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과학기술 리더십의 추락

입력 : 2021-01-21 오전 6:00:00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백악관 과학담당 보좌관 팀을 발표했다. 바이든은 이 인선이 최근 몇 주일 동안의 발표 중 가장 흥분되는 일이라며 “이 팀은 오직 과학과 진실만을 토대로 일한다. 따라서 앞으로 과학과 새로운 발견 면에서 미국의 입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 시켜 줄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은 말로만 그치지 않고, 백악관 과학담당 보좌관의 지위를 장관급 수준으로 격상시켰고, 이 자리에 에릭 랜더라는 저명한 유전학자를 임명했다. 에릭 랜더는 원래 수학자로 경력을 시작했지만,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이끌며 유전학자로 입지를 굳혔고, 이후 보스턴의 세계적인 의생명공학 연구소인 브로드 연구소를 설립한 현장의 전문가다.
 
백악관 과학정책실장에 물리학자가 아닌 유전학자가 임명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현장 과학자로 경력을 시작해 미국 과학기술계의 신망을 받는 인물을 과학기술계를 총괄하는 리더십에 올린 바이든 행정부의 능력도 탁월하다. 바이든 인수위는 “과학이야말로 새 행정부의 모든 업무에서 최전선의 위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과학적 증거를 모두 무시하고, 미국의 정치를 반과학의 선봉으로 만든 트럼프 전 대통령을 의식해서 한 말이겠지만, 역대 미국 대통령 중에서 이렇게 과학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 이는 바이든이 처음이다.
 
이제 눈을 돌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계 리더십을 살펴보자. 문재인 대통령은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비전으로 ‘4차산업혁명’을 내세우며 등장했다. 그 노력이 어떤 결실을 맺게 될지 평가하는건 아직 이르지만, 청와대가 그동안 임명한 과학기술계 리더십을 재평가해볼 수는 있다. 문재인 대통령 인수위가 가장 먼저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인사로 지명한 인물은, 노무현 정부의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이자 황우석 사태로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박기영 교수였다. 촛불시위와 탄핵의 흐름에 동참했던 젊은 과학기술계는 당황했고, 격렬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과학기술계의 리더라는 과총과 한림원의 원로들은 오히려 인사를 두둔하기 바빴다. 분노한 과학기술계의 젊은 목소리가 모여, 겨우 그 참담한 인사를 막아냈다.
 
그리고 이번엔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로 진화론과 과학의 성과를 부정하는 창조과학자 박성진 포스텍 교수가 지명됐다. 물론 탄핵된 박근혜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교육과학분과 위원으로 창조과학자 장순흥 교수가 임명된 적이 있다. 문제는 현 정부가 촛불의 의지를 받아 박근혜 정부와는 선을 그으며 출발했다는 역사적 상징성 때문에 발생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제에서는 어떻게든 박근혜 정부와 선을 그으려던 문재인 청와대는, 유독 과학기술분야에서만큼은 단 한 걸음도 박근혜 정부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오히려 그보다 더 후퇴했다는게 과학기술계의 중론이다.
 
문재인 정부는 기초연구비 증액, 연구비 집행 유연화 및 여성과학기술인 정책과 대학원생 인권 등에서 분명 괄목할만한 진전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과학기술계는 그런 정책들이 그저 해묵은 불합리를 조금 수정한 것에 불과하다고 여길 뿐이다. 왜냐하면, 바이든 대통령이나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처럼 국가의 수반이 직접 과학기술을 챙기고 나라의 미래를 위해 공부하는 모습을 전혀 느낄 수 없어서다. 세계를 지배하는 두 강대국 미국과 중국은, 모두 과학기술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국제적인 경쟁에서 앞서나가고 있다. 과학기술 경쟁에서 뒤쳐진 나라는, 향후 닥칠 세계의 변화 앞에 무기력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한국에선 가짜학회를 다녀온 과학기술정통부장관 후보에 허탈해하고, 국가과학기술연구회의 수장이 수개월 동안 공백인 상태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청와대의 무사태평을 걱정해야 한다. 심지어 임기가 4일 남은 임철호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은 해임시켰고, 이 자리엔 무려 21명의 후보자가 지원을 했다. 항우연 사태의 본질을 정부가 전혀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심지어 최근 청와대는 순장조라 불리는 정권 마지막 비서실장에 전 과기정통부 장관 유영민을 임명했다. 과학기술에 대한 현 정부의 시선이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인사다.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는 과학기술을 넘어 과학기술인에 대한 배려를 할 생각이 전혀 없다.
 
더 놀라운 인사는 최근 이루어진 과학기술정책연구원장 자리다. 문재인 정부는 무명의 물리학자였다가 어느날 갑자기 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거쳐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을 지낸 문미옥 박사를 이 자리에 다시 임명했다. 물론 우연히 운이 좋아 정부의 과학기술 고위직을 두루 거친 과학자가, 한국 과학기술계의 정책을 연구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연구원의 수장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위에서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계 인사실책으로 제시된 사건 대부분의 배후에 문미옥 원장이 있다. 그러니까 청와대는 박기영, 박성진 등의 인사실수가 잘못된 일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과연 현 정권의 사랑을 듬뿍 받은 문미옥 전 차관이 얼마나 창조적으로 한국 과학기술정책의 비전을 제시할지 지켜볼 일이다. 물론 현 정권의 임기는 얼마 남지 않았다.
 
바이든 정부의 이번 과학기술계 인사가 보여주는 가장 큰 특징은, 현장에서 단련된 과학기술계의 전문가들을 중용했다는데 있다. 과연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계 인사가 단 한번이라도 그런 현장성을 고려했었는지 되새겨볼 일이다.  과학기술계는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에서 희망을 접었다. 이제 그 희망의 불꽃은 다음 대통령에게 넘어갔다. 다음 대통령의 과학기술계 인사는, 제발 재앙 수준이 아니길 기대한다. 
 
바이든 당선인의 공식 트위터에 올라온 글. “과학은 항상 바이든 행정부의 최전선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 적시됐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heterosis.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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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