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외 해운사 23곳이 운임을 담합했다며 수천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업계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업계에선 해운사들이 운임을 협의하는 건 해운법에서도 인정하는 '공동행위'라는 주장이다. 법을 어긴 것도 아닌데 회사를 휘청이게 할만한 규모의 과징금을 내게 됐으니 억울하다는 것이다.
해운업계 반발이 거세지면서 정계에서도 이 사안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급기야 공정위가 선사들의 공동행위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하는 해운법 개정안까지 발의됐다. 이번 사태가 해운사들의 공동행위를 허용하는 해운법과 이를 부정하는 공정거래법 충돌에서 비롯된 만큼 이번 기회에 상위법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취지다. 사실상 담합을 무제한으로 허용하자는 것이다.
공정위가 이번 운임 담합 혐의에 대한 조사에 나선 건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8년 9월 목재합판유통협회는 해운사들이 한~동남아 노선에서 운임을 담합한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이에 공정위는 조사에 착수했다. 올해 5월 공정위는 혐의가 인정된다며 HMM을 비롯한 국내 12개 해운사와 중국 코스코, 덴마크 머스크, 프랑스 CMA CGM 등 해외 11개 선사에 과징금을 부여하겠다는 심사보고서를 통보했다.
규모는 확정하지 않았지만 문제가 된 노선 매출액의 8.5~10% 수준의 과징금을 매긴다고 한 점을 미루어볼 때 최대 8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을 기점으로 하는 노선이 과징금 대상이다 보니 국적선사들의 과징금 규모가 훨씬 큰데, 업계에서는 최대 56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졸지에 과징금 철퇴를 맞게 된 해운사들의 반발은 거세다. 운임 담합은 불황기 선사들의 최소 수익을 보장하고 거대 선사의 독과점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도 크기 때문이다. 실제 2008년 이후 해운업은 장기 불황이 왔는데 이때 거대 선사들이 저가 운임을 남발하면서 해운사들의 줄파산이 이어진 전례가 있다. 이에 따라 해운협회는 미국과 일본, 중국, 대만,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호주 등 주요국에선 정기선사들의 운임 공동행위를 인정한다며 업계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과는 달리 세계 각국은 최근 들어 해운사들의 공동행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다. 과거에는 초기 비용 투자와 고정비 지출이 큰 해운업 특성을 고려해 업계 공동행위를 허용했지만 선사들의 가격 담합으로 화주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1990년대 말 이후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주요국들은 가격 공동행위를 인정하는 규정을 폐지했고 현재는 선대(선박) 공유 정도만 허용한다.
불황일 때 해운사 운임 공동행위는 생존 도구로서만 역할하지만 호황일 때는 화주를 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특히 지금 같은 호황일 때 선사들이 가격 담합까지 한다면 소비자 피해는 걷잡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해운사들이 10년 넘게 불황에 시달리면서 최소한의 생존 장치를 마련하고 싶은 욕구는 이해하지만 어떤 특수성이 있는 산업이라도 담합을 무제한으로 허용하는 건 위험하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김지영 산업부 기자 wldud91422@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