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올해 코로나가 터지고 공연이 잇따라 취소되면서 억울한 게 많았던 것 같아요. 왜 우리가 이런 상황을 겪어야 하는지 모르겠고...”
10일 저녁 9시20분경, 세계 각국의 시차를 뚫고 방탄소년단(BTS) 지민이 울음기 가득 먹은 목소리로 한 마디, 한 마디를 힘겹게 이어갔다.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를 석권한 곡 ‘Dynamite’ 앵콜 공연을 마친 직후. “다른 것보다 이렇게 즐겁게 공연하고 여러분의 모습을 보며 행복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제일 하고 싶었던 것들이 왜 좌절돼야 했는지.. 그 상황이 스치면서 갑자기 울컥한 것 같습니다.”
이어 지민의 등을 두들기던 리더 RM이 마이크를 잡고 화상으로 연결된 수백 수천의 아미를 향해 영어로 말했다. “우리는 글자 그대로 강합니다. (We are literally strong).” 그는 “우리 모두는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우린 여전히 연결돼 있다. 자신을 믿고 사랑하자”고 했다.
방탄소년단 ‘BTS MAP OF THE SOUL ON:E’. 사진/빅히트엔터테인먼트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방탄소년단은 이날 서울에서 비대면 공연 ‘BTS MAP OF THE SOUL ON:E’을 열었다. 올 초부터 준비하던 오프라인 월드투어 ‘MAP OF THE SOUL TOUR’의 온라인 버전이다. 온라인 콘서트는 지난 6월 '방방콘 더 라이브' 이후 4개월 만이자 2번째다.
앞서 그룹은 코로나19의 세계적 팬데믹으로 월드투어를 잠정 중단해야 하는 사태를 맞은 바 있다. 미국과 캐나다·일본·영국·독일·스페인 등을 돌 예정이었지만 글로벌 물류 시스템 가동, 스태프와 관객 건강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만큼 일정 변경이 불가피했다. 이 공연 역시 애초 오프라인 병행을 고려했었지만 코로나19 여파가 진정되지 않으면서 라이브 스트리밍 생중계 방식으로만 펼쳐졌다. 이날 멤버들은 “1년 동안 준비했던 공연”이라며 그간의 아쉬움을 눈물과 함께 터뜨리고야 말았다.
공연은 이날 저녁 7시부터 영화 트레일러처럼 시작됐다. 일곱 멤버들을 빗대 만든 조그만 3D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의 등장. 햄버거 옆에 쪼르륵 선 이들이 케첩을 뿌리자 자막이 떴다. “본 공연은 음식물 반입이 가능합니다. 가장 편안한 자세로 즐겨주세요.” 마치 비대면 공연 시대의 선언처럼 들렸다.
방탄소년단 ‘BTS MAP OF THE SOUL ON:E’. 사진/빅히트엔터테인먼트
사막을 연상케 하는 영상을 배경과 교차되며 방탄소년단은 올블랙 의상으로 무대에 등장했다. 첫 곡은 올해 2월 발표한 앨범 ‘MAP OF THE SOUL: 7’의 타이틀곡 ‘On’. 수직 수평으로 장대한 무대를 꽉채운 수십명의 마칭 밴드와 댄스 팀, 그룹이 오와 열을 맞춰 춤을 추자 화상으로 연결된 세계 아미들(방탄소년단 팬덤명)의 함성이 화면 밖으로 터져 나왔다.
이어 ‘N.O’와 댄스 브레이크 ‘We Are Bulletproof Pt. 2’, ‘Intro: Persona’, ‘상남자(Boy in luv)’까지 이어간 뒤에야 팬들과 인사를 나눴다. 멤버들은 “방방콘 때는 채팅으로만 소통했는데 이렇게 직접 얼굴을 보니 반갑다”고 했다. 팬들이 BTS를 연호하자 “1년 만에 듣는 것 같다”며 기뻐하기도 했다.
방탄소년단 ‘BTS MAP OF THE SOUL ON:E’. 사진/빅히트엔터테인먼트
7명의 멤버들은 올해 데뷔 7주년의 의미를 이번 공연에 담았다. RM은 “데뷔부터 지금까지 7년이란 시간과 멤버들 개인의 이야기를 담은 곡들로 무대를 꾸몄다”고 설명했다. 정국은 “7년간 함께 해오며 우리가 누군지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단 걸 알았다”며 “여러분이 있었기 때문에 노래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꿈과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 그리고 자신들을 이끌어준 아미에 대한 관계에 대한 노랫말들이 150분 간의 공연 시간을 가득 채웠다.
