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정부가 가상자산(암호화폐) 주무부처로 금융위원회를 지정한 가운데 국회에선 금융위 소관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 법안소위 의원들이 잇따라 가상자산 관련 법안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정부 가이드라인이나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에는 정작 사고 발생 시 범죄 수익 환수 등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방안이 빠져 있어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금융위, 가상자산 관리·감독… 정무위서 잇따라 법안 발의
우선 정무위 여당 간사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가상자산업 발전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가상자산업권법) 제정안에는 가상자산 관련 사업자들에 대한 규제 내용이 담겼다.
가상자산 관련 사업을 할 경우 '가상자산업협회'에 의무 가입하고, 금융위 신고 절차를 거치는 등 가상자산을 제도권 내로 편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와 함께 통정매매, 가장매매, 시세조종 등 가상자산 불공정 거래 행위를 금지하기 위해 거래소에서 불공정 거래 행위를 상시 모니터링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면서도 금융위 요건에 맞춰 사업자 등록을 하면 가상자산 관련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증권형 토큰(기업 자산 가치를 토큰에 연동한 디지털자산)의 경우 현행 자본시장법을 우선 적용하기로 했다. 이는 가상자산을 금융상품처럼 제도화하려는 취지로 해석된다.
김 의원의 법안이 가상자산에 대한 '시장 중심 자율 규제'에 초점을 뒀다면 같은 당 이용우 의원이 발의한 ‘가상자산업법'은 거래 사업자가 금융위로부터 인가를 받아야 하는 등 이용자 보호에 좀 더 집중했다.
이 의원 법안에는 △가상자산업자 등 불공정 행위와 시세 조종 행위 금지 △거래소의 고객에 대한 설명 의무 강화 △이용자 예치금과 예탁자산은 거래소 고유 자산과 별도 예치 등의 내용이 담겼다.
법안은 가상자산 사업자가 도박에 관한 형법 246조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앞서 같은 당 박용진 의원이 지난해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방안을 담은 전자금융거래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으며, 이정문 의원은 지난 4월 가상자산 관련 범죄자의 시장진입을 막기 위한 '특정 금융거래 정보의 보고 및 이용에 관한 법률'(특금법) 일부 개정안을 내놨다.
야당은 전일 '가상자산 특별위원회'를 출범했다.
이에 앞서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이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를 위한 ‘전자금융거래법’ 일부 개정안을, 같은 당 윤창현 의원은 가상자산 과세를 1년 유예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믹싱 거쳐 은닉한 가상자산 찾기 어려워”
최근 5년간(2016~2020년) 전국청 연도별 가상자산 몰수 규모. 제공/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실
그러나 금융위의 가상자산 규제안이나 국회에서 쏟아지는 법안 대부분은 사고 예방과 사업자 처벌에만 초점을 맞췄을 뿐, 정작 사고 발생 시 ‘피해 투자자’에 대한 구제 방안이 빠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범죄로 얻은 가상자산을 몰수 할 수 있다는 2018년 대법원 판단이 나온 지 3년여가 지났지만 지금까지 가상자산 은닉재산을 몰수한 사례는 4건에 그쳤다.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검찰이 가상자산을 몰수한 사례는 △수원지검 2018년 5월 △서울중앙지검 2019년 5월 △부산지검 2019년 7월 △대구지검 2020년 11월 등 4건에 불과했다. 몰수 집행으로 국고 귀속까지 된 금액은 약 123억원이다.
한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는 “정부의 가이드라인이나 국회에서 나온 법안들은 이미 수차례 논의된 안들과 그간 발생한 문제를 바탕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며 “사기범들의 가상자산 은닉 자체를 방지하는 게 가장 시급한데 이에 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불공정거래를 상시 모니터링하는 등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사업자 처벌 강화 내용을 담은 각종 법안이 나왔지만 가상자산의 경우 사고 자체를 예측하기가 어렵고 사기범들은 범행 즉시 자산을 은닉한다”며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등과 같은 코인은 추적이 가능하지만 추적이 어려운 다크코인(주소이전 기록을 확인할 수 없는 가상자산) 거래가 가능한 곳에 자금이 흘러 들어가면 찾아내기가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범죄수익을 세탁작업으로 숨길 수 없도록 애초에 가상자산을 거래소에 묶어두는 방안 등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또한 “가상자산업권법은 가상자산 거래소나 코인 재단에는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겠으나 실제 범행을 저지르는 자는 통상 제3의 인물”이라며 “이처럼 드러나지 않는 자가 사기를 통해 얻은 수익을 거래소에 둘리 없고, 바로 가상자산 믹싱(자금을 분산해 세탁) 작업에 돌입해 철저히 은닉한다”고 설명했다.
P2P시장 '온투법'으로 보는 '가상자산업권법' 딜레마
가상자산 거래업자 현황. 제공/금융위원회
업계와 투자자들 사이에선 가상자산업권법 등이 빠른 시일 내 시행돼야 한다고 보는 시선과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각으로 나뉜다.
가상자산업권법과 비교되는 법안은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법(온투법)이다.
온투법은 규제 사각 시대에 있던 P2P(개인 대 개인 대출업체)시장을 제도권으로 편입하기 위해 제정된 법안으로 2019년 10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지난해 8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P2P 업체들은 오는 8월까지 금융위에 등록을 마쳐야 영업이 가능하다.
그러나 금융위에 등록 신청서를 낸 P2P업체는 14곳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온투법 발의 후 시행되기까지 규제 공백기에 각종 사건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팝펀딩 사태가 대표적이다.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동산담보대출을 해주며 혁신 사례로 꼽혔던 팝펀딩이 550억원 규모 투자금을 돌려막기 한 것으로 드러난데 이어 블루문펀드와 넥스리치펀딩 등이 사기 혐의로 기소되고, 최근에는 시소펀딩도 사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온투법이 시행됐으나 이처럼 P2P업체들이 줄줄이 사기 사건에 연루되며 시장은 이미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금융위는 심사에 더욱 신중을 기하고 있다.
시장이 이미 쪼그라든 가운데 당국의 현미경 심사까지 겹쳐 P2P업체들은 줄폐업 위기에 처해 있다. 가상자산 사업자들이 우려하는 지점이다.
이 같은 P2P업계 사례를 들어 가상자산 업계는 시장이 더 망가지기 전 가상자산을 빠른 시일 내 제도권에 편입하되 심사 문턱을 너무 높여선 안 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마련된 가운데 가상자산업권법 등이 블록체인 기술 육성과 함께 피해 보전 문제까지 보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