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재훈 기자] 호황기를 걷던 반도체 시장이 '온탕과 냉탕'을 오고가고 있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차질로 근심을 떨칠 수 없었던 반도체 시장에 또 다른 악재가 등장해서다. 지난 2월 발발한 러시아-우크라니아 전쟁과 더불어 환경기준 강화에 따른 반도체 필수재 공급 중단 이슈까지 겹친 상황이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 발생 이후 비대면 흐름이 강해지면서 유지돼왔던 '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이 꺼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4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수출입은행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전세계 네온 가스 공급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우리나라의 네온 수입상대국 제2위로 23%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 2020년에는 최대 수입국으로 52.3%의 점유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크립톤도 마찬가지다. 크립톤의 우크라이나 의존도는 37%에 달한다. 크세논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비중이 각각 31.3%, 17.8%다.
삼성전자 클린룸 반도체 생산현장 (사진=삼성전자)
국내 반도체 기업들인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는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이들 원료 재고량을 최소 3개월치를 확보해 놓고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예상보다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안심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희귀가스 납품 업체들은 전쟁 상황으로 연락 두절되는 등 추가 주문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로 전해졌다.
최근에는 반도체 냉각수로 쓰이는 '쿨런트' 공급마저 난항을 겪고 있다. 벨기에 정부가 과불화화합물(PFAS) 배출에 대한 환경기준을 강화하면서 냉각수를 공급하는 벨기에 업체 '3M'의 공장이 최근 가동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반도체 제조사들은 대부분 3M의 쿨런트를 사용 중이다. 3M은 전세계 쿨런트 점유율 90%를 차지한다. 벨기에 공장과 미국 공장에서 쿨런트를 생산하는데, 미국 생산량은 벨기에의 10%에 불과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냉각수 문제 역시 재고를 확보해 놓은 상태로 수입처 다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식각 공정 시 온도 조절에 사용되는 냉각수 '쿨런트' 인데 이게 없으면 반도체 장비를 돌리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충분히 재고를 쌓아두고 있고 다른 공급처들도 있고 3M 또한 생산에서 손놓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3M 이외 쿨런트 공급사로는 솔베이와 미국 화학기업인 듀폰, 중국 업체 두 곳 등이 쿨런트를 생산하고 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구선정 디자이너
다만 전문가들은 희귀가스는 공급망 다변화로 해결할 수 있으나 냉각수 문제는 좀 더 상황을 지켜봐야한다고 진단한다. 각 사 제품마다 화학 구성 요소가 다른만큼, 설비 바로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미혜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네온 크립톤 등의 희귀가스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수주 비중이 높은 편이지만 중국 등으로 이미 수입국이 다변화돼있기 때문에 단기적인 영향력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반면 냉각수의 경우 특정 기업의 의존도가 높은편이기 때문에 유럽의 환경규제가 완화되지 않는다면 반도체 산업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도체 원재료 공급망 이슈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2019년에는 일본이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등 반도체 수출을 규제했으며 이듬해인 2020년 중국이 희토류 등의 수출 규제 내용이 담긴 '수출통제법'을 시행해 국내업계에 위기감이 감돈 바 있다. 일각에서는 재료 수급 문제로 반도체 생산이 중단된다면 기업별로 수백억원대의 대규모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조재훈 기자 cjh1251@etomato.com