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유라 기자] "당장 제조시설을 짓기 시작한다고 해도 반도체 공급난을 해소하는데 최소 3년이 걸린다.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인프라 구축과 제조시설 운영 인허가, 규제완화, 기업 투자에 대한 세제 지원 등이 필요하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15일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국내 반도체 산업 발전을 위해 반도체 제조시설 신·증설 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산업 특성상 제조시설 투자를 통해 시장 판도 변화에 적기 대응해야 하는데, 사안별로 지원에 대한 판단이 다르고, 규모도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또 산업단지를 조성할 때 까다로운 인허가 절차와 규제로 시간이 소요돼 업체들이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다.
가격 하락이 우려되는 메모리 반도체에 대해서는 다운사이클이 조기에 끝나고 곧 다시 반등할 것으로 전망했다. 근거로 수요처 다변화와 초미세화 공정을 들었다.
안 전무는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000660)) 반도체연구소와 카이스트 나노종합기술원 등을 거치며 다양한 경험을 두루 갖춘 반도체 전문가로, 현재는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서 전무로 일하고 있다. 다음은 안기현 전무와의 일문일답.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 사진/안기현 전무
반도체 공급난이 해소될 걸로 예상되는 시점은.
반도체 부족 현상은 반도체 제조시설 부족으로 촉발된 문제다. 이번 사태의 가장 큰 문제는 공급망 불안정으로 기업의 불확실성을 가중시킨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물류 이동이 늦어지고 공장 가동이 중단된 곳도 있었다. 글로벌 공급망의 병목현상이 전 산업에 연쇄적인 영향을 미쳤다.
큰 타격을 입은 자동차는 공정 특성상 부품 하나만 부족해도 해당 차량 생산이 불가능하다. 어떤 것은 부품이 부족하고 다른 것은 남아도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심지어 최근엔 원재료 가격 상승, 전력난, 물류대란 등 통제 불가능한 대외 리스크도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기업이 제품을 정상적으로 생산한다고 해도 물류대란으로 운송에 상당한 시일이 걸리는 실정이다.
공급난을 해소하려면 제조시설 신·증축 통해 생산량을 늘리는 방법밖에 없다. 대만 TSMC, 인텔 등이 반도체 공장 건설을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공장을 건설하고 제품 양산까지 3년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급망이 안정화하는 데 최소 3년이 걸릴 것이라고 본다.
반도체 시장 흐름이 급변하고 있는데 향후 전망은.
올 4분기부터 D램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메모리 반도체 다운사이클이 시작됐다. 가격이 하락하고 있지만 그 추세는 매우 안정적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수요가 PC용 제품에 한정되면서 사이클 등락이 심했었다. 지금은 사이클의 주기가 과거에 비해 단축되고 진폭도 크지 않다. 반도체가 PC뿐 아니라 스마트폰, 가전, 자동차 등에 다양하게 쓰이기 때문이다. 더이상 사이클에 대해 논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 다운사이클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반등할 것이다.
시스템 반도체는 인공지능 등 미래 첨단 산업에 사용되는 고성능 반도체 수요가 증가하고 있어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 변화에 발맞춰
삼성전자(005930)와 대만 TSMC는 각각 3나노미터(㎚) 반도체 양산을 목표로 초미세 공정 경쟁을 하고 있다. 양사의 계획대로 3나노 반도체 양산에 성공하면 시장 규모는 더욱 커질 것이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누가 더 빨리 3나노 미세 공정을 구현하느냐가 관건이라 본다.
사진/안기현 전무
국가간 반도체 공급망 확보 경쟁이 치열한데, 그 배경은 무엇이라고 보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올 1월부터 차량용 반도체가 부족해지면서 자동차 공장이 멈추는 일이 벌어졌다. 따라서 자동차를 생산하는 국가를 중심으로 차량용 반도체 확보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 된 것이다. 자동차 생산이 중단되면 자동차 산업 생태계가 붕괴되는 것은 물론 국가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각국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공급난은 스마트폰, PC까지 확산돼 생산량 감축이 불가피해졌다. 이렇다 보니 반도체 확보는 자동차 외에도 스마트폰, PC 시장 성장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 됐다.
다행히 한국은 반도체 공급국이지만, 수요국인 일본, 유럽, 미국 등은 반도체 부족 사태로 직격탄을 맞았다. 미국, 일본 등이 자국에 반도체 제조시설을 세우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도 향후 자국 완성차 기업에 반도체를 우선 공급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점을 미루어 보아, 미중간 반도체 패권 전쟁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 기업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생각이 든다. 미국은 제조시설이 필요하고, 중국은 반도체 제품이 필요하기에 우리 기업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우리는 반도체 공급망이 안정화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 속 우리나라 정부의 역할은.
미국 정부가 글로벌 반도체 업체에 영업비밀을 제출하라고 요구했고 이에 정부의 외교적 역할이 있어야 한다는 산업계의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공적인 영역이 아니다. 기업이 개별적으로 판단할 일이기 때문에 정부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이었다고 본다. 일단 기업의 판단에 맡겨 놓은 것이 바람직했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정부는 반도체 등 핵심전략산업지원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인력양성, 산업단지조성, 인프라지원, 규제완화 등과 관련된 내용을 정부에 전달했다. .
우선 반도체 산업 발전을 위해 전문 인력 양성이 매우 중요한 만큼 대학이 관련 학과의 정원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외에도 다양한 인력양성사업을 추진해 산업성장에 필요한 것 이상으로 인력이 양성돼야 한다. 인재를 확보한 것이 글로벌 반도체 전쟁 속에서 경쟁력을 키우는 데 발판이 된다.
반도체 산업단지 적기 가동을 위해 각종 인허가의 신속한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산업단지 조성에 대한 권한이 각 지방정부에 다양하게 분산이 돼 있다. 반도체 수요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선 인허가를 통합적으로 추진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제안하면 중앙정부 주도로 산업단지 인허가를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현재 반도체 제조시설 구축을 위한 용수, 전기 등 기반시설에 대한 지원 여부가 사안별로 다르다. 정부의 지원 없이 기업이 모두 부담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인프라이기 때문에 공적인 영역이고 공적인 영역은 정부가 부담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고 본다. 공장 운영에 대한 환경 관련 규제가 완화되면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끝으로 앞으로 협회의 계획은.
글로벌 공급망 불안정, 업체간 기술경쟁 등으로 반도체 산업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협회는 대외 경제 리스크가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회원사들이 경영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최유라 기자 cyoora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