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해임에 200억?…'엔지켐생명과학' 경영권 방어 정관변경 꼼수

31일 주총 안건에 황당한 경영권 방어 항목 상정…최대주주 경영권 행사 원천 차단
대표 해임땐 200억·이사 해임엔 100억 보상금…이사 해임 시 의결권 80% 이상
정관변경 배경은 무리한 자금조달…유증 나서면서 경영진은 신주권 매각

입력 : 2022-03-22 오후 4:49:19
[뉴스토마토 박준형 기자] 대규모 유상증자의 흥행 실패로 최대주주가 변경된 엔지켐생명과학(183490)이 기존 최대주주와 이사진들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꼼수를 부렸다. 이번 주주총회에서 이사의 선임과 해임에 과도하게 많은 의결권을 요구하고, 이사 해임 시 수백억원의 퇴직보상금을 지급하게 하는 등의 안건을 추가했다. 이사 선임 등에 관한 정관을 변경해 새로 최대주주가 된 KB증권의 경영권 행사를 원천 차단하겠단 계획이다.
 
2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엔지켐생명과학은 오는 31일 진행되는 정기주주총회에서 주주총회 결의 방법과 이사의 수, 퇴직보상금 지급과 관련한 정관변경을 의안으로 제출했다. 정관변경 안건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기존 경영진들이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특권이 다수 부여된다.
 
소액주주 뒷전 경영권만 지키려는 '엔지켐'
 
(표=뉴스토마토)
새로 최대주주가 된 KB증권을 견제하고 기존 경영진의 경영권을 확고히 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KB증권은 올해 최대주주가 되면서 이번 주총에선 의결권조차 없는 상황이라 소액주주들의 참여가 부족할 경우 안건들이 가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주총에서 정관변경 안건이 가결된다면, KB증권은 최대주주임에도 이사 한명조차 선임하기 힘들어질 전망이다.
 
먼저 기존이사의 해임이나 새로운 이사 선임을 위한 주주총회 결의 방법에 새로운 조항이 추가됐다.
 
주주총회에 의한 이사 해임이나 선임 시 기존의 이사회에서 적대적 M&A에 의한 이사의 해임이나 선임이라고 결의하는 경우 주주총회 결의를 출석한 주주의 의결권의 80% 이상으로 하고, 발행주식총수의 75% 이상으로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12월 기준 엔지켐생명과학의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은 18.78%다. 이는 결국 이사회가 적대적 M&A라 판단할 경우 이사의 해임이나 선임을 위한 임시 주총 결의조차 막겠다는 의미다.
 
다음으로 이사의 최대 인원을 기존 9명에서 7명으로 축소하는 안건을 내놨다. 이는 새로 선임될 것으로 예상되는 KB증권 측의 이사진이 과반을 넘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엔지켐생명과학은 이번 주총에서 김혜경 이사(기존최대주주인 브리짓라이프사이언스의 대표)와 홍창기 이사를 재선임하고, 류병채, 김태훈 이사를 신규 선임하는 안건을 제안했다.
 
엔지켐생명과학은 이사진의 최대 인원수를 7명으로 줄임으로써 나머지 이사진이 KB증권 측 인물로 채워지더라도 기존 경영진들이 과반을 차지할 수 있도록 만들 계획이다.
 
혹시라도 손기영 대표 등 기존 경영진들이 해임될 경우를 대비해 M&A 비용을 높여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황금낙하산’ 조항도 강화했다. 황금낙하산은 대주주 지분율이 낮아 경영권 방어에 취약한 기업들이 이사진이 해임될 경우 거액의 퇴직보상금을 받도록해 M&A비용을 높이는 방법이다.
 
기존 정관은 대표이사가 적대적 M&A로 해임될 경우 통상 퇴직금 외에 50억원의 퇴직보상금을 받도록 했었다. 그러나 이번 정관변경을 통해 대표이사 및 사내이사가 적대적 M&A로 해임될 경우 퇴직금 이외에 퇴직보상금으로 대표이사에게 200억원, 사내이사에게 100억원을 지급하도록 정관을 변경할 계획이다.
 
결국, 경영권을 지키지 못할 경우 퇴직금이라도 두둑이 챙기겠다는 심산으로 회사의 발전이나 소액주주들 보호보다는 기존경영진의 경영권 방어에만 집중한 셈이다.
 
엔지켐 정관변경 배경은 무리한 자금조달
 
엔지켐생명과학의 이 같은 정관변경 안건을 제출한 배경에는 이번에 진행한 대규모 유증이 있다. 앞서 엔지켐생명과학은 주당 3만1800원에 1685억원을 조달하는 대규모 유상증자를 진행했다. 발행되는 신주만 530만주로 기존 발행주식총수의 60.85%에 달했다. 당시 엔지켐생명과학 주식 대부분은 소액주주들이 보유하고 있었다. 손기영 대표와 브리지라이프사이언스를 제외한 지분 5% 이상 보유 주주가 없는 상황이라 지분율을 위협할 만한 주주가 없었다. 이에 손 대표와 특수관계인들은 유증 참여 대신 신주인수권 대부분을 처분하면서 현금을 확보했다.
 
그러나, 유상증자를 앞두고 엔지켐생명과학의 주가가 급락하면서 381만주에 가까운 대규모 실권주가 발생했고 실권주는 모두 유증 대표주선인인 KB증권이 인수하게 됐다. KB증권은 엔지켐생명과학 지분 27.97%를 확보해 최대주주가 됐고, 브리지라이브사이언스와 손 대표 증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은 12.31%로 쪼그라들었다.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낮아지면서 적대적 M&A나 경영진 변동의 위험성이 커지게 된 것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엔지켐생명과학의 수익성이 본격화되지 못한 상황에서 자본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이 이어지면서 최대주주들의 지분율이 낮아졌다”며 “이번 유증에서 대규모 실권주가 발생하면서 최대주주가 바뀌자 기존 경영진들이 경영권에 위협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엔지켐생명과학의 정관변경과 관련해 뉴스토마토는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질 않았다.
 
한편, 엔지켐생명과학 주주들은 오는 30일까지 삼성증권 온라인 주총장에서 엔지켐생명과학 23기 정기 주총의 의결권 행사가 가능하다.
 
박준형 기자 dodwo9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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