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백주아 기자]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 최종 결정이 나온지 한달이 훌쩍 지났지만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096770)의 팽팽한 기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ITC가 내주 배터리 분쟁 2차 격인 특허권 침해 관련 예비결정을 내리는 가운데 1차와 같은 판단이 나올 경우 LGES가 확실한 승기를 굳힐 수 있으나 관건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다. 양사간 배터리 소송전은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정책과 미국 전기차 시장의 미래와 긴밀히 연결돼 있는 만큼 바이든 결정에 따라 결론도 달라질 전망이다.
출처/뉴시스
15일 업계에 따르면 내달 10일(현지시간) 미 ITC의 LGES과 SK이노의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판결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가 결정난다.
앞서 ITC는 지난달 10일(현지시간) 향후 10년간 SK이노의 전기차 배터리 관련 부품에 대한 미국 내 생산·수입 금지를 명령했다. 우리나라 행정심판과 유사한 ITC 결정은 미 대통령의 심의와 승인 절차(Presidential Review)가 필요하다. 검토 기간은 60일로 판결 이후 한달이 넘은 현재 바이든 대통령은 남은 27일동안 거부권 행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에 대해 LGES은 거의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영업비밀 침해 건과 관련해 미 대통령이 ITC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한 사례는 역사상 단 한 건도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ITC는 오는 19일(현지시간) SK이노가 배터리 관련 특허를 침해했다는 LGES 주장에 관한 예비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영업비밀 침해 사건에서 승기를 잡은 LGES이 특허권 침해 사건마저 유리한 판단을 얻게 될 경우 판세는 LGES쪽으로 확실히 기울 수 있다.
특허권 침해의 경우 LGES와 SK이노 양사 모두 ITC에 제재를 요청한 사안으로, 시간상 SK이노가 먼저 제기했지만 조사절차 지연에 따라 LG측 요청 결론이 먼저 나온다. LGES은(당시 LG화학)은 지난 2019년 9월 SK이노가 자사 분리막 관련 미국특허 3건, 양극재 미국특허 1건 등 4건을 침해했다며 ITC에 SK이노 제품에 대한 미국 내 수입 전면 금지를 요청했다.
반면 SK이노는 바이든 대통령이 ITC 판결을 뒤집을 수도 있다는 점에 희망을 걸고 있다. 지난 11일 SK이노 감사위원회는 “소송의 본질인 영업비밀 침해 여부에 대한 방어의 기회도 갖지 못한 채 미국 사법 절차 대응이 미흡했다는 이유로 패소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즉 ITC 패소의 결정적 원인은 증거 인멸 정황에 따른 것으로 영업비밀 침해와 관련한 어떤 것도 입증이 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다.
SK이노 감사위는 "미국에서 배터리 사업을 지속할 의미가 없거나 사업 경쟁력을 현격히 낮추는 수준의 (LGES의) 요구조건은 수용 불가능할 것"이라는 입장을 못박았다. 만약 내주 ITC 예비결정에서 특허 침해 부분이 인정되지 않을 경우 SK이노는 지난 2019년 9월 자사가 LGES보다 앞서 제기한 특허권 침해 사건에 집중하며 판세를 뒤집으려는 전략을 취할 수도 있다.
미국 조지아주 SK이노베이션 전기차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 사진/SK이노베이션
양사의 입장이 어떻든 간에 바이든 대통령의 결정은 미국의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 방향으로 내려질 수밖에 없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바이든의 그린뉴딜 정책 영향을 반영한 미국 전기차 시장 규모는 지난해 30만대에서 오는 2025년 240만대, 2030년 480만대, 2035년 800만대 등으로 연평균 25%씩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ITC 판결대로 SK이노 현지 배터리 생산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미국 내 전기차 배터리 수급에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주 주지사는 바이든 대통령에 보내는 두번째 서한에서 "SK이노는 오는 2025년까지 공장을 확장해 고용원을 6000여명으로 늘리고 배터리 연간 생산량도 50GWh(기가와트시) 규모로 늘릴 계획"이라며 "ITC 결정은 SK이노 공장을 통한 조지아주 경제적 번영을 어렵게 할뿐만 아니라 대통령이 ITC 결정을 번복하지 않으면 공장을 폐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지난 2013년 삼성전자의 특허를 침해한 애플 제품 수입을 금지하는 ITC 결정을 뒤집었던 사례도 언급했다.
박철완 서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공화당 텃밭이었던 조지아주가 28년만에 민주당 손을 들어준 상황에 바이든 대통령이 조지아주의 부탁을 거절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특히 미국에 코나EV 리콜이 배터리 문제로 등록된 상황에 바이든 행정부가 파우치형 리튬이온폴리머 이차전지를 자국 배터리 전기차 제조사 공급망에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리스크 분산(헷지) 차원에서 녹색 교통 전략에 훼손이 되지 않는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LGES은 현지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지난 12일 미국 배터리 시장에 2025년까지 5조원 이상의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정책 드라이브에 맞춰 물량을 적기에 공급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함과 동시에 SK이노와의 배터리 분쟁 협상에서도 우위를 점하기 위한 포석이다. 현재 글로벌 배터리 업체 중 미국에 공장을 보유한 곳은 LGES와 SK이노를 비롯해 일본 파나소닉과 중국 AESC 등 4곳 밖에 없다. LGES은 조지아주에 SK이노 공장을 대체할 수 있는 배터리 공장을 설립하거나, SK이노가 짓고 있는 공장 인수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입장도 밝혔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LGES의 계획대로라면 현재 25% 수준의 미국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을 2025년까지 25~30%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며 "전기차 생산 주기 자체 짧아진 환경에서 '선수주 후증설'과 같은 안정적 전략보다는 '선증설 후수주' 전략을 앞세워 미국 시장의 배터리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백주아 기자 clockwor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