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홍 기자] 폭스바겐그룹을 비롯한 주요 완성차 업체가 공격적인 전동화 계획을 발표하면서 전기차 시장 패권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앞으로 수년 내에 만들어질 전기차 시장의 판도가 향후 수십 년을 좌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완성차 업체들은 그야말로 총력전에 나선 모습이다.
주요 업체가 전기차 전용 플랫폼 구축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꿈의 배터리'로 평가되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 등 배터리 자체 생산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완성차-배터리 업계 간 주도권 경쟁도 달아오르고 있다.
승부 5년 내 판가름…완성차 업체, 2025년까지 '전기차' 전력 질주
22일 업계에 따르면 폭스바겐그룹은 지난 16일 연례 기자간담회에서 미래 모빌리티 흐름에 대한 대응 전략을 발표했다. 폭스바겐그룹은 내년까지 27종에 달하는 모듈형 전기차 플랫폼(MEB) 기반 모델을 출시하고 2025년까지 브랜드 산하 모든 브랜드와 세그먼트 모델에 적용할 수 있는 차세대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SSP를 개발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향후 5년간 460억유로(약 62조원)를 투자한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해 12월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2025 전략’을 공개했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 기반의 순수 전기차 및 파생 전기차를 포함해 2025년까지 12개 이상의 모델을 선보여 연 56만대의 전기차를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폭스바겐그룹이 지난 16일 기자간담회에서 미래 전동화 방안을 발표했다. 사진/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현대차(005380)그룹은 조만간 아이오닉5(현대차)를 출시하며, 올해 순차적으로 EV6(기아), JW(제네시스)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신년사에서 “2021년은 ‘신성장동력으로의 대전환’이 이루어지는 한 해가 되어야 한다”면서 “글로벌 친환경 선두 브랜드로의 입지를 확고히 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제너럴모터스(GM)은 올해 1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모빌리티 기업으로 변화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2025년까지 270억달러(약 30조원)을 투자해 전기차 30개 모델을 출시하며, LG화학과 합작을 통해 전기차 플랫폼 ‘얼티엄’ 구축에 나선다.
경쟁 업체들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과 달리 토요타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토요타는 경쟁 업체보다 전기차 초기 시장 진입은 늦었지만 향후 전고체 배터리를 통해 전기차 주도권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전고체 배터리는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에 비해 부피는 작지만 주행거리는 대폭 늘릴 수 있고 안전성이 높아 폭발 위험이 낮다는 장점이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해 5월, 삼성SDI 천안사업장에서 회동했을 때 전고체 배터리 등에 대해 논의할 정도로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서 중요한 기술로 평가된다. 하지만 상용화에 이르기까지 높은 기술 수준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다.
토요타는 전고체 배터리를 통해 전기차 시장판도는 바꾼다는 목표다. 사진/뉴시스
토요타는 이르면 연내 전고체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 시제품을 공개하고 오는 2025년 양산에 돌입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현대차그룹이 2025년 시범 생산을 하고 2030년 양산을 시작하는 목표 시점보다 5년가량 빠르다. 폭스바겐은 퀀텀스케이프(QuantumScape), BMW는 솔리드파워(Solid Power)와 전고체 배터리를 공동 개발 중이며, 양산 시점은 2025~2026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토요타는 당분간 강점이 있는 하이브리드 판매를 극대화하면서 전고체 배터리 개발까지 시간을 번다는 전략”이라면서 “업계에서는 2030년쯤 기술적인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는데, 만약 토요타가 그 전에 양산에 성공한다면 전기차 시장에서 빠르게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헤르베르트 디스 폭스바겐그룹 회장이 파워 데이에서 미래 전동화 계획을 발표하는 모습. 사진/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전기차 핵심, 배터리 직접 만들어 가격 낮춘다"
완성차 업체들이 배터리 자체 생산에 나서면서 전기차 판도는 완성차-배터리 업계 간 대결 구도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폭스바겐그룹은 최근 파워 데이(Power Day)에서 향후 10년 내 240GWh의 생산량을 갖춘 기가팩토리 6곳을 구축한다는 방안을 발표했다. 테슬라도 지난해 9월 배터리 데이(Battery Day)에서 3년간 배터리 원가를 56% 낮추고 2022년까지 100GWh, 2030년까지 3TWh 규모의 생산설비를 갖추겠다고 밝혔다.
BMW와 포드도 배터리 내재화를 추진하면서 배터리 업계는 전기차 분야에서 영향력이 줄어들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현 추세라면 전고체 배터리 분야에서도 완성차 업체들과의 대결을 피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또한 폭스바겐그룹이 각형 전기차 배터리를 채택하겠다고 밝히면서 현재 ‘각형-파우치형-원통형’의 3각구도에서 판도 변화의 가능성도 점쳐진다. 각형 배터리를 생산하는
삼성SDI(006400)에 비해 LG에너지솔루션이나
SK이노베이션(096770)이 단기적으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송선재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완성차 업체들이 배터리 가격인하와 배터리 업체들에 대한 협상력 강화 등을 위해 배터리 내재화를 추진하고 있다”면서 “다만 완성차 업체들이 목표 시점까지 배터리 제조 기술력을 갖출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김재홍 기자 maroniev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