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모든 일에 무감각해진다지만, 의식적으로라도 절대 무뎌져선 안 되는 게 있다.
중후장대를 다루는 기업들의 기사를 쓰다 보니 심심치 않게 노동자 사망사고 소식을 듣는다. 처음 다뤘던 사망사고의 경우 원인이 무엇인지, 사고를 막을 방법은 없었는지 꼼꼼히 따져봤지만 이후에는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사고마다 구체적인 상황은 다르지만 큰 틀에서의 원인은 비슷했기 때문이다.
사고는 대개 낡은 설비, 안전장치 미흡, 하청에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노동 방식 때문에 안전 지침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구조에서 출발한다. 그 어떤 사고라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최근에 발생했던 사고들만 봐도 그렇다. 죽은 이들은 이름과 사는 곳, 나이, 일하는 작업장 모든 것이 달랐지만 사고를 당한 이유는 비슷하다.
어버이날이었던 지난 8일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숨진 노동자는 11미터 높이 탱크에서 용접작업을 하다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노조가 공개한 당시 현장 사진을 보면 난간은 허술했고, 추락을 방지할 그물망은 없었고, 노동자의 신발 밑창은 닳아있어 미끄러짐에 취약해 보였다. 탱크 작업의 경우 2인1조로 근무하게 돼 있는데 노동자는 단기공사업체인 하청업체 소속이라 이런 안전 조치가 제대로 지켜지는지 확인조차 어려운 처지였다.
같은 날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설비에 끼여 사망한 노동자에 대해서도 당시 안전장치가 미흡한 결과라는 지적이 쏟아진다. 노조는 죽음을 부른 설비는 이전부터 노동자들이 여러 차례 위험성을 지적했던 것으로, 회사가 방호울 같은 안전장치만 마련했어도 사망사고는 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달 22일 평택항에서 컨테이너에 깔려 목숨을 잃은 이선호군 또한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이군이 원래 맡았던 업무는 항구 내 동식물 검역이었지만 사고 당일 어쩐 일인지 컨테이너 작업에 투입됐고, 안전 장비도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원인이 늘 비슷하기 때문에 사고가 날 때마다 노조가 외치는 구호 또한 같다. 바꿔 생각하면 노동자들이 수십년에 걸쳐 같은 문제를 지적하고 있지만 여전히 고쳐지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회사는 죽음은 막아야 하지만 억울한 점도 있다고 말한다. 중후장대 업종에 종사하는 한 지인에겐 노동자가 빨리 퇴근하고 싶어 안전장치를 하지 않고 작업장에 들어간 사이 염산이 쏟아진 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마 사망사고가 무조건 회사 과실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국내 굴지의 중공업 기업 대표도 최근 산재 청문회에서 노동자 부주의로 인한 사망사고는 막기 힘들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고작 몇 번의 사망사고를 본 기자가 죽음에 무뎌진 것처럼, 수년 혹은 수십년간 중후장대 업종에 종사한 이들에게 죽음은 더 이상 와닿지 않는 모양이다.
그들의 생각대로 사고가 발생한 결정적인 행동은 사람의 순간적인 실수였을 수 있다. 하지만 애초에 작업장에 추락을 방지할 그물망이 있었다면, 2인1조 근무로 사고의 위험을 감지해 주의를 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안전 교육을 통해 위험성에 대해 보다 더 잘 인식한 원청 직원이 투입됐다면, 신발의 밑창이 닳지 않아 미끄러질 때 한번 더 제동이 걸렸다면 이렇게 잦은 죽음은 없지 않았을까. 다시 잇따른 죽음 속에서 개인은 이에 무뎌지더라도 기업은 부디 그렇지 않기를 바라본다.
김지영 기자 wldud91422@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