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한국전력공사가 전기요금에 관한 약관을 작성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인가를 받도록 한 전기사업법 조항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헌재 전원재판부는 전기사업법 16조 1항 중 '전기요금'에 관한 부분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에서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선고했다고 5일 밝혔다.
A씨는 한전이 지난 2016년 7월3일부터 한 달간 사용한 전기에 대해 전기요금을 부과하자 기본공급 약관 중 누진요금에 관한 부분이 전기사업법 4조 등을 위반하고, 자신의 계약 자유를 침해해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일부를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전기사업법 16조 1항 등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고, 법원은 그 중 전기사업법 16조 1항 부분에 대한 신청을 받아들여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전기사업법 16조 1항은 '전기판매사업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전기요금과 그 밖의 공급조건에 관한 약관을 작성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원은 "전기의 사용이 국민의 생활에 본질적인 요소로 자리 잡고, 전기요금이 그러한 일상생활의 본질적 요소에 대한 대가로서 현대사회를 사는 국민이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점에 비춰 보면 전기요금이 불합리하게 책정될 경우 국민의 재산권에 대한 침해가 초래될 수밖에 없으므로 전기요금에 관한 본질적인 사항은 국민의 대표인 입법자가 정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에 대해 "그런데 심판 대상 조항은 전기요금의 실질적 내용에 관해 어떠한 요소도 규정하지 않은 채 전기판매사업자가 전기요금을 약관으로 정하고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이를 인가하도록 함으로써 전기요금의 결정에 있어 국회가 그 통제를 포기한 결과를 초래했으므로 의회유보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설명했다.
또 "심판 대상 조항은 전기판매사업자가 작성하는 기본공급약관 중 전기요금에 관한 부분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인가를 받기 위해 준수해야 하는 구체적인 사항들을 대통령령에 위임하면서 그 실질적인 내용을 전혀 규정하지 않아 위 대통령령으로 정해질 사항이 어떠한 사항인지 예측할 수 없게 하므로 포괄위임금지원칙에 위배된다"고 부연했다.
헌재는 "전기사업법이 전기판매사업자가 전기의 보편적이고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고, 전기사업법의 하위법령, 물가안정법과 그 하위법령 등에서 전기요금 산정에 관한 공법상 규제 장치를 마련하고 있는 이상 심판 대상 조항이 전기요금의 산정기준이나 요금체계 등을 의회가 직접 결정하거나 그에 관여할 수 있도록 규정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의회유보원칙에 위반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전기사업법과 물가안정법은 전기요금 약관의 인가 절차 또는 공공요금의 협의 절차에 관한 구체적인 규정들을 두고 있는데, 이를 종합해 보면 하위법령에 규정될 전기요금 약관의 인가 기준의 대강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으므로 심판 대상 조항이 전기요금 산정의 원칙, 산정 기간이나 산정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았다고 해서 포괄위임에 해당한다고는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은애 재판관은 "본안 판단을 하기에 앞서 이 사건 위헌법률심판 제청은 재판의 전제성 요건을 갖추지 못해 부적법하므로 각하하는 것이 옳다"면서 적법 요건에 관한 반대 의견을 냈다.
이 재판관은 "이 사건에서 심판 대상 조항이 전기요금의 산정 기준이나 약관의 인가 기준을 법률로써 정하지 않은 것이 위헌이라 하더라도 구체적인 약관 조항의 효력이나 그에 따른 계약의 효력, 채무의 존부 등은 법원이 다시 판단해야 할 문제여서 심판 대상 조항이 헌법에 위반되는지에 따라 당해 사건의 결론이나 주문이 달라지거나 당해 사건 재판의 내용과 효력에 관한 법률적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선애 재판관은 "심판 대상 조항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갈등의 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의 본질적 부분을 의회가 스스로 정하지 않고 행정이나 개별 약정에 유보한 것으로 의회유보원칙에 위반된다"면서 본안에 관한 반대 의견을 냈다.
헌재 관계자는 "헌재는 전기요금의 산정 방식이나 요금 체계 등 전기요금의 결정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은 의회가 직접 결정해야 할 정도로 전기의 안정적이고 보편적인 공급에서 본질적인 사항이라고 보기 어렵고, 오히려 전문적·정책적인 판단을 통해 전력수급 상황과 산업구조의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는 사항이므로 심판 대상 조항이 전기요금의 결정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규정하지 않고 이를 하위법령에 위임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의회유보원칙이나 포괄위임금지원칙에 위반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공수처법 일부 개정법률에 관한 헌법소원심판 선고일인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유남석(왼쪽 다섯번째)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자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