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켐생명과학, 대표 배불리는 정관변경에 주주 위임장 확보 혈안

의결권 대리 행사 권유 업체 고용…거액의 임원 해임 보상금 안건 동의 권유
주주 반응은 싸늘…"대표 퇴직금 확대는 경영진의 밥그릇 챙기기" 비판

입력 : 2022-03-29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박준형 기자] 엔지켐생명과학(183490)이 오는 31일 진행될 주주총회를 앞두고 소액주주들의 위임장 확보에 나섰다. 엔지켐생명과학은 이번 주총에서 대표이사의 해임 시 거액의 퇴직금을 지급하는 ‘황금낙하산’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데, 소액주주들이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에 나서자 안건이 부결될 수 있다는 우려감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엔지켐생명과학은 지난 16일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 업체를 씨씨케이로 결정한 이후 지난주(3월20일)부터 소액주주들을 찾아가 주주총회 안건 동의를 위한 위임장 권유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보유 수량이 많은 주주에게는 반복적으로 찾아가 위임장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표=뉴스토마토)
한 엔지켐생명과학 주주는 “엔지켐생명과학의 이번 주주총회 공고에서 ‘황금낙하산’ 도입 등이 논란이 되면서 엔지켐생명과학 직원이라는 사람이 방문해 위임장을 요구했다”며 “주주총회 안건 전부를 동의해 달라는데, 거부했더니 다음에 다시 찾아오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엔지켐생명과학이 주주들에게 위임장을 받고 다니고 있는 것은 이번 주총 안건에 올라온 정관변경 안건을 가결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앞서 엔지켐생명과학은 최근 유상증자에 실패하면서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존 발행주식총수의 60.85%(530만주)에 달하는 대규모 유증에서 대량의 실권주가 발생했고, 유증 인수인으로 참여한 KB증권이 실권주를 모두 인수하면서 최대주주가 변경됐다. KB증권이 보유 지분을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 등으로 처분할 경우 적대적 M&A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적대적 M&A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기존 최대주주와 이사진들은 경영권 방어를 위한 꼼수를 부렸다. 주총에서 정관변경을 통해 이사의 선임과 해임에 과도하게 많은 의결권을 요구하고, 이사 해임 시 수백억원의 퇴직보상금을 지급하게 하는 ‘황금낙하산’ 도입 등을 안건으로 추가했다. 새로 최대주주가 된 KB증권의 경영권 행사를 차단하고, 회사의 경영권을 유지하겠다는 의도다.
 
새로 최대주주가 된 KB증권은 올해 최대주주가 되면서 이번 주총에선 의결권조차 없어 소액주주들의 참여가 부족할 경우 안건들이 가결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엔지켐생명과학의 정관변경 공시 이후 소액주주들의 격렬한 반발에 휩싸였다. 소액주주들이 SNS 등을 통해 전자투표를 통한 반대표 행사를 권유하고 나선 것이다.
 
소액주주들이 뭉치면서 엔지켐생명과학의 정관변경 안건 부결 가능성도 커졌다. 정관변경의 경우 특별결의에 의한 승인이 필요한데, 보통결의보다 많은 의결권이 요구된다. 보통결의 경우 출석한 주주의 과반 이상, 발행주식총수의 4분의 1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특별결의는 출석한 주주의 3분의 2 이상, 발행주식의 3분의 1 이상이 충족돼야한다.
 
지난해 말 기준 손기영 대표 등 엔지켐생명과학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은 18.74%다. 특별결의 승인을 위해선 14.6% 지분이 추가로 필요한 셈이다. 작년 말 소액주주들의 지분율은 76.32%에 달한다. 소액주주들의 동의를 최대한 얻어야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자본조달을 위해 주주들을 대상으로 유증을 진행하면서 정작 최대주주 등은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사의 발전이나 주주보호보단 경영권 방어에만 관심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엔지켐생명과학 주주는 “엔지켐생명과학이 KB증권으로부터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해 정관변경을 추진한다는데 경영진들의 제 밥그릇 챙기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유증을 추진할 때는 보고만 있다가 이제 와서 적대적 M&A가 예상돼 퇴직금을 올리겠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번 주총에서 정관변경이 가결될 경우 KB증권의 투자금 회수에도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관변경으로 올라온 안건은 △적대적 M&A로 판단되는 이사의 선임 및 해임 시 의결권 출석주주 80%, 발행주식 75% 이상 확보 △이사의 수 9명에서 7명으로 축소 △최대주주와 이사의 해임 시 각각 200억원, 100억원의 퇴직 보상금 지급 등이다.
 
정관변경이 통과될 경우, 최대주주인 KB증권은 본인들이 원하는 이사의 선임이나 해임조차 어려워진다. 경영권 확보가 힘들어진 만큼 KB증권이 보유한 지분가치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엔지켐생명과학의 위임장 권유와 관련해 뉴스토마토는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질 않았다.
 
박준형 기자 dodwo9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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