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유라 기자]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가 반도체 공급망 자료를 미국에 제출하면서 한숨 돌리게 됐다. 하지만 반도체 패권 전쟁이 심화하고 있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국내 기업들의 눈치보기가 지속될 것으로 우려된다.
9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상무부에 반도체 공급망 자료를 제출했다. 당초 자료 제출 기한은 미국 시간 기준 8일 자정으로, 한국 시간으로는 9일 오후 2시까지였다.
이날 오전 양사는 미국의 요구에 응해 자료를 제출했지만 고객사 관련 민감한 정보는 제외하고 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반도체 기업 상대 자료 제출 요구에 67곳 이상이 응답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월24일 백악관 다이닝룸에서 반도체 칩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내 기업 외에도 대만 TSMC와 UMC, 미국 마이크론, 일본 키옥시아, 이스라엘 타워세미컨덕터 등도 영업비밀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TSMC는 자료 제출을 놓고 여러 차례 입장을 번복하다가 결국 고객사 핵심 정보는 빼고 내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일단 글로벌 기업들이 반도체 정보를 제출하면서 급한 불은 껐다. 애초에 미국은 반도체 수급난 장기화에 따른 공급망 조사를 목적으로 자료 제출을 요구했던 만큼 당분간은 정보를 파악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미국의 압박도 다소 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미국이 추가로 압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업들이 민감한 정보를 제외하고 제출한 만큼 자료가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 추가로 요구할 수도 있다. 특히 앞서 미 상무부는 기업들이 자료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국방물자생산법(DPA)를 동원할 수 있다고 경고했기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DPA는 한국전쟁 시절 군수 물자 생산을 위해 마련한 법으로, 비상 상황시 기업에 물품 생산을 강제화할 수 있다.
SK하이닉스 M16 전경. 사진/SK하이닉스
이번 사안을 계기로 글로벌 반도체 패권 전쟁이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에선 자국내 반도체 생산 확대를 유도하기 위해 반도체 제조에 520억달러를 지원하는 방안이 지난 6월 상원에서 처리돼 하원 통과만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 일본은 자국내 반도체 공장 건설 조건으로 보조금을 주는 법안을 마련하다는 계획이다. 첫 지원 대상 기업은 지난달 구마모토현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한다고 밝힌 TSMC가 될 공산이 크다. TSMC는 일본에 22~28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 반도체를 생산하는 공장을 세울 계획으로 오는 2024년부터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국내 기업 입장에선 중국의 눈치도 봐야 한다. 중국이 이번 사안을 가지고 문제 삼거나, 중국내 투자를 확대하라고 요구할 경우에는 국내 기업들의 입장도 난처해진다. 실제로 반도체 기업이 미국에 자료 제출을 요구한 것에 대해 중국 관영 매체는 중국과 미국 및 세계 반도체 산업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8일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중국 전문가를 인용해 "정보 요청은 미국이 골칫거리인 중국을 겨냥해 내놓은 것"이라며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자료를 제출하면서 미국이 자료를 정리하고 향후 후속조치를 마련할 때까지의 시간을 벌었다"면서도 "다만 우려되는 것은 미국이 이 자료를 패권전쟁에 활용하거나, 좀 더 민감한 자료를 내라고 압박할 수도 있기에 아직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유라 기자 cyoora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