 길을 지나가던 10대 여성을 폭행한 A씨의 항소심에서 징역 1년2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1심의 징역 10월보다 형량이 늘었다. 재판부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 피해자가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심각하고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있다"며 "묻지마 범죄의 죄질이 극히 불량하고 죄책도 무겁다"고 말했다.
 
실형 선고에는 재범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도 영향을 미친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0단독 김연경 판사는 길을 가던 여성과 부딪친 후 "기분 나쁘게 쳐다본다" 면서 폭행해 갈비뼈를 부러트린 B씨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김 판사는 "묻지마 범행으로 사회 구성원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한다는 점에서 엄벌할 필요성이 크다"며 "이미 비슷한 범행으로 여러 차례 처벌받은 점과 재판에 임하는 태도 등에 비춰 피고인은 윤리의식과 준법 의식이 낮고 재범 위험이 크다"고 판시했다.
 
김 변호사는 "묻지마 폭행은 주변 CCTV 등 폭행의 증거가 명확하면 실형 선고가 많은 편"이라면서 "예전에는 주취나 질환 등이 감경사유가 됐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고 사과나 합의가 이뤄지면 감형요소가 될 수는 있다"고 말했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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