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부인 김건희씨는 블랙홀 같다. 모든 이슈를 빨아들여 버리는 존재이기도 하고, 뜨거운 감자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불붙은 화약덩어리처럼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하여간 국민의 힘 입장에서는 존재 자체가 상당히 부담스러우면서도 마냥 모른 척 할 수만은 없기에 까다롭고 위험한, 한마디로 견적도 나오지 않는 그런 상태가 아닐까 싶다.
대통령의 배우자가 여자인 경우 ‘영부인’이라고 불리며 활동기간은 대통령의 임기와 동일하다. 법에 명시된 권한이나 요구되는 임무는 없으나 통상적으로 대통령의 해외 순방시 동행하거나 국내외 귀빈 방문시 접견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에 따라서는 복지·교육·문화 등의 분야에서 대외 활동을 하기도 한다. 따라서 법적 권한이나 의무 유무와는 무관하게 국격에 있어 매우 중요한 존재임은 분명하다.
우리나라 초대 영부인은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프란체스카 도너 여사(1900년 6월15일 ~ 1992년 3월19일)다. 그녀는 오스트리아 출신이었고 향년 91세로 생을 마감했으며 1948년부터 1960년까지 총 3대에 걸쳐 대통령 부인직을 수행했다.
4대 대통령 윤보선의 부인은 공덕귀 여사였는데, 1960년 8월13일부터 1962년 3월23일까지 약 1년 반 정도 짧은 기간 영부인 직에 있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았었다.
5대부터 8대까지 즉, 1963년 12월17일부터 1974년 8월15일까지 영부인을 맡았던 사람은 육영수 여사였다. 대중적 관심을 가장 많이 받았었던 그녀는 안타깝게 1974년에 피살되었고 그 자리를 장녀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행하기도 했었다.
2012년 대선 때 미국 국민들은 대선 후보들 보다 ‘퍼스트레이디’ 후보들에게 더 호감을 갖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 워싱턴포스트(WP)와 ABC방송이 4월 25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셸 여사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응답은 69%나 되었고 남편인 오바마 보다 13%나 호감도가 높았다고 한다. 그만큼 영부인이 가지는 상징성이나 대중에게 어필하는 정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4대 대통령을 뽑는 1992년에는 응답자의 절 반 가량이 "대통령 후보 부인에 대한 호감도가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었는데(한국갤럽 조사), 2002년 16대 대선 때는 대선후보 배우자의 이미지와 인상이 지지 후보를 결정하는 데 중요하다고 답한 응답자가 60.3%였다는 것이고(한국갤럽 조사), 전문가들에 따르면 아마도 2021년 12월 현재는 70% 이상이 그렇다고 응답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윤석열 국민의 힘 대선후보는 ‘영부인이라는 말은 쓰지 말자. 처음부터 등판계획은 없었다.’, “대통령 부인은 그냥 대통령의 가족에 불과하다. 대통령 부인에 대한 법 바깥의 지위를 관행화시키는 것은 맞지 않는다”며 갑작스럽게 제2부속실(대통령 부인에 대한 의전을 관리하는 부속실) 폐지를 주장했다.
또한 “외교 등에서 상대국 정상을 부부 동반으로 만날 경우 국제 프로토콜(외교 의전)에 맞게 해야 할 일은 청와대 비서실에서 지원해주면 되고 가족들 경호도 (경호실이) 하는 것이니 제2부속실이 필요 없다”고 설명하면서 사실상 부인 김씨를 ‘영부인’으로 처신하게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하지만 윤 후보의 이와 같은 발언이 처음부터 그의 소신이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그는, 지난 7일에만 해도 “때가 되면 등장할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김씨가 곧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본인과 함께 투 트랙으로 선거운동을 할 것이라고 말한 바가 있다.
김씨를 둘러싼 각종 논란이 터졌을 때도 굳이 사과를 미루면서 ‘진위관계를 확인하겠다. 열심히 살아왔다, 그럴 사람 아니다’라는 식으로 두둔해왔으며, 김건희씨의 학력 및 경력 허위 논란에 대해 조수진 공보단장의 입을 빌어 “후보가 서운해 한다. 같은 당 의원들이 왜 도와주지 않느냐”, 특히 교수 출신 의원들이 “김건희씨와 같은 시간강사는 엄격한 검증 없이도 임용 가능하다”는 성명을 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이상은 지쳤다는 뜻일까. 더 이상은 중과부적이라는 뜻일까. 김씨가 남편 윤석열을 도와 후보의 부인으로서 선거에서 어떤 공식적이거나 대외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쉬워 보이지 않는다. 이준석 국민의 힘 당대표가 선거에서 손을 떼겠다고 폭탄선언을 하게 된 계기 역시 '김건희 리스크'를 관리하는 방식에 대해 내부 견해차가 존재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고, 수많은 국민의 힘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윤 후보의 이와 같은 발언의 의미나 김씨의 역할론에 대해 속 시원히 답해주는 사람은 없다.
계륵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 영부인 후보 김씨. 어느새 '홍길동'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참으로 안타깝고 안타까운 상황이다.
노영희 법무법인 '강남'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