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백주아 기자] 중국 배터리 기업들이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공급 확대를 본격화하고 있다. K-배터리 업체 주력의 삼원계 리튬이온 이차전지 대비 안전하고 가격경쟁력이 높은 LFP로 전기차 배터리를 넘어 에너지저장장치(ESS)까지 글로벌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1위 배터리 업체 CATL은 테슬라가 일본 홋카이도에 건설 예정인 ESS 메가팩에 LFP 배터리를 공급할 예정이다. 홋카이도 ESS 사업 규모는 6MWh(메가와트시) 급으로, 이는 약 500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양이다.
중국 CATL의 에너지저장장치(ESS) 배터리. 사진/CATL 홈페이지
현재 주류인 리튬이온 배터리는 니켈(Ni), 코발트(Co), 망간(Mn) 또는 알루미늄(Al)을 기반으로 한 삼원계(NCM 또는 NCA) 배터리와 철(Fe)을 기반으로 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로 양분된다. LFP의 에너지밀도는 kg당 180~220Wh로, 삼원계(240~300Wh/kg) 대비 낮다. 하지만 니켈·코발트 등 고가의 희소금속을 포함하지 않아 가격경쟁력과 안전성이 높은 게 장점이다. LG에너지솔루션(분사 전
LG화학(051910))과
삼성SDI(006400),
SK이노베이션(096770)은 삼원계만 생산하고 있지만, 중국 CATL와 BYD 등은 LFP를 주력으로 제품군을 확대 중이다.
최근 배터리 시장에서 LFP의 입지는 더욱 높아지는 추세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분기 실적 발표에서 일부 보급형 전기차 모델과 ESS 제품의 LFP 채택 비중을 3분의 2 수준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철의 매장량이 니켈과 코발트 대비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안정적 배터리 수급 측면에서 훨씬 유용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지난 26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LFP는 삼원계와 거의 동등한 제품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며 "삼원계가 최대 90%까지 충전이 되는 것에 비해 LFP는 100%까지 충전이 된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LFP를 더 선호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26일(현지시간)에 올린 트윗. 사진/트위터 캡처
테슬라의 LFP 선호 경향이 본격화하면서 CATL과의 협력도 강화되고 있다. 앞서 테슬라가 지난 7월 중국에서 출시한 전기차 모델Y의 스탠다드 레인지 모델에는 CATL의 LFP가 탑재됐다. 스탠다드 모델Y는 중국 정부 보조금 정책에 따라 LG엔솔 배터리를 탑재한 롱레인지 대비 가격이 약 20% 저렴하다. CATL은 최근 중국 본토 테슬라 기가팩토리3 근처에 연산 80GWh(기가와트시) 규모의 배터리셀 공장을 짓기 위해 상하이 정부와 협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폭스바겐도 원가 절감 차원에서 LFP 채택 비중을 확대한다. 폭스바겐은 지난 3월15일(현지시간) '파워데이' 행사에서 오는 2023년까지 각형 단일 단전지(unified prismatic cell) 전환과 동시에 저가형(Enrty) 모델에는 LFP를 탑재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보급형(Volume)은 하이망간, 고급형(Premium)은 NCM을 탑재한다. 이에 지난 7월에는 LFP를 주력으로 하는 중국 궈쉬안 하이테크와 기술 파트너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독일 잘츠기터에 배터리 생산시설을 짓기로 했다.
완성차 업계의 LFP 선호 경향은 중국 배터리사의 기술력 제고 노력이 뒷받침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아직 국내에서는 LFP가 삼원계 대비 에너지밀도가 낮아 경쟁력이 낮다는 인식이 여전히 높다. 하지만 CATL은 셀에서 모듈을 건너뛰고 팩으로 넘어가는 셀투팩(CTP) 기술을, BYD는 팩을 칼날처럼 펼쳐 공간 활용도를 높인 블레이드 배터리 등으로 삼원계 배터리 못지 않은 출력을 내고 있다. 기술력을 통해 단점을 극복한 것이다.
폭스바겐 그룹은 지난달 14일 중국 궈쉬안이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 기술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사진/폭스바겐
앞으로 몇 년간 배터리 전기차 시장은 주행거리 기준으로 LFP와 삼원계로 양분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장기적으로 자동차 업체들이 LFP 채택을 확대할수록 K-배터리 3사의 시장 지배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전기차 보급 확대로 배터리 시장 전체 파이도 커질 테지만, 중국과 달리 당장 국내 업체들은 삼원계가 아니면 대안이 없다. 더구나 리튬황, 전고체 등 차세대 배터리를 대안으로 삼기에는 불확실성이 크다.
김현수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LFP의 경우 CTP 기술 등을 통해 에너지밀도가 개선된만큼 주행거리 500~600㎞ 이하 수준의 시장 수요는 충분히 확장이 가능하다"면서 "다만 전장화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는 만큼 미드엔드와 하이엔드 모델의 삼원계 지배력을 위협할만한 수준까지는 아직 한계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차전지 전문가는 3사의 사업 전략 조정에 대한 숙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한다. 박철완 서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과거 국내 배터리 제조사가 삼원계를 고집했다 해도 당시 정부가 LFP 등 철 기반 비수계 이차전지를 놓치지 않았어야 했다"면서 "십수 년 전 감사원 감사 등을 통해 소형 원통형과 중대형 파우치로 방향을 조정한 참여정부의 예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현재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는 K-배터리에 대한 외적 악재인 기술 불신과 내적 악재인 위기불감증이 겹쳐 오는 중"이라며 "유럽과 미국의 자동차 제작사들이 나서 중국을 모방하고 있는 만큼 국내 업체들의 사업 전략 조정이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주아 기자 clockwor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