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전염되고 온 나라가 숨죽여 지낸 지 1년을 훨씬 넘겼다. 정말로 전대미문의 사태다. 전쟁처럼 적의 존재가 분명히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은 바이러스가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틈만 보이면 공격한다. 모든 국민이 '보이지 않는 적'의 공격을 받을까 전전긍긍한다.
그래도 모두가 조심하고 협조한 덕분에 한국은 세계로부터 방역모범국이라는 칭송을 듣는다. 'K-방역'이라는 말이 국내외에서 회자돼 왔다. 최근의 확진자 급증사태 때문에 그런 명성과 평가가 다소 흔들리고 있지만 말이다.
한국이 방역모범국이라는 평가를 듣게 된 것은 국민 모두가 덜 모이고, 덜 마시고, 덜 다니는 등 삶의 즐거움을 상당 부분 포기했가 때문이다. 한마디로 몸조심을 한 것이다.
몸조심은 자영업자들의 곤경과 경영난으로 이어졌다. 다시 말해 이른바 K-방역이라는 명성은 자영업자들의 희생을 딛고 세워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더욱이 지난 12일부터 적용되기 시작한 방역강화 조치는 또다른 치명타가 되고 있다. 자영업자들이 지난주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에 항의하는 시위를 3차례나 벌인 것은 당연한 몸부림이다.
업종별 자영업자 단체들로 구성된 '코로나19 대응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6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4단계 거리두기는 자영업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을 넘어 인공호흡기까지 떼어버리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방역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시위까지 벌이는 것은 찬성할 수 없다. 하지만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앞선다. 절박한 사정을 표현할 방법이 달리 없기 때문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더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방역강화 조치는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자영업자들에게 무조건 희생을 감수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어떻게든 삶의 터전만은 지켜줘야 한다.
연초부터 정치권에서 제기되던 자영업자의 손실을 소급 보상하자는 주장이 제기됐었다. 그 주장은 이제 없던 일이 됐다. 여러 가지 어려움 때문에 소급보상을 시행하기 어렵다는 것은 이해된다.
대신 지금이라도 이들 자영업자의 위기를 덜어주려는 노력이 더 강도 높게 진행돼야 한다. 이번에 정부가 제출한 2차 추경안에는 소상공인 지원예산이 3조9000억원 책정돼 있다. 국채상환 2조원을 제외한 전체 예산안 33조원 가운데 12%에 불과하다. 사업자에게는 최대 900만원까지 지원된다고 한다.
그것만으로는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 2차 추경안은 코로나 재확산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짜여졌다. 그런데 4차 대확산 사태가 벌어지니 조건이 크게 바뀌었다. 자영업자 지원도 새로운 상황에 맞춰 다시 책정돼야 한다.
반면에 전국민 재난지원금은 오히려 급하지 않아 보인다. 예산을 무한정 동원할 수 있다면 둘다 넉넉히 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정된 예산을 가지고 선택해야 한다면 지금은 자영업자 지원이 우선돼야 한다. 또 정부가 작성한 추경예산안 가운데는 급하지도 않은데 끼워넣은 부분도 적지 않아 보인다. 이런 끼워넣기를 과감하게 제거하고 소상공인 지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항목 재조정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전체 예산규모를 반드시 늘릴 필요도 없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작가 에우리피데스의 작품 <알케스티스>에는 "이승의 삶은 짧지만 감미롭다"는 대사가 나온다. 공감한다. 인생의 그 감미로움을 누릴 수 있는 무대는 바로 자영업자들의 사업장이다. 그런 무대가 지금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이러다가는 자칫 삭막한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현실적으로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방치하면 부실채권이 늘어나고 경제불확실성이 커질 수도 있다. 내수를 살리고 성장궤도를 회복하는데도 장애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양극화도 더 깊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다행히 문재인 대통령도, 김부겸 국무총리도 자영업자들에 대한 지원확대 방침을 밝혔다. 여당과 야당의 의견도 일치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하루빨리 여야 간 논의를 진행해 자영업자들의 곤경을 덜어주어야 한다. 최대한 신속하고 충분한 규모로 지원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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