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표진수 기자] 메르세데스-벤츠가 미래 모빌리티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메이드 인 코리아’ 공급망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한국산 부품의 우수한 품질과 미래 차의 핵심 기술력, 공급망 안정성이 핵심으로 꼽힙니다. 이에 따라 벤츠의 차세대 라인업 구축에 한국산 부품들이 대거 탑재될 전망입니다.
메르세데스-벤츠 그룹의 올라 칼레니우스 회장이 지난해 11월13일 오후 여의도 LG 트윈타워에서 취재진에게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벤츠는 독일 프리미엄 3사 가운데 유일하게 삼성SDI 배터리를 탑재하지 않는 브랜드입니다. 하지만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최주선 삼성SDI 사장과 함께 독일을 비롯한 유럽을 방문해 벤츠 주요 관계자들과 만나 회동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번 회동에서 전기차 배터리 공급을 위한 협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기대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벤츠가 한국 부품 기업들과의 관계를 이처럼 공들여 강화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큰 배경은 중국 의존도 탈피입니다. 벤츠 역시 중국산 배터리 의존도를 줄이고 공급망을 다변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기에 벤츠 자체의 전동화 전환 전략도 맞물려 있습니다. 벤츠는 전기차·플러그인 하이브리드·전동화 내연기관을 아우르는 신차 40종을 2027년까지 순차적으로 투입할 계획으로, 이는 브랜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제품 투자입니다. 신차 물량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려면 배터리·디스플레이·ADAS 등 전장부품 전반에서 믿을 수 있는 파트너가 필수적입니다.
공급망 관리 체계도 한국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벤츠는 독일 구매 조직과 완전히 통합된 ‘MP(자재구매) 아시아’ 조직을 올 초 서울에 설립해 한국·일본 등 아시아권 공급망을 직접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시아 구매 허브는 한국을 비롯해 일본, 태국, 말레이시아 등에 있는 공급사의 품질, 사업 개발 등을 총괄하는 지역 핵심 거점 역할을 맡습니다. 독일 본사가 아시아 부품 조달을 서울에서 직접 챙기겠다는 것은 한국 공급망에 대한 전략적 신뢰를 제도적으로 확인한 조치입니다.
메르세데스-벤츠 EQE 350+ SUV. (사진=벤츠)
LG그룹과의 관계는 이미 20년을 넘긴 협력 역사를 바탕으로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LG전자는 대시보드 전체를 파노라믹 OLED 스크린으로 구현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벤츠와 공동 개발해 EQS에 탑재했으며, ADAS 전방 카메라 등도 10년 넘게 공급하며 기술 신뢰를 쌓아왔습니다.
배터리 분야에서도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총 네 차례에 걸쳐 벤츠와 대규모 공급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누적 계약 금액만 약 24조원에 달하며, 2028년부터 2037년까지 유럽과 북미에 157기가와트시(GWh) 규모의 배터리를 공급할 예정입니다.
현대모비스는 이달 헝가리에 벤츠 전용 공장을 열고 섀시모듈을 본격 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헝가리 거점은 현대모비스가 유럽에서 운영하는 네 번째 공장이자, 현대차·기아가 아닌 외부 글로벌 완성차 고객만을 위해 세워진 첫 번째 전용 공장입니다. 섀시모듈은 차량 하부의 제동과 조향, 서스펜션 부품을 통합한 대단위 부품으로, 생산 거점과 물류 시스템 구축에 대규모 투자가 수반되는 만큼 완성차업체와 부품사 간의 협력 관계가 장기간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 소비자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한국은 세계 3위 마이바흐 시장으로 성장했을 만큼 고급차 수요가 두텁습니다. 한국 소비자들은 첨단 기능과 고급 소재에 대한 이해도가 세계적으로 손꼽힐 만큼 높습니다. 이들의 까다로운 요구를 충족하려면 현지 부품사들과의 긴밀한 협력이 불가피하다는 점 또한 벤츠의 전략적 판단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칼레니우스 CEO는 전 세계에 판매되는 벤츠 차량 중 한국 부품이 들어가지 않은 차가 없을 정도라고 직접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혁신 생태계를 갖춘 한국 기업들과 공급망이 성숙 단계에 진입했다”며 “파트너십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강조했습니다.
표진수 기자 realwat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