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할 자격이 없다고 판단한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 재판장 김양호 부장판사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김 부장판사가 이끄는 이 재판부는 지난 3월에도 일본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승소한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소송비용 추심 신청을 기각했다.
8일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반국가, 반민족적 판결을 내린 김양호 판사의 탄핵을 요구한다'는 제목의 국민 청원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전날 이 재판부가 내린 각하 판결에 대해 "아주 충격적인 판결"이라면서 "김 부장판사가 각하 판결을 내린 까닭을 보면 과연 이 자가 대한민국의 국민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반국가적, 반역사적인 내용으로 점철돼 있다"고 주장했다.
청원인은 재판부가 "한일협정에 따라 개인청구권이 소멸됐다는 입장을 법리로 끌어다 썼다"며 "이는 일본 자민당 정권에서 과거사 배상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내세운 변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일협정 다이(때) 부인된 것은 '국가 대 국가의 배상권'이지, 개인이 일본 정부,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청구하는 '개인 청구권'은 부인되지 않았다"며 "김 부장판사가 근거로 제시한 청구권 소멸론은 일본 극우의 입장을 그대로 반영한 반민족적 판결"이라고 주장했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측이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일본제철 주식회사와 닛산화학 등 1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이 각하된 뒤 열린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 부장판사는 서울 출신으로 서울숭실고와 서울대 사법학과를 졸업한 뒤 3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을 27기로 수료한 뒤에는 전주지법, 대전지법 판사를 거쳐 대전고법 판사로 근무했다. 2011년에는 사법연수원 교수로 임명돼 예비 법조인인 사법연수생들을 가르쳤다. 2010년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 박문학자 과정을 밟기도 했다.
2013년 제주지법 부장판사를 시작으로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로 근무했다. 제주지법과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부장판사 때 형사사건을 재판했으며, 서울북부지법에서 민사12부 재판장으로 합의사건과 의료·지적재산 사건을 맡았다. 지난해 2월부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로 있다.
김 부장판사가 재판장으로 있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3부는 전날 강제징용 피해자 송영호씨 등 피해자와 유족 85명이 일본제철·미쓰비시중공업·니시마쓰건설 등 전범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본안 판결 없이 각하했다. 이 소송은 2015년 5월22일 제기돼 6년 넘게 이어졌다.
재판부는 1965년 박정희 정권과 일본정부의 한일협정에서 일본 측 논리를 사실상 그대로 따랐다.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이나 일본국민을 상대로 소로써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된다'는 것이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내린 같은 사건에 대한 판단과 배치되는 판단이다.
또 비엔나협약 27조를 들어 "대한민국과 일본국 사이에 그동안 체결된 청구권 협정 등 각종 조약과 합의 청구권협정의 일괄처리 협정으로서의 성격, 각국 당국이 이 사건과 관련해 한 언동 등은 적어도 국제법상 '묵인'에 해당해 그에 배치되는 발언이나 행위는 금반언 원칙에 위배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청구를 인용하는 것은 비엔나 협약 27조와 금반언의 원칙 등 국제법을 위반하는 결과"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판결문에서 "이 법원은 헌법기관으로소 헌법과 국가 그리고 주권자인 국민을 수호하기 위해 이같이 판결할 수 밖에 없다"며 "만약 이 사건이 중재절차로 가 국제재판소에서 패소할 경우 대한민국 사법부의 신뢰에 치명손상을 입게 되고 이제 막 세계 10강에 들어선 대한민국의 문명국으로서의 위신은 바닥으로 추락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여전히 분단국 현실과 세계 4강 강대국들 사이에 위치한 지정학적 상황에 있는 대한민국으로서는 자유민주주의라는 헌법적 가치를 공유하는 서방세력의 대표국가들 중 하나인 일본과의 관계가 훼손된다"며 "이는 결국 한미동맹으로 우리 안보와 직결돼 있는 미국과의 관계 훼손까지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이 재판부는 지난 3월29일 고 배춘희 할머니 유족 등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소송비용을 청구한 사건에서도 이번과 똑같은 논리로 원고패소 판결했다. 역시 원고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한 다른 재판부의 판결과 배치되는 것이다.
당시 이 재판부는 원고들 청구를 기각하면서 "현대 문명국가들 사이에 국가적 위신과 관련되고 우리 사법부의 신뢰를 저해하는 등 중대한 결과에 이르게 된다"며 "헌법상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와도 상충되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고 판단했다.
일본도 이번 법원 판단에 놀란 논치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는 이날 신문에 "한국 법원이 한일청구권협정을 이유로 원고의 주장을 기각한 사례는 처음"이라며 "대법원의 판단과 달리 일본의 주장에 어느 정도 부합한 내용"이라고 평가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