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는 코린토스 왕으로 욕심과 꾀가 많은 사람이었다. 시시포스는 제우스를 속인 죄로 지옥에 떨어져 큰 바위를 산 위로 밀어 올리는 벌을 받는다. 산꼭대기에 다다른 돌은 이내 다시 굴러 떨어져 시시포스는 돌 밀어 올리기를 영원히 반복해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어쩌면 경제정책 결정자들도 시시포스의 운명을 짊어졌을지도 모른다. 경제 정책은 특정 시점에 고정되지 않고 시간의 흐름 속에 존재하는 만큼 당대에 국민의 지지를 받았더라도 훗날 경제위기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은 정책이 훗날 경제를 위협하는 칼이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수장들의 자리는 외로울지 모른다. 잘해야 본전, 못하면 더 큰 비난을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수장에 대한 평가가 인색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역대 최장수 기재부 장관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다. 2018년 12월11일 취임한 홍 부총리는 4월1일로 재직 기간이 843일째가 돼 그간 최장수였던 이명박정부 당시 윤증현 기재부 장관(842일)의 기록을 넘어선다. 홍 부총리는 문재인 정부 초기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무총리를 지낼 때 국무조정실장으로 함께 일한 후, 현 정부에 들어 두번째 경제사령탑에 올랐다.
하지만 홍 부총리가 경제사령탑에 오른 2018년 11월이후 대내외 경제이슈들이 연이어 터졌다. 2019년에는 일본 수출규제로 어려움을 겪었고, 작년에는 코로나19 사태로 59년 만에 한해동안 4번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발 경제위기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극복했다는 평이다. 작년 성장률이 국제통화기금(IMF) 이후 22년만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음에도 OECD 회원국 중에서 성장률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상당폭 만회한 것이다. 이는 적극적인 재정집행과 비상경제회의 등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상당한 정책을 만들어내면서 성장경로에 긍정적인 방향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다만 여러 정책 결정 과정에서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과 관련해 건전성 훼손을 이유로 반대 목소리를 높였지만 결국 정치권 주장을 받아들이는 등 크고 작은 소란이 있었다. 또 주식 양도세 대주주 요건 강화를 두고 당과 마찰을 빚자 홍 부총리가 사의를 표명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이 '사표를 반려하고 재신임하겠다'고 말해 일단락 됐지만 갈등도 상당히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경제 컨트롤 타워로서의 역할을 꿋꿋이 해내고 있다.
이제 최장수 장관으로 등극한 홍남기 부총리의 남은 과제를 생각해봐야 할 때다.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소위 '순장조'가 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온다. 현 정부의 임기가 1년 남짓한 시점에서 경제사령탑 교체 여부가 주목되는 이유다. 현 정권의 마지막까지 경제정책을 책임지고 이끌게 될지, 혹은 이정도 선에서 마무리하고 내려올지는 알 수 없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땅 투기 의혹 사태 속 치러지는 다음달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결과가 그의 거취와 관련해 주요 변수로 꼽히고 있는 상황이다.
어떤 결과든 남은 기간동안 홍 부총리가 어려움이 많겠지만 기본은 지키고, 소신은 갖되 소통을 통해 경제를 이끌어가길 바란다. 경제회복을 위해 필요한 정책이면 과감히 추진하고 상황의 변화에 맞춰 끊임없이 조정해 나가는 소신 행정을 마지막까지 기대한다. 경제수장자리에서 내려올 때까지 시시포스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김하늬 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