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바흐 무덤에 바친 연주…랑랑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악적 에베레스트로 불리는 곡, 바로크 시대 그대로 구현”
코로나19 시대 음악인의 역할 “사람들 마음과 영혼 결속시키는 것”

입력 : 2020-09-11 오후 2:50:3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올해 초, 그는 독일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로 향했다. 압박감 탓에 미루려 했던 골드베르크 변주곡 라이브 녹음을 위해서다. “일반 관람객들이 불편할 수 있다는 이유로 교회 측이 허락한 시간은 35일 하루 뿐. ‘음악적 에베레스트라 불리는 이 난곡을 그날 바흐(1685~1750) 무덤 옆에 초혼의식처럼 바쳤다연주를 마친 뒤 무덤 앞으로 걸어가서는 이렇게 속삭였다
 
오늘의 제가 당신을 자랑스럽게 했다면 좋겠습니다.” 
 
지난 3일 중국 출신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랑랑은 이 곳에서의 라이브 녹음 버전을 포함한 앨범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냈다. 10일 화상 앱 으로 만난 랑랑은 당시 녹음 직후, 코로나19가 거짓말처럼 유럽 전역으로 확산됐다며 그날의 녹음을 신이 내게 지정한 날짜 같았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그날 녹음 이후 그는 예정돼 있던 투어까지 취소해야 했다. “그날이 아니었다면 녹음은 2022년에나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이 프로젝트는 산산조각 났을 겁니다.”
 
10일 화상앱 '줌'으로 만난 중국 출신 세계적 피아니스트 랑랑. 사진/유니버설뮤직
 
변주가 30개에 달하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많은 피아니스트들에게 음악적 에베레스트로 통한다. 랑랑은 10대 시절 피아니스트 대가로 불리는 크리스토프 에셴바흐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 곡을 연주했고, 20년 만이 지난 지금에서야 자신만의 해석으로 녹음했다. 지난 3년간 독일의 하프시코드 연주자 안드레스 슈타이어와 해부학처럼 곡을 파헤쳤다.
 
지난 3년 간 이 곡을 연구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건 결국 바로크 시대의 자장 안에서 연주해야한다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하프시코드와 바로크 오르간 같은 당대 악기로 그 시대 자체를 구현하는 것이 중요해요. 특히 바로크 시대의 꾸밈음(악곡에 여러 가지 변화를 주기 위하여 꾸미는 음)을 구현하려면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죠.”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애초 목적의식이 있는 상태로 만들어진 음악이다. 바흐와 친하게 지내던 러시아 대사 헤르만 카를 폰 카이저링크 백작의 의뢰로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드레스덴에 주재하고 있던 카이저링크 백작은 자신의 불면증 때 듣고 즐길 감미롭고 경쾌한 성격의 곡을 만들어 줄 것을 바흐에 요청했다.
 
바흐는 총 9개의 변주를 뼈대 삼고, 이를 다시 절반 정도로 갈라 곡을 도합 30개의 변주로 나눴다. 그 사이엔 쿠랑트, 지그, 미뉴에트, 사라반드, 푸가 등의 여러 형태를 넣어 복잡성과 역동성을 살렸다. 변주 2~5개를 하나의 유닛처럼 자유자재로 묶고 푸는 랑랑은 이 곡을 어린 시절 트랜스포머나 레고를 갖고 노는 것처럼 수학적이라고 설명한다.
 
베를린 스튜디오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랑랑. 사진/유니버설뮤직
 
“‘음악적 에베레스트란 말은 사실입니다. 테크닉적으로나 음악적으로 가장 어려운 작품 중 하나죠. 개인적으로는 25번째 변주의 어둡고, 수동적이고, 우울하고, 고통스러운 느낌을 해석하는 데 굉장히 애를 먹었어요. 그 고통을 이해하려면 연주의 숙련이 필요합니다. 10대 쯤 되는 어린 나이에 그 부분을 해석하는 건 고문 그 자체죠.
 
랑랑은 인터뷰 내내 거의 15~16세기의 중세인처럼 말을 했다. 바흐의 음악관과 취향에 대한 이야기도 물 흐르듯 거침이 없었다. 일평생 독일 아른슈타트와 라이프치히 인근을 벗어나지 않은 음악가, 양배추 수프를 먹으며 친구와 노래하던 순박한 시골 토박이. “바흐가 오직 자신의 영혼을 씻기 위한 이유로 연주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앙심 깊은 사람이었고, 보다 훨씬 거대한 세계가 있었을 겁니다. 다른 작곡가보다 화성이 훨씬 많고 복잡한 것도 특징인데, 분명 세 개의 뇌를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이번 앨범엔 라이브 버전 외 스튜디오 레코딩도 실었다. 라이프치히 교회에서 하루 만의 녹음은 특유의 소리 공간감은 좋았지만 사운드의 완벽성으로는 다소 아쉬웠다. 그는 라이브 녹음은 즉흥적인 질감이 살지만 아쉬운 부분도 많았다스튜디오에서 다시 각 변주를 5번씩 녹음해 싣게 됐다고 말했다. 랑랑 만이 표현할 수 있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차이점을 묻는 질문엔 “30개의 다른 변주에 어떤 성격을 부여해야 하는지가 이 곡 해석의 가장 큰 특징이라며 “(내 경우는) 레가토와 스타카토를 오가며 손가락으로 많은 디테일을 표현한다. 흔히 감정 없는 음악이라고도 불리지만 낭만주의 작곡가들을 대하듯 온전히 감정을 쏟는 구간도 있다고 답했다.
 
랑랑. 사진/유니버설뮤직
 
랑랑은 지난해 한국계 독일 피아니스트 지나 앨리스와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후 한국과의 접점도 넓어지고 있다. 오는 1213일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이 앨범을 연주할 예정이다. “한국에 갈 때마다 멋진 한국 음악가들과 함께 무대에 서려고 노력한다는 그는 이번 공연에서도 함께 협업할 뮤지션을 찾아보고 싶다. 이제는 가족들도 한국에 살기 때문에 한국이랑 더 가까워진것 같다고 했다.
 
랑랑 역시 코로나19로 올해 공연 계획이 전부 틀어졌다. 세계 각지에 잡혀있던 70여개 공연이 모두 미뤄졌다. 이 어려운 시기, 예술가의 역할을 묻자 굳세고 단단한 답을 내렸다.
 
어떤 뮤지션에게든 악몽 같은 해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내면적으로 강해져야 합니다. 부단히 연습해서 음악을 내야합니다.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을 결속시키는 것, 그게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니까요.”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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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