이날 공연에서 시선을 끈 것은 ‘방방콘’보다 진화한 ‘멀티뷰 시스템’이다. 기존에는 6개의 앵글로 촬영 중인 화면을 선택해 보는 것만이 가능했지만 이번엔 6개를 한꺼번에 띄워놓고 관람하는 것도 가능했다. 메인 화면을 기본으로 ‘풀샷’, ‘클로즈업’, ‘스카이뷰’ 등 서로 다른 각도에서 촬영한 화면들은 오프라인 경험을 넘어서는 생동감을 부여했다.
방탄소년단 지민의 Black Swan 무대. 사진/위버스 캡처
기술 활용에 따라 온라인에서의 강점이 두드러지는 시각적 효과가 빛났다. ‘Blackswan’ 후반에는 발레를 전공한 지민의 독무대가 매핑 프로젝션과 겹쳐지며 아련한 감성을 더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표현됐다. 검정 깃털옷을 입고 흑조를 표현하는 동작이 스카이뷰 앵글의 VCR로 보여지자 관객들의 탄성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증강현실(AR)이 적용된 무대들은 SF 영화를 보듯 현란했다. RM의 솔로곡 ‘Persona’ 때는 무대 옆 증강현실 기술로 구현한 거인 같은 RM의 모습이 등장했고, ‘DNA’ 무대에서는 멤버들 전체가 우주 은하수로 빨려 들어가는 듯 황홀경을 선사했다. 무대가 가상의 엘리베이터로 변하고 위, 아래 LED 화면 변화를 통해 계절의 변화감을 준 ‘쩔어’의 무대도 인상적이었다.
방탄소년단 ‘BTS MAP OF THE SOUL ON:E’. 사진/빅히트엔터테인먼트
기술로 인한 교감 역시 한층 더 긴밀해졌다. 멤버 뷔가 솔로곡 ‘Inner Child’를 부를 때 후렴구 ‘We gon' change’ 부문에서는 영상 속 아미들이 ‘떼창’을 했다. 앙코르 곡 중 하나인 ‘Run’ 때는 멤버들이 직접 아미밤을 들고 팬들의 영상 곁으로 가 함께 곡을 부르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실제로 빅히트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지난 6월 '방방콘 The Live'보다 8배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것으로 전해진다. 스케일 큰 공연을 구현하기 위해 4개의 대형 무대를 마련했다. 증강현실(AR), 확장현실(XR) 기술, 멀티뷰 라이브 스트리밍 등 첨단 기술도 동원했다. 다만, 공연 중간 중간 영상과 아미밤 연동이 간헐적으로 끊긴 문제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었다.
이날 본 공연 막바지 멤버들은 ‘DNA’와 ‘쩔어’, ‘No More Dream’ 세 곡을 “더 넓은 세상에서 노래할 수 있게 해준 곡, 방탄소년단과 아미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곡, (방탄소년단이) 꿈을 갖고 세상에 나온 곡”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앙코르 때 국내 최초 빌보드 ‘핫100’ 1위곡 ‘Dynamite’ 무대에 앞서서는 “어려운 시기, 선물의 마음으로 낸 음악인데 도리어 지나친 선물을 우리가 받은 게 아닌가 싶었다”며 곡을 소개했다.
방탄소년단 ‘BTS MAP OF THE SOUL ON:E’. 사진/빅히트엔터테인먼트
마지막 곡 ‘We Are Bullet Proof: The Eternal’의 직전. 멤버들은 코로나 시대를 견뎌온, 또 앞으로도 견뎌가겠다는 희망의 말들을 아미들과 나눴다.
“80%는 좋고 20%는 아쉬웠던 것 같습니다. 눈 마주치고 소통을 못한다는 것이 약간의 아쉬움입니다. 하루 빨리 코로나가 종식돼서 현장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제이홉)
“오늘 이 공연을 하기 전까지 우리가 무엇을 하던 사람이지를 까먹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공연이 연기되고 취소되면서 7명 모두 붕 떠버린 시간을 보냈거든요. 하루 빨리 상황이 좋아져서 여러분들과 함께 스타디움에서 뛰어노는 그날을 기대하겠습니다.”(슈가)
“7명 소년들이 모여서 아주 작은 꿈부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는 꿈을 버려야한다고 우리가 지키고 싶은 것들을 버려야 모든 걸 이룰 수 있다 했었죠. 어느 정도 맞는 말도 있었습니다. 세상의 문은 견고했고 높았고 쉽사리 우리의 꿈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저희 같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들을 만나면서 행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음악은 언어고, 우리의 지도는 꿈입니다.”(RM)
방탄소년단은 11일 오후 4시에도 이 공연을 진행한다. 일부 곡 구성은 다르게 편성한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