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코로나19·폭염'에 갇힌 노인들 "사는 게 너무 힘들다"

서울 홍은동 '개미마을', 주민 대부분 70대 노인
한낮 최고기온 36도 돌파…코로나 때문에 창문도 못 열어
야외 쉼터 정자에는 '출입금지'띠
주민끼리 만나도 멀찌감치서 안부만 물어

입력 : 2021-07-23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표진수 기자] "더운거야 말도 못하게 덥고, 코로나 때문에 사는 것도 힘들어…죽어야지 뭐"
 
일년 중 가장 덥다는 대서. 22일 오전 10시쯤 기온이 이미 32도에 육박했다. 기자는 더위에 취약한 취약계층 노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서울 홍은동 달동네 '개미마을'을 찾아가봤다. 한국전쟁 직후 몰려들어 삼삼오오 천막을 지고 사는 사람들 모습이 개미 같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주민들이 부지런히 산다고 하여 붙여졌다는 말도 있다. 언덕 가장 위에 있는 달동네 개미마을은 햇볕을 직접적으로 받아 말 그대로 '찜통'이었다. 그 '찜통'에 사는 주민들은 70대 이상이 대부분이다.
 
낮 최고기온 36도를 육박한 22일 개미마을 주민이 햇빛을 피해 그늘에 앉아있다. 사진/표진수기자
 
이날 0시 기준 서울 등 전국 곳곳에 폭염 경보가 발효됐다. 폭염 경보는 체감온도가 35도 이상인 날씨가 이틀 이상 지속될 때 내려진다. 서울의 한낮 최고 기온은 36도를 넘어서기도 했다.
 
기자가 개미마을 꼭대기부터 땀을 닦으며 내려오던 중 빨래를 걷으러 나온 주민과 만났다. 이곳에서 40년 넘게 살고 있는 주민 김모(74)씨는 기자와 만나 "오전에 빨래를 널고 1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햇볕이 뜨거워 벌써 다 말랐다"며 "매년 더운데, 올해는 유난히 더 더워서 어떻게 지내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시대 이전에야 옹기종기 붙어있는 달동네의 특성상 더운 날씨에 주민들은 보통 밖으로 나와 그늘에 앉아 있는 모습이 그려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날 이곳저곳을 둘러봐도 대문과 창문이 열린 틈으로 인기척만 들릴 뿐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김 씨는 기자와 이야기를 하던 중 마스크를 추켜 올리면서 "이놈의 마스크는 언제까지 써야되는지, 이것만 없어도 훨씬 시원할 것 같다"며 "백신을 2번이나 맞았는데, 내 집앞 그늘에도 못 나와 있겠다. 더운거야 말도 못하고 코로나 때문에 사는거 자체가 힘들어 죽어야지 뭐 어쩌겠어"라고 푸념했다.
 
이날 국내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1842명으로 이틀 연속 최대치를 경신했다. 거리두기 강화에도 코로나19 확산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출입이 불가능해 진 개미마을 정자. 사진/표진수기자
 
 
달동네 취약계층 노인들이 무더위를 피해 쉼터로 이용되던 경로당은 코로나19로 닫은지 오래다. 주기적으로 방역할 때만 잠깐 개방할 뿐이다. 나무 숲이 울창한 개미마을 공원 정자 역시 '출입금지띠'로 칭칭 감겨 있었다.
 
또 다른 주민 이모(71)씨는 선풍기를 자신의 마당 앞 그늘에 두고 바람을 쐬면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씨는 "경로당을 열지 않아 이곳에서 지나가던 주민들과 멀찌감치 떨어져 안부 정도만 나누고 있다"면서 "대부분 코로나19 백신접종을 다 했을텐데, 집 밖을 나오려고 하지 않는다. 나도 마찬가지고 다들 답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최근 폭염 대책비 5억원을 별도 편성해 취약계층 노인을 대상으로 최대 30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생활비 뿐 아니라 온열질환 의료비, 냉방용품 등도 포함됐다. 그러나 연일 더워지는 날씨에 더해 한층 강화된 코로나19 방역 정책까지 더해지면서 달동네와 쪽방촌 취약계층 노인들의 한숨소리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표진수 기자 realwater@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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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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