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근로자 징계를 회사의 개입 없이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있는 근로자들이 특정 근로자에 대한 징계를 허위의 사실을 근거로 결정했더라도, 단순히 징계 결정에 따른 처분을 회사 측에 요청한 행위는 해당 근로자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허위사실을 퍼뜨려 같은 회사 소속 캐디(골프장 경기도우미) A씨에 대한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B씨 등 캐디 3명에 대한 상고심에서 일부 혐의만 유죄로 보고 벌금 5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0일 밝혔다.
대법원 전경. 사진/뉴스토마토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개별적인 소수에 대한 발언을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을 이유로 공연성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막연히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 부족하고, 고도의 가능성 내지 개연성이 필요하며, 이에 대한 검사의 엄격한 증명을 요한다"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회사 캐디들은 자율규정을 위반한 캐디에 대한 징계를 스스로 결정한 후 이에 따른 요청서를 회사 대표 비서실 접수 직원에게 전달하고 회사 내부의 검토·보고를 거쳐 시행하는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공소사실에서 문제된 (징계처분)요청서는 허위사실에 기초한 것이기는 하나 피해자가 자율규정을 위반해 징계했으니 골프장에 출입금지를 시켜달라는 내용으로 절차에 따라 회사에 전달됐고 이에 따라 피해자에 대한 출입금지 조치된 점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렇다면, 피고인들이 피해자에 대한 허위사실을 적시해 회사에 전달한 사실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이는 피해자에 대한 출입금지처분을 요청하기 위해 담당자에게 요청서를 제출한 것이지, 피고인들이 적시한 허위사실이 접수직원을 통해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면서 "같은 취지에서 공연성을 부정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은 옳다"고 판시했다.
B씨 등은 2013년 4월 A씨가 외부에서 고객을 만나거나 다른 직업을 갖는 등 캐디 자율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의결하면서 'A씨가 유흥을 일삼거나 유흥업소를 운영해 캐디들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있으니 골프장 출입을 금지시켜 달라'라는 요청서를 회사에 제출해 A씨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같은 해 6월에는 캐디 대기실에서 동료 여러명에게 'A는 유흥업소 종사자이며 유흥을 일삼는 여자'라는 취지로 작성된 서명자료를 읽고 서명하게 한 혐의도 함께 받았다.
1심은 공소사실 전부를 유죄로 인정해 B씨 등 3명에게 벌금 100만원씩을 각각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2013년 4월 회사에 징계처분을 요청한 행위는 전파가능성이 없다면서 무죄를 선고하고, 그해 6월 허위사실이 적시된 서명서를 배포한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이에 B씨 등과 검사 쌍방이 상고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