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삼성 준법감시제도 실효성 없어…형 가중요소로 검토해야"

특검팀 "변호사 5백명 뒀어도 이 부회장 범행 못 막아"
"독립성 보장·모니터링 강화로 된다는 생각 순진한 발상"

입력 : 2020-11-02 오전 3:00:00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삼성 측이 제시한 준법감시 평가기준에 대해 "실효성이 없다"는 의견을 재판부에 제출한 것으로 1일 확인됐다. 
 
특검팀은 지난 23일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에 제출한 '특검 의견서 11'에서 삼성 측이 적시한 평가기준들에 대해 "기존에 이미 마련된 제도를 통해서도 충분히 이행 가능한 일반적 준법감시활동을 평가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가 강조한 '기업총수도 무서워 할 정도의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로 작동하고', '고위직 임원과 기업총수의 비리행위도 방지할 수 있는 철저한 것'이라 볼 수 있을 정도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준법감시 평가기준은 '국정농단 뇌물사건'과 관련해 재판부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주요 양형사유로 고려 중인 조건이다. 재판부가 적합성을 최종 결정하지만, 특검팀이 실효성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 측 평가기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부담이다.
 
특검팀은 이같은 지적과 함께 자체적으로 전문심리위원 평가사항 5개 사항을 재판부에 제시했다. 이 평가사항들은 삼성 측이 제시한 평가사항이나 진행상황의 수준을 훨씬 웃도는 것이어서 재판부가 접점을 찾기까지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이에 따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혐의 파기환송심 선고가 연내에 나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김지형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월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위원장 수락 배경 및 위원회 구성 운영방향에 대한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앞서 삼성은 지난 9월29일 새롭게 마련한 준법감시제도의 유효성을 평가하기 위한 '관계사 유효성 평가기준'을 마련한 뒤 재판부에 제출하면서 "새로 마련한 평가기준에는 감시기능을 대폭 강화한 준법감시제도와 관련한 유효성 평가항목들이 포함되어 있어, 이를 통해 이 부회장 등이 약속했던 내용들이 실제로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여부를 효과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검팀은 그러나 "삼성 준법감시제도가 기준을 충족하는지 검증하기 위해서는 국정농단 사건에서와 같은 승계작업 등 총수의 이해관계와 직결된 사항에 대한 미래전략실 등 그룹차원의 조직적 범행을 사전에 모니터링하고 예방할 수 있는지, 그런 범행 징후가 발견된 경우 준법감시위가 이를 효과적으로 적발해 제재할 수 있는지 등이 핵심평가 사항이 돼야만 하는데, 피고인 측은 구체적 평가사항 없이 일반적 준법감시에 대한 평가기준만 나열해 놓았다"면서 "전문심리위원의 '실효적인 평가기준'으로는 전혀 기능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삼성그룹은 이 부회장의 이미 그룹 내 500명 이상의 국내외 변호사들을 고용해 준법지원 활동을 하고 있었고 국정농단 관련 범행 당시에도 국내 최고 수준의 준법감시 조직을 보유했지만 이 부회장 등의 범행이 발생한 점에 비춰보면 ‘삼성 준법감시제도’를 새로 만든다고 해도 재판부가 강조한 '재벌총수가 두려워할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가 되는 것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 부회장의 '승마지원' 관련 뇌물범행과 영재센터 불법지원 관련 계약서 작성에 처음부터 삼성그룹 변호사들이 계약사항을 검토했고 계약서 체결현장에 삼성 측 법무팀 변호사가 동석했는데도 이 부회장의 범행을 막지 못했다"면서 "삼성 측이 제시한 ‘평가사항’에 이번 사건을 대입해 봐도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범행 당시 이미 500명이 넘는 국내외 변호사 자격증 소지자를 보유한 삼성의 법무조직이 버젓이 존재함에도 이러한 기초적인 위법사항의 적발이나 사후적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은, 이 부회장 등 삼성그룹 최고위 임원들이 공모해 허위·가장계약을 마치 정상적인 거래인 것처럼 외관을 형성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특검팀은 "이러한 현실에서 '준법감시위원회의 독립성 보장', '대외 후원금의 모니터링 강화'라는 단순한 제도개선만으로 총수의 이해관계와 직결되는 미래전략실 등의 조직적 범죄의 예방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도 순진한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준법감시위가 형식적인 모양새만 갖춰 재판부를 기망하려 한다면 감경적 양형사유가 아니라 가중적 양형 사유로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검팀은 이같은 지적과 함께 △기업총수와 계열사간 이익 충돌 상황에서의 범죄예방 △보험업 개정 등 '승계작업' 관련 이슈에 대한 준법의지 확인 △이 부회장의 진지한 반성 여부 △준법감시위의 실효적 운영 평가 △검찰 수사협조 의뢰 관련 평가사항 등 5개 항을 자체 마련한 '전문심리위원 평가사항' 세부사항으로 재판부에 제시했다.
 
특검팀 관계자는 "타당한 기준과 평가를 통한 준법감시위의 실효성을 평가하는 것이 이번 파기환송심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지금으로서는 파기환송심 선고가 연내는 물론, 언제 내려질 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준법감시위 관계자는 "형사사건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이고 준법감시위는 피평가 기관이기 때문에 평가기준이나 내용에 대해 왈가왈부할 사항이 아니다"라면서 "법원이 잘 판단하시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준법감시위가 평가기준을 바꿀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라면서 "재판부가 기준을 평가해서 정리해주면 준법감시위에서 평가 대상 자료를 성실히, 있는 그대로 성실히 준비해 제출할 것"이라고 했다. 삼성 법무팀 등 변호사들의 '준법감시 무용론'을 비판한 특검팀 의견에 대해서도 "준법감시위가 설치되기 전의 일"이라고 밝혔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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