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하급자에게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손해배상 소송 관련 ‘주권면제(국가면제)’, ‘통치행위’, ‘소멸시효’ 등을 언급하며 승소 가능성에 다소 부정적 입장을 내비쳤다는 검찰 측 주장이 제기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재판장 윤종섭)는 26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임 전 차장에 대한 공판을 진행했다.
검찰은 이날 오후 공판에서 “임 전 차장이 위안부 손배소 이슈를 검토하라 하면서 승소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 방향으로 언급했다”는 내용의 모 판사의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또한 “(임 전 차장이 위안부 손배소 보고서를) 부정적 방향으로 작성하라고 명시적으로 지시한 것은 아니었지만 (임 전 차장이) ‘주권면제’, ‘통치행위’, ‘소멸시효’ 등을 언급해 그의 의중이 부정적이라고 판단했고, 그 방향에 맞춰서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내용의 진술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1억원씩 위자료를 청구한 소송 재판에 대한 부정적 방향 시나리오가 담긴 사법부의 내부 보고서는 사실상 임 전 차장의 지시로 작성됐다는 취지의 진술이다.
주권면제는 국제 관습법상 개념으로 국가의 주권적 행위에 대해 다른 국가가 재판할 수 없다는 이론이다. 지난 2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재판장 민성철)가 고 곽예남·김복동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등 20명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을 각하하면서 채택했던 이론이다.
임 전 차장 지시에 따라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것으로 관측되는 '위안부 손해배상 판결 관련 보고서'에는 5가지의 시나리오가 담겼다. △재판권 없음 △통지행위론 근거 △시효소멸 △개인청구권 소멸 등을 근거로 소송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보고서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주장이 인정될 경우 한일 관계가 악화되고 국제 신인도가 하락할 것이라고 분석하며 소송 취하 유도 또는 소송을 각하하는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당시 임 전 차장의 하급 판사는 이 같은 결론에 다소 거부감을 가졌으나 임 전 차장의 의중을 담아 이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이 이 보고서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직접 보고했다고 보고 있다.
사법농단 혐의를 받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 2020년 10월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76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