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교원이 불특정 다수 학생에게 불쾌한 신체접촉과 발언을 했다면 해고 통지서에 개별 사유를 일일이 적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해고 통지는 유효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A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 재심 판정 취소 청구를 인용한 원심을 깨고, 다시 판단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에 되돌려보냈다고 25일 밝혔다.
재판부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복수의 행위가 존재하고 해고 대상자가 그와 같은 행위 자체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경우에도 해고 사유의 서면 통지 과정에서 개개의 행위를 모두 구체적으로 특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원심은 통지서에 해고 사유가 구체적으로 기재돼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원고가 이미 구체적인 해고 사유를 알고 있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경우도 아니었다고 판단한 바, 원심의 판단에는 근로기준법 27조 1항의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파기환송 이유를 설명했다.
기간제 교원 A씨는 지난 2015년부터 B 법인 소속 여중고에서 해마다 근로계약을 갱신했다. 예정된 계약 기간은 2019년 2월까지였다.
하지만 2018년 6월 A씨가 담임을 맡은 2학년 학생들과 일부 학부모가 꼬집기 등 과도한 신체 접촉과 언어폭력 문제를 제기했다. 교장은 A씨에게 사직과 계약해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했다. A씨는 사직서를 냈다.
이후 A씨 반 학생 35명 중 32명이 담임 교체를 원치 않는다고 탄원서를 냈다. A씨는 사직 의사를 철회하고 사직서를 돌려받았다.
법인은 그해 8월 A씨 관련 전수조사를 결정하고 조사 결과와 상관 없이 A씨 근로계약을 해지하기로 했다. 설문조사 결과 1~2학년 303명 중 42명이 A씨 신체접촉이나 발언으로 불쾌감이나 수치심을 느꼈다고 응답했다. 일부 학생은 "계단 밑에서 '치마 안이 다 보인다'고 말했다", "배구를 가르치며 백허그 하듯 팔을 잡았다"고 답했다.
설문 다음날 법인은 "담당 학생들에 대한 부적절한 신체접촉 및 발언으로 다수 학생들이 불쾌감이나 수치심을 느꼈다고 진술하고 있다"며 A씨에게 해고를 통지했다. 해고 이후 1학년 상대로 진행한 설문에서는 "여자는 바지를 입으면 뚱뚱해진다고 발언해 기분 나빴다"는 등의 답변이 나왔다.
이에 A씨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 해고 구제 신청을 했다. 그해 11월 노동위는 절차상 하자가 없다며 A씨의 구제 신청을 기각했다.
A씨는 이듬해 1월 중앙노동위원회에 낸 재심도 기각되자 서울행정법원에 소를 제기했다.
A씨는 충분한 소명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법인이 해고 사유를 구체적으로 기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가끔 학생을 꼬집거나 손목을 잡고 데려가곤 했지만 교육과 생활지도 중 있던 일이라 성희롱이나 성추행이 아니라고 했다. 해고 전 법인의 무기명 설문조사도 해고를 결정한 뒤 형식적으로 시행했을 뿐이라는 주장도 폈다.
1심은 A씨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학교가 A씨에게 소명 기회를 줬지만 해고 통지서에 징계 사유를 적법하게 축약하지 않았다고 봤다. 1심 재판부는 "징계사유인 '원고가 학생들을 꼬집은 행위 및 손목을 잡은 행위, 원고의 학생들에 대한 '살이 쪘다', ''아줌마·할머니 같다 등과 비슷한 단어'를 사용한 발언'은 모두 원고가 학생들로부터 6월1일자 학급회의 결과를 듣는 과정에서 자신이 들은 말을 진술서에 기재한 것"이라며 "그 자체로 원고가 그 같은 언행을 한 날짜·장소, 행위 대상이 된 학생이 특정돼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어 "원고로서는 이에 대한 막연한 반박 외에는 의견 진술이나 소명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며 "해고의 징계사유는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아 원고의 방어권 행사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했다고 할 것이므로 위법하다"고 했다.
2심 역시 해고 사유가 구체적이지 않다며 중앙노동위의 항소를 기각했다. 이에 노동위가 상고했다.
대법원 청사. 사진/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