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1. 서울 마포구에 사는 A(72·남)씨는 딸이 얼마 전 결혼식을 올렸다. 아버지로서 딸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순간이 벅차기는 했지만, 딸은 “내가 신랑 쪽에 물건처럼 넘겨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김씨는 “신랑, 신부 모두 성인인데, 친정아버지가 사위에게 딸의 손을 건네주는 건 남성 중심 가족 문화에 기반한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딸은 자신의 의지로 결혼하는 것이지, 시집 보내는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2. 서대문구에 사는 B(40·여)씨는 장례를 치르는데 장례식장에서 부고를 작성하러 아드님이 오라고 해서 난감해 했다. B씨 집은 딸만 넷이라 B씨가 가겠다고 하니 딸 대신 사위라도 보내라고 했다. 사위가 없다고 재차 말하자 장례식장 직원은 “정말 아들도 사위도 없냐”며 “요즘 그런 집들이 생겨서 자신들도 곤란하다”고 했다. 상조회사 직원 역시 상주를 찾으며 “조카라도 계시면 그 분이 서시는 게 모양이 좋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의례의 본질적 의미를 살리면서도 변화하는 의식과 다양한 가족 현실을 반영한 결혼·장례문화 확산을 위해 온라인 캠페인에 나선다.
서울시 성평등활동지원센터는 ‘이제는 바꿔야할 의례문화-시민에세이 공모전’을 열고, 지난 5~6월 시민들의 에세이를 접수받아 결혼식 불편사례, 장례식 개선사례, 장례식 불편사례 등 분야별 수상자 21명을 선정했다.
결혼식 불편사례 분야 최우수상은 ‘정상가족을 찍어내는 결혼식장’이 선정됐다. 남동생 결혼식에서 이혼 후 왕래가 없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숨기려 한 일화를 소재로 삼은 에세이다. 빈자리를 채워야 했다면 아버지 자리에 외삼촌 대신 누나인 자신이 앉았으면 어땠을까 제안했다.
장례식 개선사례 분야 최우수상은 ‘우리는 진짜야’다. 채식이었던 지인의 장례식 식사가 채식이 아니었고, 발인식 때 장례지도사의 성차별적인 발언을 조문객들이 지적했던 사례들을 들었다.
장례식 불편사례 분야 최우수상은 ‘슬프고도 불편했던 10월의 어느 사흘’이 선정됐다. 할머니와 누구보다 가까웠던 맏손녀로서 영정사진을 들고 싶었지만 남동생에게 역할이 주어졌던 일화를 소재로 장례식 내내 배제당했던 경험을 들려줬다.
서울시 성평등활동지원센터는 6일부터 시민에세이 공모전 수상작을 재구성한 스토리 카드뉴스를 발행한다.
2회에 걸친 온라인 캠페인 모두 시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댓글 이벤트를 진행한다. 심사를 통해 재치댓글상, 감동댓글상, 참가상을 선정하여 소정의 상품도 지급한다.
또한, 9월 말 시민에세이 공모전 선정작을 우수사례집으로 묶어 발간할 예정이다. 김선순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은 “시대가 변하고 가족 구성원이 다양해지면서 이에 맞는 결혼식, 장례식 문화가 발굴, 확산돼야 한다”며, “서울시는 의례의 본질적 의미를 살리면서도 모두가 공감하고, 참여할 수 있는 결혼식, 장례식 문화를 만들어나가는데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서울의 한 웨딩홀에서 하객들이 자리에 앉아 있다. 사진/뉴시스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