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사과는 용서의 조건이 아니다

입력 : 2021-11-05 오전 6:00:00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국가장이 치러졌다. 한편으로는 놀랍고 한편으로는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결정이다. 전직 대통령은 틀림없지만 12.12, 5.18 쿠데타 및 광주항쟁 진압의 주역이라는 점 역시 사실이다. 대통령이 되어서 북방외교, 남북기본합의서 체결 등 많은 업적을 쌓았지만 전두환과 함께 법정에서 군사반란으로 재판을 받아 징역을 살았다. 과거의 과오가 너무 커서 국가장으로 예우할 만큼 현저한 공훈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만일 5년전, 10년전이었다면 노태우 전대통령에 대한 국가장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국가장은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 서거(逝去)한 경우에 치르는 국가 최고의 장례다. 대상은 전직·현직 대통령, 대통령당선인,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다. 2017년 제정된 '국가장법'에서 이를 규정하고 있다. 이전에는 국장과 국민장으로 나뉘어져 있었으나 하나로 통일되었다.
 
국가장의 무게만큼 노태우 전 대통령 국가장 예우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여러 논의가 있었지만 핵심은 과연 본인이 광주항쟁 진압에 직접 사과했는가 하는 점이었다. 여러 면에서 전두환과 비교되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이번에도 비교되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가족들은 광주항쟁 진압에 사과를 했지만 본인은 사과를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전두환 만큼 광주항쟁 진압에 뻔뻔한 태도를 취한 적은 없었다. 사과를 생각하기도 전에 병마에 시달려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 건강했다면 사과를 했을 것이라고 제법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상황이었다. 국가장을 결정한 정부는 이점을 눈여겨 봤을 것이다. 
 
이번 국가장을 둘러싼 논란 중의 하나는 본인의 사과가 있어야만 국가장을 할 수 있는가? 즉 사과가 있어야만 용서를 할 수 있는가의 문제였다. 참으로 어려운 철학적 주제다. 있을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생각해보면 '직접 사과 – 용서', '간접 사과 – 용서', '사과 없음 – 용서'라는 3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경우의 수를 헤아려 보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용서는 할 수 있다. 용서는 그 자체로 숭고한 행위다. 용서는 가해자의 사과가 있든 없든 언제든지 피해자가 선택할 수 있는 용기 있는 행위다. 가해자의 사과가 있으면 좋겠지만 가해자의 사과가 없어도 용서의 가치가 사라지지 않는다.
 
명심해야 할 것 중의 하나는 가해자의 사과를 강요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가해자의 사과를 강요하면 가해자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된다. 가해자는 이미 재판을 거쳐 형벌을 받았다. 법률적으로 받아야 할 처벌은 모두 받았다. 가해자가 진심어린 사과를 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해자 개인의 몫이다. 이를 외부에서 강제할 수는 없다. 
 
피해자의 용서 역시 누구도 강요할 수 없다. 용서는 거래의 대상도 될 수 없다. 가해자가 사과를 했더라도 용서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가해자가 사과를 하지 않았더라도 용서할 수 있다. 용서는 피해자가 자신의 상처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인간선언이며 가해자에게도 기회를 주는 관용의 표시다. 가해와 피해, 복수의 악순환을 끊는 일생의 결단이다. 주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피해자가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고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사과와 용서는 조건과 결과의 관계가 아니다. 누구든지 용기 있는 사람이 먼저 선택하면 된다. 먼저 선택하는 사람의 용기가 자신과 상대방을 바꾼다.
 
그렇지만 용서는 사과가 있다면 훨씬 빛나고 사과 역시 용서를 통하여 완성된다. 용서와 사과가 함께 있다면 용서와 사과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용서와 사과의 가치, 화해의 가치를 널리 알려지게 한다. 아직 사과하고 용서하지 못한 사람들, 화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생각의 기회를 주고 용기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용서와 사과는 많을수록 좋다. 사람은 살면서 실수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기 마련이다. 이 모든 것은 끝까지 응징할 수는 없다. 최근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용서와 사과의 가치가 필요한 때다. 이번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국가장은 용서의 가치를 다시 부각시킨다. 어쩌면 한국이 군부쿠데타와 광주학살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를 성취했다는 선언일지도 모른다. 물론 직접 피해를 입은 분들의 용서는 여전히 남았지만 말이다.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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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