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하락에 '전전긍긍'…상장사 자금 조달 ‘골머리’

길어지는 하락장에 CB발행 철회·발행전 전환가액 조정 속출
"증시 조정 길어지면 상장사들 자금 조달에 차질 생길 것"

입력 : 2021-10-12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박준형 기자] 최근 국내증시가 본격적인 조정 국면에 접어들면서 상장사들의 자금조달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본격적인 증시 조정 국면이 오기 전에 자금 조달을 결정한 회사들이 전환사채(CB)를 통한 자금 조달을 취소하거나, 목표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CB 발행 물량을 조절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증시 조정 국면이 길어질 경우 상장사의 자금 조달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증시 흐름에 업계의 촉각이 곤두서 있다.  
 
1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증시가 본격적인 조정 국면에 들어선 지난 추석 연휴 이후 CB 발행 결정을 철회하거나 규모를 줄이는 상장사들이 나타나고 있다. 추석연휴가 끝나고 지난달 23일부터 이날까지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는 각각 5.87%, 8.89% 하락했다. 
 
표/뉴스토마토
 
코스피 상장사 우진(105840)은 지난 7일 100억원 규모의 제4회차 CB발행결정을 철회했다. 지난달 30일 CB발행을 결정한 지 단 4거래일만이다. 우진이 CB발행을 철회한 것은 최근 급격한 주가하락 때문이다. 앞서 우진은 신규사업 투자를 목적으로 타법인취득을 위한 자금 100억원을 CB발행으로 조달할 계획이었다.
 
우진이 CB발행 결정 이사회를 진행한 지난 30일 전일 우진의 종가는 1만150원이었다. 우진은 CB발행에서 최근일의 가중산술평가를 적용 CB의 전환가액을 1만124원으로 결정했다. 전환가액에 따라 결정된 4회차 CB(100억원)의 최종 주식전환 가능 수량은 98만7751주였다.
 
그러나 최근 국내증시 낙폭이 커지면서 우진의 주가가 크게 하락했고, 계획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선 CB발행 전부터 CB전환가액을 낮추는 ‘리픽싱’부터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이날 종가 기준 우진의 주가는 7710원으로 CB 전환가액보다 23.8% 낮다.
 
결국 우진은 CB발행 결정을 철회했다. 우진 측은 “이미 350억원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어 투자계획에 무리가 없다”고 밝혔지만, CB 투자자 유치를 위해 전환가액을 낮추거나 자금조달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우진의 경우 공시 번복을 했기 때문에 불성실공시위반 사항이 생긴 것은 맞다"면서 "오늘(8일) 회사측으로부터 관련 자료를 받고 현재 내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우진 외에도 다수의 상장사들이 CB 발행에 에로를 겪고 있는 상황이다. 코스닥 상장사인 HB솔루션(297890)은 1회차 CB 발행 규모를 기존 500억원에서 400억원으로 100억원 줄였다. 
 
HB솔루션은 CB발행을 동해 조달한 자금 500억원 중 시설자금으로 200억원, 운영자금으로 200억원, 기타자금으로 100억원을 활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발행 규모를 줄이면서 계획됐던 운영자금 비용을 20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낮췄다.
 
HB솔루션이 CB발행 규모를 줄인 것도 증시 급락의 영향이 크다. HB솔루션이 최초 CB발행을 결정한 지난달 16일 전일 HB솔루션의 종가는 2만6850원으로 HB솔루션의 1회차 CB 전환가액은 2만6525원으로 결정됐었다. 그러나 최근 주가 급락이 이어지면서 HB솔루션의 주가는 2만250원(8일 종가)까지 떨어졌다. CB발행가액이 HB솔루션의 현 주가 대비 25.6%나 낮아진 것이다.
 
이에 회사 측은 전환가액을 낮추면서 CB발행 규모를 줄이기로 했다. 계획했던 금액보다 적은 금액의 자금을 조달하는 대신 전환가액 하락으로 발행 주식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것을 막은 것이다. HB솔루션의 정정된 전환가액은 2만661원으로 500억원 규모의 CB를 그대로 발행할 경우 발행주식 수량은 총 242만주에 달한다. 이는 HB솔루션 총발행주식의 14.5%에 달하는 수량이다.
 
이밖에 에이트원(230980), 얍엑스(060230), 엔투텍(227950) 등은 전환주식 수량 확대에 따른 주식가치 하락을 감수하고 CB발행 전에 전환가를 낮췄다. 에이트원은 80억원 규모 9회차 CB의 전환가액을 1811원에서 1417원으로 21.8% 낮췄으며, 얍엑스(20회차, 200억)와 엔투텍(16회차, 100억)는 CB전환가액을 각각 19.4%, 4.0% 낮췄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조정기간이 길어질 경우 유상증자나 CB 발행 등을 취소하는 기업들이 더욱 늘어날 수 있다”며 “기업 입장에선 자금조달이 더욱  힘들어 질 것이고 낮은 가격에 발행하는 CB나 유증이 늘어날 경우 기존 투자자들의 주식가치 희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준형 기자 dodwo9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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