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시위에 채찍질, 정부 요직엔 FBI 수배자…달라진 것 없는 탈레반 2.0

과도정부 내각 남성 일색…"여성인권 존중" 공언 무색
'국제적 고립 자초' 비판…백악관 "탈레반 정부 인정 안해"

입력 : 2021-09-10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권새나 기자]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탈레반이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과거보다 온건한 형태의 통치를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 시위대를 상대로 채찍과 몽둥이를 휘두르는 등 반인권 행위를 이어가고 있다. 과도 정부를 구성하면서 테러리스트로 지목된 이들을 요직에 앉히면서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기까지는 요원해 보인다.
  
8일(현지시간) 탈레반은 여성의 스포츠 경기를 금지하겠다고 공표했다. 탈레반 문화위원화 아마둘라 와시크 부대표는 "여성에게 스포츠는 부적절하고 불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당초 "여성 인권을 존중하겠다"는 발표와 달리 이슬람 율법을 강조하며 여성의 활동을 제한하는 것이다. 탈레반은 앞서 새로운 교육 규정을 통해 여대생들이 니캅, 아바야 등을 착용해 눈을 제외한 전신을 가리도록 했다. 또 여학생들은 여성 교원에게서만 수업을 받도록 하고, 여성 교원 확보가 어려우면 교단에 섰던 경력이 있는 노인 남성으로 대체하도록 했다.
 
탈레반이 공언한 여성 인권 존중이 공수표로 드러난 가운데 전날 발표한 과도정부 인선에선 범죄자들이 대거 이름을 올렸다. 
 
미국 FBI가 현상금 1000만 달러를 걸고 수배해온 시라주딘 하카니의 경우 내무장관에 지명됐다. 테러조직으로 지정된 하카니 네트워크 수장으로 지난 2008년 카불 호텔 테러를 주도하고, 같은 해 아프간 대통령 암살 시도에도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시라주딘의 삼촌이자 FBI가 500만 달러의 현상금을 붙인 칼릴 하카니도 난민·송환장관에, 탈레반 창설자 모하마드 오마르의 아들 물라 모하마드 야쿠브는 국방부 장관에 지명됐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이 7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기자회견 하며 새 정부 구성원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특히 탈레반은 내각 인선 발표 과정에서 여성 정책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슬람 율법의 틀 안에서 모든 국민들에게 교육을 보장하겠다고만 했다. 프라밀라 패튼 유엔 여성기구 총장 대행은 "아프간 여성과 소녀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존중한다는 탈레반의 약속과 정면 배치되는 이같은 전개에 실망과 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탈레반은 여성 정책에 대해 항의하는 여성 시위대를 향해 채찍과 몽둥이를 휘두르며 무력으로 진압했다. 과거와 달라지지 않은 탈레반의 행보에 미국은 탈레반이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아프간 사태를 논의하기 위한 20개국 회의를 주도한 후 기자회견에서 "탈레반이 정당성을 인정받고 국제적 지원을 원하지만, 고립을 피할 신호가 보이지 않는다"며 "탈레반은 국제적 정당성을 추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악관도 탈레반 정부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 행정부의 누구도, 대통령이나 국가안보팀의 누구도 탈레반이 세계에서 존경받고 가치 있는 구성원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3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여성들이 탈레반 정권하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모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권새나 기자 inn1374@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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